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고픈 시절, 조상의 지혜

첫 눈이 소북히 쌓였다. 이맘때면 어는 집에서나 김장담기에 분주하다.

탐스럽게 자란 배추를 잘라낸 후 밭에 버려진 무녀리를 보니 ‘게국지’에 대한 향수가 되살아난다.

게국지는 김장을 한 다음 무, 배추, 고추 등 무녀리 허드레 채소를 거두어 게국 액젓으로 버무려 익힌 김치다. 갯벌이 맞닿아 있는 서산지역에 전해져 내려오는 우리네 토속음식이다.

겟국의 주재료인 칠게다, 달랑겟과에 속하며 등딱지 길이가 3.5cm 정도로 길쭉하며 앞이 좀 넓고 작은 과립과 털로 덮여있다. 수컷이 암컷보다 집게 다리가 크다.

충청도 사투리로 능쟁이라고도 불리는 칠게는 서산일대 갯벌에서 많이 서식하며 보통 4~6월 사이에 산란기를 맞는다. 짝짓기를 할 때는 암놈 한 마리에 수놈 여러 마리가 따라 다닌다. 어두운 밤에 횃불을 들고 바닷가로 나가면 칠게가 모여들어 엄청난 양의 칠게를 잡을 수 있다.

칠게는 껍질이 얇고 부드럽기 때문에 빨리 상한다. 싱싱할 때는 찜이나 튀김, 부침 등을 해먹지만 오랫동안 보관할 수 없다. 따라서 칠게를 오랫동안 보관해서 먹기 위해서는 액젓을 담글 수 밖에 없다. 깨끗이 씻은 칠게를 소금을 넣고 끓인 물에 담가 단지 속에서 숙성시킨다. 100일 정도 숙성시키면 감칠맛 나는 겟국이 된다.

서산에서는 이 겟국으로 김치를 담아 먹는데, 게국지가 바로 그것이다.

겟국지, 깨국지, 갯국지 등 마을마다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는데, ‘게 또는 바다에서 나오는 것의 국물을 넣어 만든 김치’라고 풀이할 수 있다.

게국지의 숙성 시기는 먹는 사람의 입맛에 따라 차이가 난다. 요즘 노인들은 예전 추억 때문에 막 담은 게국지를 선호하지만 젓갈과 해산물이 발효되기 때문에 시간이 지날수록 짠맛과 시원함이 더 우러나와 3년 정도 숙성시켜야 제 맛이라는 사람도 있다.

처음 게국지를 맛 본 사람에게 입맛에 맞지 않을 수 있지만 게국지는 먹고 살기 어려웠던 시절 서민들의 지혜로 탄생한 소박하고 정이 가는 우리네 음식이다.

 

게국지엔 고춧가루를 쓰지 않는다

고추를 잘게 썰거나 빻은 풋고추 넣어

 

게국지는 겨울철에 자칫 부족하기 쉬운 단백질이나 무기질 섭취에 크게 기여해왔다.

게는 소화가 잘되고 게의 짠맛은 뭉친 어혈을 풀어줘 혈관계 질환에 효능이 있다. 게의 찬 성질은 열을 내리게 한다. 특히 가슴에 열이 차고 얼굴이 부었을 때 먹으면 증상을 가라앉히는 효과가 있다. 또한 간을 자양하고 골수를 보양하기 때문에 근육과 뼈가 상했을 때도 효과가 있다. 특히 칠게에는 항암효과, 면역력 강화, 혈당과 콜레스테롤 수치 조절 등에 좋은 키토산을 비롯해, 아미노산, 미네랄, 철분, 칼슘 등이 다량 함유되어있다.

게국지는 고춧가루가 아닌 고추를 잘게 썰거나 빻은 풋고추를 넣는다.

먹거리가 풍부해진 요즘에는 제대로 된 채소와 능쟁이 대신 꽃게를 넣고 늙은 호박, 버섯, 고춧가루, 양파, 마늘, 생강, 간장게장 등 양념도 제대로 넣어 담근다.

겨울내내 게와 삭혀진 간장의 구수한 맛과 버려진 열무잎이나 봄동, 얼갈이배추로 담근 게국지. 게국지는 뚝배기에 넣어 밥하던 가마솥 가운데 앉혀 끓여내던 우리의 전통음식이며 향토음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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