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 품앗이꾼 객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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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 품앗이꾼 객꾼
  • 서산시대
  • 승인 2015.04.10 1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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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숙(서산시대 시민기자/수필가, 시인)

농촌인심은 그래도 그렇게 각박하지만은 않다. 대대로 내려오는 농경문화 품앗이라는 잔재가 남아있기 때문이다.

해마다 못자리를 할 때면 이웃이 돌아가면서 품앗이를 하는데 얼마나 즐거운지 모른다. 농촌에서 살아온 나는 못자리 품앗이하는 것을 보고 자라왔다.

옛날에 못자리를 하려면 겨우내 아궁이에 콩깍지나 짚을 때서 잿간에다 잘 저장했다가 숭숭 뚫어진 싸리 바지게에 여럿이 지고 가는 논두렁 행렬은 지금도 눈에 선하다. 솜바지를 돌돌 말아 정강이까지 올리고 재를 뿌리면서 못자리를 밟으면 정강이는 추위를 못 이기고 툭툭 터지지가 일쑤고 솜바지는 눈치 없이 자꾸만 흘러내린다.

그런데 이 십 여 년 전부터 농촌사람들한테 즐거운 신호탄이 터진 것이었다. 모심는 이앙기가 나오고 모 상자에 파종기까지 생겼으니까 모를 엎드려서 허리 아프게 뽑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대신에 흙을 파서 어레미로 내려야 함은 노인들이 하기엔 버거운 일이었다. 그때부터 못자리 품앗이 구성원의 새로운 팀원이 다시 시작되었다. 한집에 내외가 다니기도 하고 아니면 혼자 다닌다.

먼저 회관 집 하던 날은 양씨 아저씨가 수평기를 사다가 파종기를 반듯하게 놓느라고 풀 방구리 드나들듯 왔다갔다 분주하게 돌아다니니까 영희 아버지가 느닷없이 “오늘 일일 반장을 해유”하고 우스갯말을 한다.

“반장은 무슨 반장이여 못자리 하는데도 반장이 있남!”

격의 없는 말이 오고가는 동안 손은 바쁘게 움직인다. 파종기에서는 짜르륵 짜르륵 모 상자가 레일을 타고 밀려 나오고, 여자들은 짚으로 잘라서 만든 빗자루로 열심히 골고루 늘어놓는다.

모 상자 천 팔백 개를 해야 하는데 겨우 몇 개를 나르고, 숙이 아버지가 이젠 술 좀 먹고 하자고 보챈다. 한 사람만 빠져도 기계는 멈춰야 하는데 목소리 큰사람이 이긴다고 텁텁한 막걸리로 목을 축이는 동안 여자들도 안주로 입가심을 한다.

기계도 발달하다 보니까 못자리 하는 방식도 바뀌어 못자리에 비닐을 씌우던 것을 몇 년 전부터 하얀 천 같은 부직포를 씌워서 한다. 그리고 흙도 회사에서 만들어낸 모래알 같은 흙이다. 이 흙은 무게가 없어서 들어 나르기엔 좋지만 물을 주면 잘 먹히지가 안 해 썩 좋지는 않다.

오늘은 제일 꼴찌로 우리 집이 하는 날이다. 남편은 새벽 일찍 일어나 경운기에 벼 종자. 부직포. 조루. 큰 통. 파종기. 골고루 챙겨서 싣고 간다. 논으로 향하는 남편을 보고 나는 물어본다.

“오늘은 몇 명 이유?, 몇 시까지 밥을 가지고 가유?”

“품앗이꾼이 적어서 열 명 안쪽 일거여. 객꾼이 있을 것을 생각해서 밥숟가락이나 넉넉히 가지고 와!”

남편이 시키지 않아도 덧 밥과 숟가락은 기본으로 더 챙기는 것이 들밥에 대한 상식이다. 밥을 식당에서 시켜다 먹으면 편키는 한데 된장이라도 집에서 부글부글 끓여서 먹는 것을 사람들은 좋아해서 집에서 한다.

반찬은 잘 차리지는 안 해도 남편 말 따라 숟가락도 몇 개 더 챙기고 큰 양푼에다 고봉으로 퍼가지고 갔다.

아니나 다를까 다섯 명이나 되는 객꾼은 미리 와서 논둑에 서 있었다. 객꾼들은 조금 멋쩍은 듯 “객꾼을 잘 대접해야 농사가 잘 되는 벱이여” 하고 너스레를 떨면서 밥을 먹는다.

객꾼이라고는 해도 논 이웃이고 이웃사촌이다.

신문을 깔고 골고루 반찬을 늘어놓은 다음 밥 한 숟갈 퍼서 올 농사 잘 짓게 해달라고 고수레도 한다. 못자리 할 때만 되면 꾸어서라도 춥던 날이 오늘은 바람이 불지 안 해서 들밥 먹기에 안성맞춤이다.

좁은 논두렁에 모여앉아 흘러가는 구름을 배경삼아 양푼에 포개지는 일꾼들의 밥숟가락소리 웃음소리가 들판으로 퍼진다.

일렬로 서서 한참 모 상자를 나르는데 선희 아버지가 장난기가 발동했는지 느닷없이 “부지포 가져와!” 하고 소리를 지른다.

옆에서 듣던 순덕이 엄마 “에이 이름이라고 그렇게 지어 가지고 설랑 내가 회사 가서 부직포 이름 바꾸라고 해야 되겠어”한다. 부직포가 나오면서 못자리를 할 때면 써먹는 단골 메뉴로 부직포가 부지포로 이름이 바뀌고, 여자들은 눈을 서로가 끔적끔적 해가면서 배꼽을 쥐고 웃어댄다.

진달래꽃이 산자락을 불태우고 여기저기서 펑펑 터져 나오는 벚꽃이며 길거리에 지천으로 핀 민들레. 제비꽃. 꽃따지 들꽃들이 눈을 즐겁게 한다. 떡 본 김에 제사 지낸다고 나는 남편한테 “우리도 남들처럼 꽃구경 좀 가유”하니까, “집 근처가 다 꽃인디 무슨 꽃구경을 또 가?”

“그런 꽃구경 말구 관광차타구 멀리 가자구유.”

매력 없는 신랑이라구, 말을 꺼낸 내가 잘못이지. 봄꽃이 참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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