빵점엄마의 200점 도전기-110

산골마을로 진입하는 꼬부랑길, 푸른 수풀들 사이로 빨간 산딸기가 보였다. 운전대를 잡은 남편이 양안시력 1.5를 자랑하는 아내의 밝은 눈에 감탄하며 재빨리 정차했다. 과연 작고 탱글탱글한 산딸기들이 가지마다 옹기종기 모여있었다. 자주 내뱉던 레퍼토리를 이번에도 꺼냈다.

얘들아, 산딸기가 있는 곳에선 뱀을 조심해야 돼. 예전에 누가 산딸기 따다가 뱀에 물렸지?”

현애이모

맞아. 현애이모가 친구랑 산딸기 따 먹다가 나무 뒤에 숨어있는 독뱀에 물렸는데 어릴 때 물린 손가락이 아직도 부어있어. 여기에도 뱀이 숨어있는지 잘 봐.”

아이들은 산딸기로 인해 신나는 한편 뱀이 나올까 걱정도 되는 얼굴로 엄마 아빠가 산딸기 따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토사를 막아내기 위한 콘크리트벽 때문에 아이들이 접근하기 어려운 높이였다. 산딸기나무 근처 어딘가에 정말로 뱀이 숨어있을 것만 같아 나도 모르게 몸을 움찔거렸다.

산딸기를 볼 때마다 현애언니가 생각난다. 언니는 독사에 물려 퉁퉁 부은 손 때문에 투포환 선수를 포기했고 그 여름 나는 수박을 실컷 먹었으며 언니가 또 뱀에 물리면 좋겠다는 말을 했다. 왜냐고 묻는 엄마에게 어린 윤애가 말했다.

그럼 수박 많이 먹을 수 있잖아.”

산딸기를 몇 움큼 딴 뒤 가던 길을 이어 달렸다. 시골집이 지척인 밭두렁에 커다란 뽕나무가 있었다. 나무에도, 땅에도 시커먼 오디가 가득했다. 작년에 나무 주인이 따먹으라고 허락해준 오디인데 올해는 알이 굵다. 자연이 뜨거운 햇볕과 달콤한 열매를 동시에 내주었다. 올봄 그렇게 가물더니 오디의 당도가 상상 이상이다. 혀가 아릴 정도로 달콤한 오디를 먹으며 과거를 회상한다.

뽕나무는 누에의 주식이다. 부모님이 양잠업을 하셔서 뽕나무가 밭에 가득했다. 오디를 따 먹은 기억은 없지만 뽕나무를 사선으로 자른 뾰족한 나무둥치에 엄마의 발이 찔렸던 일은 생각난다. 엄마가 많이 아파하며 병원에 갔다. 엄마는 당시 아줌마들이 많이 신던 앞이 막힌 고무쓰레빠를 신었는데 어쩜 그렇게 심하게 찔렸는지, 얼마나 아팠을지 지금 생각해도 아찔하다.

양잠업을 그만두면서 그 뽕나무밭은 포도나무밭이 되었다.

채집 활동으로 간식을 해결하자 문득 할아버지와 산에서 밤을 줍던 일이 떠오른다. 내가 살던 동네의 야트막한 산이었는데 어디쯤이었는지 모르겠다. 할아버지를 따라 동네 친구와 비교적 낮고 평탄한 산에서 밤을 줍다가 처음으로 청설모와 초록색 매미를 봤다.

텃밭에 심은 감자를 보자 엄마와 알감자를 삶아 먹던 장면도 생각난다. 장마 때였다. 한옥 처마에서 비가 주룩주룩 떨어지고 마루는 차갑고 그날의 공기는 찹찹했다. 엄마와 단둘이 소금에 찍어 먹던 뜨거운 알감자는 진하고 깊은 맛이었다.

이런 기억들을 평생 반복 소환하며 살 것 같다. 아주 오래전의 일이지만 여전히 생생한 감각과 감정을 수백 번도 더 떠올릴 것이다.

아직 어린 딸들에게는 어떤 날, 어떤 사건이 각인되었을까? 반성할 일이 많다. 실수투성이에 여전히 시행착오를 겪는 엄마 대신 평생의 추억과 힘이 되는 엄마를 기억해주면 좋겠다.

나는 아직, 갈 길이 멀다.

최윤애 보건교사
최윤애 보건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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