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서산의 무릉도원, 지금은 귀촌지로 각광”

운산면 고풍리(이장 서해권)는 지난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당시 군장동, 운곡리, 무릉동, 고색리 등 4개 마을이 합쳐져 탄생됐다.

큰 규모를 자랑하는 만큼 각양각색의 이야기들이 전해 내려오고 있는데 지난 1975년 고풍저수지의 축조로 수몰된 군장동은 고풍리 전체의 중심마을로 마을 구전에 따르면 과거 이곳에 많은 군사들을 감춰뒀던 연유로 군장동이란 이름을 갖게 됐다고 하는데 최근 인접한 원평리에서 신라와 백제가 주도권을 놓고 다투던 시기에 축조된 것으로 보이는 성이 발견돼 역사적 의미가 높아졌다.

지금의 고풍리 4반 지역을 나타내는 무릉동은 조선시대 실학자 이중환의 저서 ‘조선팔도비밀지지’에 ‘해미에 있는 가야산은 동남측은 흙으로 된 산이요, 서쪽은 돌로 된 산이다. 동쪽에는 가야사라는 절이 있고, 동쪽 골짜기에 옛날 상왕의 궁궐터가 있다. 서쪽으로 하천이 흘러 바위와 폭포의 경치가 매우 기묘하며 아름답다. 북쪽에 강당동과 무릉동이 있어 가히 사람이 살만한 곳이다’라고 기록돼 있는 걸보면 무릉동 지역의 산세가 얼마나 아름다웠는지 짐작할 수 있다. 또한 호산록에도 백제부흥 운동과 관련한 일련의 사실이 기술돼 있어 고풍리의 남다름을 느낄 수 있다.(자료참고 서산의 지명사 - 이은우)

그러나 이러한 이야기들은 모두 천년이 훌쩍 지난 옛 이야기일 뿐이고 고풍리의 진면목은 요즘 들어서 나타나고 있다. 마을주민들이 ‘터는 백 냥이고, 이웃은 만 냥이라’는 옛 속담을 잘 헤아려 떠나는 농촌이 아닌 돌아오는 농촌 만들기에 적극 나선 것이다.

이를 위해 주민들은 어색해하는 귀촌인들에게 먼저 다가가 손을 내밀었고, 익숙하지 않은 서로의 문화를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이 결과 몇 년 사이에 고풍리에는 10가구가 넘는 귀촌인들이 생겨났고, 내년에 공사 예정인 곳도 3~4가구에 이를 만큼 귀촌지로 각광을 받게 됐다. 지난 13일에도 고풍리에서는 큰 마을잔치가 열렸는데 몇 개월 전에 마을에 새롭게 보금자리를 만든 귀촌인과 주민들의 화합을 위한 것이었다. 이날도 주민들은 마을 풍물패를 동원해 새로운 이웃을 위한 지신밟기까지 벌이는 등 서로에 대한 애정이 날로 높아지고 있다.

고풍리가 새로운 이웃들과 만들어갈 새로운 무릉도원의 모습은 어떨지 사뭇 기대된다.

 

>> 인터뷰 최건영 노인회장

“서로를 이해하려 노력하면 못 넘을 어려움 없어”

최건영 노인회장은 자신도 20여 년 전 고풍리로 이사 온 귀촌인이라며 말문을 열었다.

그동안 귀촌인들과 친해지기 위해 고풍리 주민들이 실천해온 사항들을 듣고 있자니 이 마을은 터도 좋지만 이웃 인심은 더 좋다는 것을 금방 알아차릴 수 있었다.

최 노인회장에 따르면 고풍리에서는 일단 귀촌인이 이사 오면 근사한 환영 잔치는 기본이었다. 그것도 귀촌인의 자식들까지 참여하는 행사로 진정한 고풍리 사람이 되는 통과의식처럼 자리 잡았다고 한다. 이렇게 안면을 익힌 다음에는 진정한 이웃사촌의 정을 느끼게 해줬다.

실례로 이사 온지 얼마 안 된 귀촌인이 부모님 상을 당했을 때 마을대표들이 도시까지 문상을 갔고, 이러한 행동은 각박한 도시사람들에게는 신선한 충격이었다.

이렇게 서로의 정이 오고가다보니 누가 원주민이고, 귀촌인인지의 구별은 전혀 무의미한 것이 됐다.

최 노인회장은 “요즘은 귀촌 전에 다 교육을 받고 내려오기 때문에 마을에서 조금만 이해해주고 잘 해주면 금방 한식구가 될 수 있다”며 “서로를 이해하려 노력하면 못 넘을 어려움이 없다는 것을 깨달은 만큼, 앞으로도 고풍리가 살기 좋은 무릉도원으로 남을 수 있도록 전 주민들이 노력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저작권자 © 서산시대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