빵점엄마의 200점 도전기 105

육아휴직 후 2주쯤 지났을까. 아이들이 새로운 교육기관에 완전히 적응하면 도서관에 죽치고 앉아 책이나 실컷 읽어야지 기대하던 봄날 남편이 뜻밖의 말을 꺼냈다.

아이들 낳고 키우느라 고생하다가 한숨 돌릴 수 있겠다 싶을 때 팬데믹이 와서 제대로 쉬지도 못하고 복직을 한 게 마음에 걸렸다, 이제는 아이들도 제법 자랐고 이번이 아니면 당분간 쉴 기회가 없으니 평소 하고 싶었으나 하지 못했던 것을 해봐라, 책은 평소에도 읽을 수 있으니 운동이나 다른 것을 하면 좋겠다.

솔직히 달갑지 않았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게 책이고 평소에 실컷 읽지 못해서 이참에 원없이 읽겠다는데 웬 참견이고 태클이냐 싶었다. . . 팔랑. 팔랑팔랑.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남편의 제안에 솔깃해진 두 귀가 팔랑대기 시작했다. 그건 무엇보다 나를 위한 조언이었다.

남편 말대로 이런 기회가 당분간은 없을 텐데 뭐 신박한 게 없을까 관심사를 확장하며 탐색하던 무렵 수면 위에 동동 떠오르는 태양처럼 짠! 하고 강렬하게 떠오르는 것이 하나 있었으니 두둥~ 그것은 바로 미용(헤어)이었다.

어깨에 보자기를 두른 후 준비된 의자에 앉으면 엄마가 가위로 머리카락을 잘라주던 어린 시절이 있었다. 그 기억을 떠올리며 지금은 내가 딸들의 머리카락을 잘라준다. 미용실은 체험 삼아 딱 한 번씩 데려간 게 전부다. 머리카락 자라는 속도가 워낙 느려 자를 게 거의 없었기에 가능했는지도 모른다.

앞으로도 두 아이의 커트며 펌, 염색 같은 머리 손질은 내 손으로 해주고 싶다. 물론 아이들이 원한다는 전제하에서^^. 엄마의 정성도 선물하고 돈의 지출도 아낄 수 있으니 그것은 일석이조가 아닌가. 남편과 양가 부모님, 우리 언니들의 머리 손질도 직접 해주고 싶다.

또 다른 이유는 봉사를 하기 위해서다. 누구에게나 일상에서 실질적으로 도움을 줄 수 있는 게 미용(헤어)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남편이 몇 년 전 도배를 배워뒀으니 나도 이참에 미용을 배워 아이들과 함께 봉사활동을 다니면 좋을 것 같다. 이보다 좋은 교육이 어디 있을까.

이런 결론에 이르러 급히 공공시설 강좌를 검색하던 나는, 미용 강좌를 발견한 후 한 치의 고민도 없이 수강 신청 버튼을 꾹 눌렀다.

따로국밥처럼 각양각색인 수강생들과 세련된 외모를 뽐내는 멋쟁이 강사님이 한자리에 모였다. 가족의 머리를 손질해주기 위한 분들과 봉사활동을 하기 위한 분들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69년생부터 90년생까지, 거기다 강사님까지 더하면 연령의 스펙트럼이 더 넓어지는 색다른 자리였다. 낯설고 어색하던 강의실이 화기애애한 가족 같은 분위기로 변모하는데 걸리는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비가 오면 기운이 없어 수업에 빠지지만 열정은 남다른 왕언니 서호언니, 5남매의 엄마이자 분위기 메이커인 영아언니, 밤에는 치킨집을 운영하는 손재주 뛰어난 성혜언니, 14녀 중 막내로 태어나 나와는 공감대가 남다른 필선언니, 마스크를 쓰면 이십대로 보이는 뽀얀 주형언니, 외동을 두었을 것 같지만 알고 보면 삼남매 엄마인 혜림씨, 아픈 오빠가 미용실 다니는 게 힘들어 보여 미용을 배우게 됐다는 속 깊은 동생 동미씨, 두 번째로 수업에 참여하는 선배이자 강의실 막내인 현경씨까지 각기 다른 매력들로 똘똘 뭉친 수강생들과 만학도로서 끊임없이 배우고자 열망하고 봉사에 진심인 강사님의 케미는 남다르다. 강의시간은 물론이고 언젠가부터 시작된 간식시간에 더욱 반짝이며 빛을 발하는 우리의 케미~

묻고 가르쳐주고 돕고 이끌어주는 것이 자연스러운 미용 강의가 벌써 후반부를 향해 달리고 있다. 손재주라곤 없는 나지만 주변에 할만하다 자신 있게 말하며, 이왕 시작한 김에 자격증까지 따겠노라 선언한 것도 그들 덕분이다. 교재를 사두고 아직 제대로 펼쳐보지도 않았지만 이번 주에는 기필코 필기시험을 접수하기로 다시 한번 다짐하며, 스스로의 도전에 따스한 박수를 보낸다.

최윤애 보건교사
최윤애 보건교사

 

저작권자 © 서산시대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