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빌바오 공항에서 내린 후 해외투자가가 보낸 택시를 탔다.

택시를 타고 나바라주의 수도인 팜플로나로 향하는 길은 80년대 한국의 대관령고개와 흡사 비슷했다.

한 시간 정도 달렸을 때 기사는 산 정상에서 차를 세우고 산 아랫마을을 보여주며 “Beautiful(아름다워)”이라고 외치며 나에게 어떠냐고 자꾸 물었다. 산 위에서 보이는 마을은 구름 아래 보이는 빨간 지붕과 유유히 흐르는 자그마한 강줄기와 어울려 한폭의 그림처럼 아름다워 보였다. 호텔에 여정을 풀고 이른 새벽 산책하러 나갔다. 길가에는 잘 정돈된 가로수가 보였고 폭이 십여 미터 되는 하천에는 젊은이들이 카누를 즐기고 있었다.

회의를 마치고 투자가들과 함께 오래된 선술집에서 맥주를 마시며 스페인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한국인이 아는 스페인은 축구이지만 축구 이외에도 구겐하임이란 미술관이 있다고 이야기해주며 한국으로 돌아가는 길에 꼭 방문해볼 것을 추천했다.

구겐하임미술관은 연간 방문객이 100만 명이 넘는 빌바오의 대표적 관광자원으로 빌바오주민의 생계를 책임지고 있는 미술관이다. “빌바오는 과거 철강 관련 제조업으로 호황을 누리던 도시였다. 하지만 경제위기로 도시는 쇠락의 길로 접어들었고 주민들은 슬럼가로 변하는 도시를 되살리기 위해 도시재생과 자연 복원을 이루어 냈으며, 화려하지도 않으면서도 옛 문화가 살아있는 자연생태보존에 많은 노력을 투자했다. 그와 동시에 문화사업양성을 위해 구겐하임이라는 미술관을 세웠다.

필자는 가끔 천안이나 아산을 방문할 때 가야산 구도로를 이용한다. 굽이굽이 도는 산길은 계절별로 나의 눈을 즐겁게 해준다. 이십여 분 정도의 드라이빙이 참으로 즐겁게만 느껴진다.

터널을 통과하는 드라이빙은 시간을 절약해주지만 왠지 느림의 철학과 한국의 산을 즐길 기회를 앗아가 버렸다.

십여년전 서산에 돌아올 때 필자는 느림의 여유와 마음이 부유한 가난을 기대했었다. 대산에 가는 길은 막힌다고 하지만 서산의 웬만한 도로는 아무리 막혀도 한 시간 이내에 도달할 수 있는 정도이다. 90년대 서울의 오목교와 테헤란로를 통해 출퇴근하던 나에게 서산의 도로는 아무리 막혀도 여유 그 자체였다. 하지만 서산은 보존보다는 개발을, 느림보다는 속도를 중요시하는 문화가 자리를 잡아가는 모습을 보니 참으로 아쉽기만 하다.

서산의 인구는 증가하지만 젊은 층 여성은 감소한다. 후퇴기에 접어드는 제조업 도시의 전형적인 양상을 보이고 있다. 젊은 층 여성은 제조 현장에서 일하기보다는 서비스업종에서 일하는 것을 선호한다. 제조업은 급여는 많지만, 생산의 부품이라는 느낌이 들고 서비스는 급여는 작아도 개인의 꿈을 실현할 기회가 상대적으로 많기 때문이다.

지방선거에 정치인들의 공약을 보면 개발이 주를 이루고 있다. 문화예술도 언급되지만, 가로림만 그리고 도시재생과 연결하여 서산의 갯마을문화를 연계 육성하는 구체적인 공약은 그다지 보이지 않는다.

바닷가에는 굴뚝이 화염과 연기를 내뿜고 드넓은 개펄은 쌀 생산공장으로 변했다. 인근 산은 대규모 벌목으로 인하여 진달래는 사라지고 벌거숭이 산만 보인다.

개펄에서는 황발이 게를 잡아 바구니에 넣고 하천에서는 장어를 잡던 어릴적 추억이 그립다. 그래서 나는 우리 마을에서 생태하천 복원과 소규모 저수지 건설을 주민들에게 외친다. 당신들의 손자와 손녀에게 공장지대를 물려줄 것인지 아이들이 뛰어놀 수 있는 하천을 물려줄 것인지 의견을 물어 본다.

개발보다 중요한 것은 보존이고 자본보다 중요한 것은 문화이다. 상업적 문화가 아니라 그 지역의 특색을 대표하고 지역의 자원과 연계되는 문화였으면 좋겠다. 내 아이들이 돌아와서 내 집에서 쉬며 뛰노는 모습을 꿈꾸는 것은 나 혼자만의 상상이 아니라 모든 서산시민의 바램이 아닐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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