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하나의 ‘하! 나두’ 건축 37

영화「UP」에 등장하는 풍선을 달고 날아다니는 집 - 공학 모임 긱블(geekble)의 사옥 내 전시품. 수작업은 공들인 시간을 가늠할 수 있기에 경이로움이 쉬이 공감된다. 
영화「UP」에 등장하는 풍선을 달고 날아다니는 집 - 공학 모임 긱블(geekble)의 사옥 내 전시품. 수작업은 공들인 시간을 가늠할 수 있기에 경이로움이 쉬이 공감된다. 

호호 할머니가 될 때까지 부지런히 쓴대도 미처 다 못 쓸 만큼 욕심껏 모아버린 필기구를 바라본다. 머릿속에 한가득 들어찬 뜬구름을 출력하고자, 적당한 도구를 쇼핑하듯 골라본다. 빳빳한 트레이싱 페이퍼를 '차르르' 펼치고 나면 언제나 살짝 설렌다. 괜스레 가로선을 길게 한번 그으면서 어찌 끝날지 모를 그림의 스타트 라인을 통과해본다.

설계에 입문하던 당시, 진작부터 디지털 작업이 대세를 이루고 있었음에도 설계 과정에서 모형 제작을 여러 번 하곤 했다. 스터디를 진행하면서 거칠고 개략적이게, 공간감과 전체적 형태감을 보기 위해서 매스(mass)감 있게, 최종단계에서 시공 전 점검 차원까지, 다수의 모형을 만들어내며 프로세스를 남겨두고 모멘트를 생성했다.

시작이 그러해서였을까? 이미 컴퓨터에 충분히 길들었음에도 가끔은 수작업을 즐기는 편이다. 각양각색의 필기구와 종이의 질감이나 두께는 다채로운 조합을 통해 각자의 마찰감과 선의 형태를 나타낸다. 그것은 조금 특별하다. 취향과 감각이 담겨 있기에 현실감이 살아있다.

모델링 과정은 설계자의 풍미가 더욱 짙게 녹아든다. 소꿉놀이하듯 작은 건축모형을 짓고, 마지막으로 '인체 스케일'을 올려놓으면 꿈과 상상의 나라 네버랜드에 입장객이 된듯하다. 어린시절 아끼던 인형의 집에 대한 추억마저 소환한다. 다만, 작고 귀여운 모형 제작을 위해서 고급 공작재료의 비용과 소요시간이 상상 이상으로 필요하므로 가성비가 그다지 좋지는 않다.

건축 설계에 있어서 컴퓨터 툴(Tool)은 프로페셔널하고 완성도가 높으며, 관계자 간에 정보를 공유하기 수월하여 작업에 효율적이다. 생성 및 수정 보완이 쉽고, 무한 복제와 출력이 가능하며 원거리 소통까지 가능하다 보니 컴퓨터 작업으로 설계를 진행하는 경우가 늘어나는 추세이며, 소규모 사업에서는 대부분이 그러하다. 그렇다 보니 수기로 도면을 그리거나, 건축 모형을 실물로 제작하는 경우가 현저히 줄었다.

이제는 명실상부 3D 모델링이 절대 승자이다. 3D 프린터마저 상용화되고 다양한 곡률과 난도 높은 접합 면이 '알아서 잘 깔끔하고 딱 센스 있게' 구현 가능해지면서 실물 모형을 접할 기회마저 줄어들고 있다. 간혹 일상에서 만나게 되는 건축 모형은 랜드마크 성향이 짙은 대형 건축물이나, 아파트 모델하우스에서 만나는 정도에 불과하다.

세상은 디지털을 향해 내달리고 있지만, 간간이 그 숨 가쁨에 '얼음'을 외치고 아날로그로 파고들어 본다. 언젠가 마음에 울림을 주는 설계작을 완료한다면, 수없이 많은 손길을 담아서 수공예 모형을 제작하고, 클라이언트에게 건축물만큼이나 소중하게 선물하겠다고 마음먹어 본다.

최하나 건축 칼럼니스트/전) ㈜엄앤드이종합건축사사무소/전) 서울건축사협회 서부공영감리단/전) 2021 서울청년정책네트워크 시민위원/현) 시흥시청 '시흥문화자치연구소' 기획자
최하나 건축 칼럼니스트/전) ㈜엄앤드이종합건축사사무소/전) 서울건축사협회 서부공영감리단/전) 2021 서울청년정책네트워크 시민위원/현) 시흥시청 '시흥문화자치연구소' 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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