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하나의 ‘하! 나두’ 건축 42

바람의 섬 제주도. 서쪽 해안도로에 잠시 멈춰 바람을 마셔본다. 넓고 부드럽고 그윽한 한 모금이었다.

무섭도록 달구어대던 날씨는 어느덧 정점을 찍고 기세를 바꾸었다. 언제 그랬냐는 듯이 쾌청하게 웃는 파란 하늘빛이다. 평화롭게만 보이는 넓고도 푸른 캔버스에 보드랍고 달콤해 보이는 구름이 자유로이 그려져 있다. 컴퓨터 배경 화면 마냥 한적하고 안락해 보인다.

그런데 이토록 쾌적하고 풍요로운 계절에는 무서운 속내가 있다. 순식간에 치명적인 공격성을 표출하는 태풍이다. 사납고도 웅장한 바람이 상상 이상의 강풍으로 곳곳을 누빈다. 게다가 빈틈없이 쏟아지는 빗방울에 빛이 산란하여 별안간 세상을 환하게 만드는 폭발적인 강수량까지 동반된다. 실로 험악하고 거대한 자연의 움직임이다.

건축에서는 이러한 기상상황이 영화 속 재해 장면을 연출하지 않도록 하려고 골똘히 고민하고 있다. 예측 불가의 난폭한 날씨는 짧고 굵은 생을 살고 간다. 그런데도 찰나에 일어날 수 있는 변수를 대비하지 않을 수 없다.

고층 건축물은 마천루를 탐한 죄로 바람의 채찍을 견뎌내야 한다. 기본적으로 구조체에 일종의 유연성을 삽입하여 풍하중을 견디도록 하고 있다. 그리고 지금까지 국내에서는 그다지 고려되지 않는 빌딩풍이라는 풍토가 있다. 그래서 스펙타클한 장면에서 콧대 높은 빌딩 사이로 작은 비행기나 슈퍼 히어로가 지나다니는 장면은 현실과 거리가 멀다.

빌딩이 즐비한 곳에서, 출입문을 여닫을 때 예상보다 더 큰 힘이 필요하거나 문이 열림과 동시에 돌풍이 덮치는 경우가 있다. 이는 자유롭던 바람이 고층 건물과 부딪히고 갈라지며 단단한 덩치들 사이의 좁은 틈으로 오가다 보니, 풍속이 빨라지거나 급작스레 위아래로 꺾이는 흐름이 일어나는 것이다. 이는 일종의 도심 공해로 분류하기도 한다. 그리고 빌딩풍 자체만으로도 일상에서 불편하기 그지없다.

가을철마다 찾아오는 태풍 예보에 그저 조마조마하다. 건물은 이미 지어졌고, 미처 배려치 않았던 바람의 흐름은 엉겨 붙어있다. 순간적인 돌풍은 방향마저 예측하기 힘든 난류라서 더욱 어려운 계산법이 필요하다. 게다가 애당초 자연의 힘 앞에서는 그 어떤 셈법도 정답일 수 없다. 그저 예기치 않았던 이상 반응을 일상에 품고 살아야 하고, 활동적인 기상현상과 맞닥뜨릴 때마다 손쓸 수 없는 안타까움을 넘어서 간절한 마음만 커진다.

위상을 당당히 세운 건축 기술력 경쟁 무대를 보노라면, 불현듯 주변과 조화롭게 어우러지는 온화한 건축물이 그립다. 바람길을 내어주는 하이라이즈(high-rise)를 쌓아 올리고, 공기의 흐름이 타고 넘을 수 있을법한 매스(mass)도 반가운 일이다. 높은 자리에 이른다는 것은 주변을 챙기는 책임감도 놓치지 말아야 하는 세상 이치와도 닮았다. 다정하게 사람 위하는 맛을 느끼고 싶다.

최하나 건축 칼럼니스트/전) ㈜엄앤드이종합건축사사무소/전) 서울건축사협회 서부공영감리단/전) 2021 서울청년정책네트워크 시민위원/현) 시흥시청 '시흥문화자치연구소' 기획자
최하나 건축 칼럼니스트/전) ㈜엄앤드이종합건축사사무소/전) 서울건축사협회 서부공영감리단/전) 2021 서울청년정책네트워크 시민위원/현) 시흥시청 '시흥문화자치연구소' 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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