빵점엄마의 200점 도전기 121

일기예보에 없던 빗방울이 떨어지고 있었다. 몇 달 만에 인라인스케이트를 꺼내들고 신나게 밖으로 나온 자매들은 이 정도 비는 상관없다고 주장했다. 덥고 습한 날씨에 흐린 하늘을 보니 비가 얼마나 내릴지 도무지 짐작할 수가 없었다.

대신 쇼핑몰에 가기로 했다. 입을 옷이 마땅치 않은 첫째 다은이의 옷을 두어 벌 사줄 생각이었다. 딴에는 다은이를 위한 제안이었으나 인라인스케이트를 타지 못한 다은이는 영 탐탁지 않은 기색이었다. 먼저 문구점에 들러 슬라임을 사기로 합의를 본 후에야 아이는 흔쾌히 발길을 돌렸다.

다연이와는 달리 옷과 신발에 별 관심 없는 다은이를 대신해 남편과 내가 부지런히 아동복을 훑었다. 티셔츠 한 장을 사고 다음 매장으로 향하는데 갑자기 활기가 샘솟은 아이들이 우리를 이끌었다.

언니한테 옷이 작아지면 다연이가 입어야 되니까 다연이도 예쁜 옷 있는지 잘 살펴봐.”

야무지게 고개를 끄덕인 다연이가 마음에 드는 옷을 발견한 줄로만 알고 순순히 따라갔다. 아뿔싸! 다연이의 눈에 들어온 건 예쁜 옷이 아니었다. 그곳에는 다름 아닌 동전을 넣으면 작동하는 놀이기구들이 쪼르르 모여있었다.

500원짜리 동전 2개를 넣으면 하나를 탈 수 있는 유아용 놀이기구였다. 아이들에게 동전을 2개씩 쥐여 주고 타고 싶은 것을 하나씩 고르라고 했다. 다은이는 경주용 승마를 고르고 다연이는 바다낚시를 골랐다.

뜬금없이 이부자리에 누운 아이들을 보자 옛 생각이 났다.

얘들아, 엄마도 아이일 때 외할머니랑 시장에 가면 항상 흔들말을 탔어. 그땐 동전을 넣는 게 아니라 아저씨한테 돈을 내고 타는 거였거든. 빙글빙글 도는 말이었는데 스프링이 달려있어서 신나게 뛸 수도 있었어. 엄마가 흔들말을 너무 좋아해서 외할머니가 시장에 갈 때마다 엄마를 업고 흔들말을 찾아다녔대.”

딸들이 두 귀를 쫑긋 세우고 귀 기울이는 모습에 새삼 신이 났다.

엄마 어릴 때는 시장에 가면 다리가 없는 사람들도 있었어. 다리가 없는 곳에 검은색 고무를 끼우고 길에 엎드려 있었는데 외할머니는 그 사람들을 보면 엄마한테 천원짜리 지폐나 오백원짜리 동전을 줬어. 그러면 엄마가 돈을 그 사람 앞에 있는 바구니에 넣어줬어.”

이어서 남편도 아이들에게 아빠가 5살에 매일 어떻게 놀았는지를 들려줬다.

할머니는 식사 때가 되면 창문을 열고 놀이터에서 놀고 있는 아빠를 불렀어. 병수야 밥 먹어라. 그러면 아이들이 모두 자기 집으로 돌아가 밥을 먹고, 다 먹은 뒤에 다시 모여 놀았어.”

갑작스레 소환된 추억에 나와 남편은 잠시 과거로 여행을 떠났고 아이들은 엄마 아빠의 어린 시절을 상상했다. 마흔을 넘긴 우리의 내부에 여전히 5살의 추억, 8살의 추억이 흐르고 있었다. 그것은 잊고 있다가도 언제든 번쩍 소환할 수 있는 추억들이다. 두 딸에게도 언제 어떤 순간이 평생 꺼내 먹을 수 있는 추억으로 저장될지 모를 일이다.

일주일간 쌓인 피로로 조용히 쉬고 싶은 주말이지만 그 생각을 하니 가만히 있을 수 없다. 내일은 인라인스케이트를 꼭 타고 아이들이 원하는 또 다른 체험을 해야겠다. 내 아이보다 소중한 것은 없으니까. 이건 나라님도 어쩔 수 없는 내리사랑이다.

최윤애 보건교사
최윤애 보건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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