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임정래 서산시대 부장
임정래 서산시대 부장

 

2차대전 시절 유대인수용소 내에서 유대인을 통치했던 것은 바로 유대인이었다. 그들은 수용소 내에서 일종의 특권층이었지만 독일인에게는 빵을 몇 개 더 받는 수용자의 일부에 불과했다.

노예무역이 번성하던 시기에 백인들은 밀림에서 흑인을 직접 구하기보다는 흑인을 통해 노예를 확보했다. 흑인 사냥꾼은 다른 흑인에게 무서운 존재였지만 백인들에게는 총 한 자루를 쥐여주면 그들이 원하는 노예를 공급하는 특권층 노예에 불과했다.

최근 근로시간 유연제의 시행예보로 인하여 정치권에서 많은 논쟁을 일으키고 있다.

노동자의 관점에서 노동력을 제공한 경험이 없는 사람들이 근로시간 유연제의 장단점을 논하고 있으니 과연 옳은 방향으로 개선이 될지는 필자도 의아할 뿐이다.

서산지방의 노동시장은 비정규직 업자의 천국이라는 오명이 붙을 정도로 비정규직 고용시장이 굉장히 발달해 있다. 특히 자동차 부품 라인 산업의 경우에는 비정규직 노동자가 높은 비율을 차지하고 있다.

기업에서 사내하청이나 인력파견업체를 이용하여 비정규직 노동자를 사용하는 주된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는 노동자의 탄력적 고용이다. 즉 일 년 단위로 근로계약을 체결하는 인력파견업체나 사내하청을 통하여 해고와 채용의 유연성을 확보하는 것이다.

둘째는 급여 상승의 압박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다. 사내하청이나 파견업체는 대부분 최저시급을 적용한 노임을 지급하며 통제가 쉽지 않은 노동자는 계약갱신을 회피하면 쉽게 해결이 된다.

셋째는 산재사고의 위험 또는 노동법위반으로부터 고용주의 법적책임 회피이다.

기자는 다리가 부러져도 공상으로 처리하고 산재사고 발생 신고를 못 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를 목격했다. 신고하면 노동자는 계약갱신을 할 수가 없기에 노동자는 묵묵히 부러진 다리를 잡고 치료받고 있을 뿐 노동자의 권리는 찾아볼 수가 없었다.

공단의 경비원은 12시간 맞교대를 하지만 급여 자체는 8시간 기준으로 지급이 되고 있다. 업체 측은 4시간은 서 있지 않고 실내에 휴식을 취하니 무급이라고 주장하지만, 근로자는 동 시간대에 외출이나 취침이 허용되지 않고 문제를 제기하면 경비의 일자리도 그만두어야 하는 것이 현실이기에 침묵을 지키고 있다.

이처럼 사내하청이나 인력파견업체는 고용주의 비용 절감과 법적 책임회피, 고용유지의 의무에서 해방해주는 출구의 역할을 하고 있다.

자본주의사회에서 사내하도급 업주나 인력파견 업주는 고용주에게 금전적 이익을 받아 노동자에게 특권층으로 분류되는 부류이지만 그들 역시 원청업체 근로자에게는 하도급 업체일 뿐이다.

이러한 서산의 특수한 노동환경시장에서 근로시간 유연제는 비정규직 직원에게 또 다른 압박 수단으로 다가올 수 있다. 고용의 불안전성으로 인해 단결권과 교섭권을 주장할 수 없는 노동자이기에 성급한 근로시간 유연제의 시행은 특권층에게 악용이 될 소지가 크다.

근로시간 유연제는 지식근로자와 단결권, 교섭권이 보장된 정규직 노동자에게 적용될 수는 있지만 비정규직 또는 사내하청근로자에서 적용하는 것은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

정규직 노동자가 하도급 업체를 통하여 비정규직 노동자를 통제하는 고용시장에서 최저임금과 근로시간 준수는 비정규직 노동자에게는 최후의 보루역할을 하는 것이 현실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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