빵점엄마의 200점 도전기- 122

1, 2차 시험에 이어 채용의 마지막 관문인 3차 시험은 면접이었다. 한 시간 이상 여유롭게 고사장에 도착해 수험번호에 따른 순서대로 책상에 앉았다. 대기실은 면접실 바로 옆에 붙어있는 교실이었다. 나보다 먼저 도착한 수험생 한 명과 면접실을 구경한 후 따뜻한 차를 마시며 긴장을 가라앉혔다. 스터디 모임과 학원에서 수없이 반복한 내용을 머릿속에서 또다시 정리하는 동안 교실의 빈자리가 하나둘 채워지고 있었다.

입실시간이 되자 교실감독관이 들어왔다. 50대로 보이는 푸근한 인상의 남성이었다. 어쩐지 학창시절의 은사님 같은 느낌이 들었다. 바른 자세로 두 귀는 쫑긋, 두 눈은 반짝이며 주의사항을 들었고 본인 확인 절차를 진행할 때는 예의 바르게 인사했다.

그날 나는 흔해 빠진 검정색 치마 정장에 하얀 남방을 입었고 남들처럼 그물망 머리핀으로 단정하게 머리를 묶었다. 눈에 띌 만한 일도 없었다.

면접 결과가 발표되기 몇 주 전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걸려왔다. 장년의 낯선 목소리가 나를 호명하며 면접은 잘 보았는지 물었다. 누구냐고 물으니 같은 교실에 있던 사람이라고 했다. 면접을 볼 때 같은 교실을 썼던 수험생 중 남성은 한두 명이 다였고 내 또래로 보였으니 중후한 목소리가 그들일 리 없었다. 불안으로 판단력이 떨어진 나는 상대를 면접관이라고 믿기 시작했다.

면접관이 수험생에게 왜 전화를 할까 의심하면서도 순순히 잘 모르겠다고 대답했다. 상대방은 혹시나 시험에 떨어지더라도 일할 곳을 알아봐 줄 테니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그 말은 내가 떨어졌다는 말인가? 내가 떨어졌냐 물어보니 그건 아니라고 했다. 순간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이 된 나는 저 꼭 합격하고 싶습니다를 외쳤다.

전화를 끊고 옆에 있는 사촌 언니에게 통화내용을 전했다. 언니는 이상하니 다시 전화가 오면 녹음을 하라고 했다.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다시 벨이 울렸다. 조금 침착해진 나는 전화를 받으며 녹음 버튼을 눌렀다.

그제야 상대방의 발음이 정확하지 않고 희미하게 노래가 들리는 것이 인지되었다. 음주 상태가 의심되었다. 아니나 다를까 상대방은 다가오는 설 연휴에 나더러 대구 OO거리로 오라고 했다.

완곡하게 거절하며 전화를 끊고 언니와 녹음 내용을 들었다. 언니는 OO거리가 유흥주점이 많은 곳이라고 했다. 뒤통수를 한 대 세게 맞은 것 같았다. 동시에 나의 거절이 합격 여부에 영향을 주면 어쩌나 말도 안 되는 걱정을 했다.

며칠 후 같은 번호로 전화가 왔다. 당연하게도 나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그랬더니 문자가 왔다. 그것도 여러 번. 면접응시표에 적힌 내 주소를 언급하며 설 연휴에 OO동에서 보자고 했다. 내 이름과 휴대전화 번호만 알고 있는 게 아니라 내 주소까지 알고 있다니 소름이 돋았다. 너무 징그러웠다. 스토킹을 당하는 기분이었다.

내가 문자에 답하지 않자 그는 스스로 자신의 정체를 밝혔다. 내가 면접을 보던 날 교실감독관이었다고 했다. 내가 은사 같다고 생각했던 그분이 적어도 스무 살 이상 어린 나에게 이래도 되는 건가? 내 개인정보를 이렇게 활용하다니 불법 아닌가? 어쩌면 나에게만 연락한 게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단 올해만 이러는 게 아닐지도...

감독관은 제풀에 지쳐 너무하다는 말을 끝으로 연락을 멈췄다. 시험 준비도 끝난 데다 겁이 나서 주소지로 돌아가지 못하고 고향에 머물러 있었는데 내가 너무한 사람이 되어버렸다.

기관에 신고하자는 가족도 있었으나 합격 발표가 나지 않은 시점에서 일을 키우기 싫었다. 당락에 조금이라도 영향을 줄까 두려웠기 때문이다.

채용 후에는 신고를 했다가 소문을 달고 다니게 될까 두려웠다. 가해자뿐만 아니라 피해자까지 구설수에 오른 사례를 떠올려보고는 조용히 입을 닫았다. 다만 지인들에게는 내 피해 사실과 억울하고 화나는 심경을 여러 번 토로했다.

위의 일은 2011년에 일어난 것으로, 벌써 10년도 지난 일이다. 개인정보 보호법이 더욱 강화되었으니 이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으리라 믿는다. 절대 있어서는 안 될 일이다.

최윤애 보건교사
최윤애 보건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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