빵점엄마의 200점 도전기 114

5, 정확히는 49개월간 병원에서 근무했다. 20091231일부로 사직을 했으니 병원에서의 경험은 이제 10년도 더 지난 일이 되었다. 시간이 지나면 병원에서의 수많은 기억이 빛바랜 사진처럼 희미해지기 마련이나 어쩐 일인지 어제 겪은 것처럼 생생한 일들이 있다. 그중 하나는 일명 기생충 사건이다.

평소보다 조용한 저녁 시간이었다. 환자와 보호자들이 식사하는 동안 간호사들은 부지런히 저녁 투약을 준비하고 빛의 속도로 밀린 차팅을 했다. 물론 교대로 직원식당에 다녀오기도 했다.

데스크에 앉아 간호일지를 비롯한 각종 차팅을 하고 있을 때였다. 데스크 왼쪽에 위치한 남자 다인실 문이 스르륵 열렸다. 병실 입구 자리에 입원한 1번 환자의 보호자가 심각한 얼굴로 나왔다. 보호자인 환자분의 아내 손에는 종이컵이 들려있었다. 반대쪽 손으로는 뚜껑이라도 되는 양 휴지로 컵을 덮고 있었다. 보호자가 큰 비밀을 고백하듯 속삭이는 소리로 간호사를 불렀다.

간호사님 이것 좀 보세요. 남편이 밥 먹다가 기침을 했는데 이게 나왔어요.”

간 병동이라 울컥 토혈을 하는 환자들이 종종 있기에 웬만해선 크게 놀라지 않는 간호사들이었다. 종이컵에 든 게 뭔지는 몰랐지만 그 자리에 있는 누구도 그것이 생명체일 거란 생각은 털끝만큼도 하지 않았다.

보호자가 휴지를 들어 올려 컵 속의 내용물을 보여주는 순간! 우리는 동시에 얼음이 되었다. 모양, 크기와 길이, 색깔까지 지렁이를 빼닮은 낯선 생명체 한 마리가 눈앞에서 꿈틀거리고 있었다. 영화에서 본 에일리언을 현실에서 만난 기분이었다.

빠르게 정신을 차린 담당간호사가 기생충인 것 같다, 담당의에게 이 사실을 알리고 조치하겠다, 같이 병실로 가보자고 했다. 1번 환자의 자리는 커텐으로 둘러쳐져 있었고 다른 환자와 보호자들은 아는지 모르는지 말없이 밥을 먹을 뿐이었다. 1번 환자는 반쯤 올려진 침대에 기대있었던 것 같다.

담당의 보고 후 인턴을 호출했다. 종이컵은 간호사실 안쪽에 옮겨져 있었다. 곧 도착한 인턴이 장갑을 끼고 일회용 드레싱 세트를 열어 플라스틱 핀셋을 꺼냈다. 신중한 몸짓으로 기생충을 잡자 기생충이 힘차게 발버둥쳤다. 꿈틀대는 모양새조차 지렁이 같은 기생충에게서 징그럽고도 강한 생명력이 느껴졌다. 핀셋을 타고 전해지는 움직임에 굴하지 않고 놈을 알코올이 담긴 통으로 옮기는데 마침내 성공했다. 기생충은 알코올 용액 속에서 맥을 추지 못하고 이내 움직임을 멈추었다.

환자는 그날 밤 기생충약을 처방받았고 다음 날 담관조영술을 받았다. 기생충에 의한 담도폐쇄였다. 예상보다 빨리 황달의 원인을 찾게 된 환자의 황달수치가 그만큼 빠르게 내려갔다.

한때는 예방적 구충제의 복용 효과가 부작용의 위험성보다 낮다는 기사를 접하고 복용을 망설이기도 했지만, 매년 봄가을로 복용하는 편을 택했다.

올봄에도 대방어회에 기생충이 많다는 말을 듣고 웹으로 사진을 검색하던 날 약국으로 달려갔다. 내 몸속 어딘가에 혹시라도 존재할지 모를 기생충을 당장에 박멸시키고 싶었다. 1통에 4알 든 과일맛 구충제였다. 나와 남편과 아이 둘이 한 알씩 나눠 먹기에 딱 좋은 양이었다. 알약을 입에 넣고 꼭꼭 씹었다. 오도독 오도독. 기생충 알까지도 씹어먹을 기세였다.

최윤애 보건교사
최윤애 보건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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