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젠 줄이세요!

                                                   박주경/서림초 교사

 

“어머, 어머, 어머, 이를 어째?”

나도 모르게 비명이 터져 나왔다. 내가 놀란 기색을 보이자, 가족들도 뛰어왔다.

“아니, 왜, 왜, 왜 그래? 무슨 일이야?”

가족들도 무지 놀랐나 보다.

“아무 생각 없이 변기 물을 내리고 말았어.”

예전 같으면 대수롭지 않게 여겼을 나, 그리고 아무 반응도 보이지 않았을 가족이지만, 이젠 아니다. 상황이 절박하다는 걸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잠시 후 남편이 한 마디 하였다.

“아니, 왜 그랬어? 조심 좀 하지!”

“그러게나 말이야. 내가 왜 그랬을까?”

지금 생각해도 웃음이 나오는 대화이지만, 그땐 그게 최선의 대답이었다.

충남서북부 지역에 찾아든 최악의 가뭄 사태로 아파트 관리사무실에선 물 공급을 제한적으로 할 테니 오전과 오후 각각 6~8시 사이에만 물을 받을 수 있다는 방송을 연이어 내보냈다.

‘설마, 8시가 되었다고 물을 잠그겠어? 우리 아파트 주민이 얼만데!’

700세대가 넘는 주민 수만 떠올리며 설마설마 하였다. 하지만, 8시가 되니 물은 어디에서도 나오지 않았다. 똑똑 떨어지던 물도 마지막 한 방울을 떨어뜨린 이후 더 이상 얼굴을 내밀지 않았다.

‘어라, 진짜 안 나오네!’

다행히 한 주전자 가득 받아둔 물이 있으니 아침까지는 요긴하게 쓰겠구나 싶었다. 학원에서 돌아온 아이들은 컵으로 물을 떠서 양치질을 하였고, 컵으로 물을 떠서 세수를 하였다.

남은 물을 다음날 쓰려고 하니 여름이 지나간 끝자락이라 그런지 차가움이 크게 느껴졌다. 그렇다고 간밤에 받아둔 물을 함부로 버릴 수도 없었다. 아무리 내가 수도세를 내도 그렇지, 우리가 사는 지역은 충남에서도 최악의 가뭄이 들어 그간 사용하던 물의 30%를 절감하는 게 무엇보다 시급하였다. 이런 상황에서 최소한의 양심이 있지, 물을 허투로 버릴 수는 없었다.

우리 가족은 각자 지킬 수 있는 실천 사항을 한두 가지씩 찾아내어 실천에 들어갔다. 먼저, 남편은 관리사무실에서 나눠준 변기 절수용 별돌을 양변기 물탱크에 넣었고, 볼탑 밸브를 조정하였다. 그리고, 계량기 밸브를 조절하여 적정 수압이 되게 맞추었다. 콸콸 나오던 물이 졸졸 나오는데 처음엔 답답증이 생기는 줄 알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적응이 되었고, 기다릴 줄 아는 여유도 생겼다.

사춘기 두 아들은 목욕 대신 샤워를 즐겼다. 잠깐이라도 물을 사용하지 않을 땐 귀찮더라도 물을 잠그면서 말이다. 어쩌다 목욕을 할 경우엔 욕조 가득 물을 받는 게 아니라 반신욕을 즐길 정도의 소량만 받았다. 예전 같으면 넘치는 물을 주체하기 어려워 쓰지도 않은 물을 버린 적이 한두 번도 아닌데, 이젠 마음가짐은 물론 행동까지 달라졌다. 최대한 적게 받아서, 최대한 많이 재사용을 하였다.

그렇다면, 나는 어떻게 하고 있을까? <거품을 줄이자>는 다짐을 하며 생활 곳곳에서 거품을 줄여나갔다. 빨래를 매일매일 하는 것이 아니라, 빨랫감을 2~3일 모아두었다가 한꺼번에 하였다. 세제를 많이 쓰면 때가 잘 빠지는 줄 알아 세제를 듬뿍듬뿍 넣었던 과거와 달리 세탁 량에 맞춰 적당량의 세제를 썼다. 세탁이 끝난 후 옷에 세제찌꺼기가 남지 않으니 세탁기를 다시 돌리는 일이 사라졌다. 머리를 감을 땐 샴푸를 적게 짜니 머리 헹구는 횟수가 줄었고, 설거지를 할 땐 고기나 생선을 먹은 경우가 아니면 굳이 세제를 묻히지 않았다.

이외에도 가을이 되면서 비가 자주 오다 보니 제습기를 트는 날이 많았는데 제습기에 담긴 물은 버리지 않고 화초에 뿌려주었다. 나는 화초에 물을 주니 좋고, 화초는 물을 먹어 좋아했다.

우리 가족의 작지만 꾸준한 실천들이 보령댐의 수위가 낮아지는 속도를 조금이나마 줄였기를 바란다. 물을 써봐야 얼마나 쓰고, 물을 아껴봐야 얼마나 아낀다고 저리 호들갑이냐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너와 내가 모여 ‘우리’를 만드는 것처럼 우리가 아끼는 적은 양의 물들이 모여 보령댐의 물을 이루지 않겠는가? 12월에 들어선 지금도 뉴스에서는 여전히 보령댐의 저수율이 40% 미만이라고 보도하고 있다. 겨우내 눈, 비가 온다 해도 그간의 가뭄이 워낙 심했던 지라 오는 3월까지 혹은 그 이후에도 계속해서 물 사용은 줄여야 한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있다.

이럴수록 우리 스스로 물 절약에 동참해야 한다. 그동안 우린 돈이나 물자만 절약할 줄 알았지, 물을 아껴야 한다는 생각은 미처 못하고 살았다. 굳이 아끼지 않아도 꼭지만 틀면 콸콸 나오는 게 물이요, 쉼 없이 흐르는 게 물이다 보니 그랬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번 가뭄은 나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의 잘못된 생활태도를 돌아보는 전환점이 되었을 거라 생각한다. 물도 자원이 된다는 생각으로 물 사용을 줄이고, 생활 속에서 거품을 줄이는 것이야말로 42년 만에 찾아든 최악의 가뭄을 슬기롭게 극복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지 싶다.

저작권자 © 서산시대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