빵점엄마의 200점 도전기 112

해야 할 일이 남아있었다. 2230분으로 알람을 맞춰놓고 아이들 사이에 누웠다. 책을 읽어준 뒤 불을 껐다. 아니나 다를까 나도 같이 잠들어버렸다.

첫 번째 알람이 울렸다. 소음 때문에 괴로웠다. 알람을 꺼야겠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다만 시끄럽고 괴로웠다. 한참을 시끄럽게 울리던 알람이 조용해졌다. 다시 편안한 수면 모드에 돌입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두 번째 알람이 울렸다. 누가 좀 꺼주지. 짜증이 치솟았다. 두 아이는 잠들었고 남편은 운동하러 나갔다. 알람을 꺼야겠다고 생각했지만 좀처럼 움직여지지 않았다.

다시 조용해졌다가 세 번째이자 마지막으로 설정한 알람이 울렸다. , 일어나야 하는데 손가락 하나도 까닥여지지 않네. 머릿속으로 일어나자를 여러 번 외쳤으나 알람이 멈출 때까지 일어나지 못했다.

갑자기 쾅 하는 소리가 들렸다. 몸이 벌떡 일으켜졌다. 신경질이 났다. 운동 나갔던 남편이 집에 들어와 있었으나 소음의 진원지는 남편과 무관해 보였다. 어디서 난 소리지. 조금 생각하다 말았다.

다른 생각을 하기엔 눈꺼풀이 너무 무거웠다. 핸드폰을 들고 소파에 누웠다. 머리가 멍했다. 익숙한 느낌이다. 시험 기간마다 자정이 가까워지면 이렇게 졸음이 쏟아졌지. 잠과의 승부에서 나는 자주 패했다.

오늘은 질 수 없다. ○○강의를 꼭 들어야 하니까 잠이 와도 참자. 그런데 왜 이렇게 피곤할까? 그제도, 어제도 책 읽느라 늦게 자서 그렇구나. 내일은 꼭 일찍 자야지.

멍한 눈과 머리로 유튜브 강의를 들었다. 내용이 머릿속에 얼마나 저장되는지도 모른 채 듣다 보니 잠이 슬금슬금 물러갔다. 유튜브를 켠 김에 최근에 알게 된 인사를 검색했다. 영상이 줄줄이 뜬다. 하나씩 골라 듣다 보니 시간이 훌쩍 흘렀다.

아침에 일어나니 입술이 이상했다. 면역력이 떨어지면 찾아오는 불청객 헤르페스(단순포진바이러스). 어젯밤 유난히 힘들더니 이유가 있었구나. 당분간 비타민 꼬박꼬박 챙겨 먹고 무엇보다 잠을 푹 자야겠다.

입술 한군데 수포가 부풀어 오르는 평소의 방식과 달리 이번에는 위아래 입술 바깥쪽 전체가 조금씩 부풀어 있다. 아침, 저녁으로 아시클로버를 바르고 종합비타민, 비타민C를 이중으로 챙겨 먹어도 좀처럼 사그라들지 않는다. 입술이 따가워 바세린도 바른다. 며칠이 지나도 호전이 없어 비타민B 공급을 위해 박카스도 사 마셨다. 일주일쯤 지나니 조금 가라앉는 것 같지만 입술의 화끈거림은 여전하다.

소풍이나 운동회, 명절처럼 내가 평소보다 들떠있을 때 불쑥 나타나던 헤르페스. 1 추석 때는 윗입술이 닭 볏을 입술에 붙여놓은 것처럼 부어올랐다. 응급실까지 갔지만 연고 외 별다른 처방이 없었다. 수시로 찾아오던 헤르페스는 대학생이 된 2001년 이후 종적을 감췄다.

내 인생에서 안녕인가 봐, 순진한 생각은 일말의 희망사항이었다. 첫 임신을 한 2015년 부처님 오신 날, 시어머니의 강요로 산간벽지의 절에서 낮부터 늦은 밤까지 머문 일이 있었다. 꼬불꼬불 좁은 외길을 갈 때는 논두렁에 차가 빠질까 불안했고 포장되지 않은 길에서 차가 덜컹거릴 때는 양수가 꿀렁대서 불편했다. 낯선 곳에서 몸과 마음이 동시에 피곤한 시간을 보낸 다음 날 오랜만에 입술에 헤르페스가 찾아왔다.

다시 만나고 싶지 않았는데 한번 재회를 하자 이놈은 나를 잊은 적 없다는 듯 자꾸만 찾아온다. 깜짝쇼는 이만하면 충분한 것 같은데. 내 몸에서 사라질 생각은 1도 없는 바이러스야, 나는 이제 널 보고 싶지 않아. 이제 내 몸 깊이 꼭꼭 숨어 나 대신 깊은 잠을 청해주겠니?

최윤애 보건교사
최윤애 보건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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