빵점엄마의 200점 도전기 102

약 두 달간 주말 없이 일하던 남편에게 드디어 휴식이 찾아왔다. 며칠간 꼼짝 않고 방에서 쉬기만 하겠다고 벼르던 남편이었다. 푹 쉴 수 있도록 집을 비워주겠노라 호언장담했건만 그의 칩거는 몇 시간 지나지 않아 종료되었다.

긴 휴식이 부재한 부모로서의 습관과 빠르고 부지런하게 움직이던 직장인의 습관이 그를 가만히 놓아둘 리 없다. 20대에는 가능했지만 30대를 거쳐 40대에 접어든 그는 어느덧 생산성에 인이 박혀 버렸다. 오죽하면 에릭슨(Erikson)이 우리 같은 중년기(또르르...)의 심리사회적 발달단계를 생산성 대 침체성이라고 분류했을까?

물을 못 먹어 축 처진 식물 같던 남편이 일터로부터 거리를 유지하자 서서히 물을 끌어올리는 그것처럼 보였다. 집에서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던 이틀째 저녁에는 드디어 고무장갑을 꼈다. 영영 이별인가 싶을 정도로 거들떠보지 않던 빨간 고무장갑을 끼고 개수대에 손을 담가 설거지를 하더니 곧 빨래를 널고 개는 데 동참했다.

심지어는 그의 입에서 집안일은 돕는 게 아니라 같이 하는 것이란 말도 나왔다. 그 말은 평소 내가 하던, 나만 하던 말이었다. 내가 알기로 그는 집안일에 객체였다. 집안일을 다른 남자들보다 많이 도와주는것에 자부심을 가진 객체.

결혼 초기 시어머니와 내가 있는 주방에 남편이 들어서자 거실에 앉아있던 시아버지가 다급히 외쳤다. “! ! OO! 남자는 주방에 들어가는 거 아니다”. 양성평등에 반하는 교과서적인 말로 아들까지 가부장적 테두리에 가두려 했던 아버지였다. 그는 그런 아버지 아래에서 자란 아들이었고.

아버지의 생일상을 직접 준비한 후, “며느리가 만들어서 맛있다는 말에 맛있죠? 이거 다 제가 만들었어요라고 폭탄선언을 한 사람이었다. 어머니에게 나물 무치는 방법이나 김치 담그는 방법을 적극적으로 배우는 사람이기도 했다.

그러나 가끔 집안일을 자기만큼 많이 도와주는사람은 주위에 없을거라고 공치사를 늘어놓기도 했다. 그랬던 그가 한동안 집안일에 경계를 두더니 집안일을 하는사람으로 변했다. 말로 표현하였으니 마음속 깊은 곳에서도 변화가 일었다고 믿고 싶다.

다은이는 비 오는 날 갔던 바다가 가장 재밌고 좋았다고 했다. 아빠가 기꺼이 (회사가 아닌) 가족의 품으로 돌아온 첫 주말 우리는 바다에 갔다. 자갈이 있는 바다에서 예쁜 돌멩이와 조개 껍데기, 이따금 고둥을 줍기도 했고 차가운 바닷물에 발도 담갔다. 오순도순 모여 앉아 간식을 먹고 죽은 불가사리나 게, 성게, 물고기를 관찰했다.

다음날에는 버스와 바다를 접목시킨 여행을 했다. 바람을 가르며 보트를 타고 제멋대로인 모래성을 쌓았다. 신이 난 두 아이는 바지가 젖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으며 바닷물과 모래사장을 무시로 왔다 갔다 했다. 그들은 안 먹어도 배부른 상태였다(물론 먹긴 했다^^).

의도치 않은 남편의 워커홀릭 후 즐기며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한층 더 짙어졌다. 유한한 인생을 일만 하고 돈만 벌며 살기는 싫다. 기회비용을 계산하며 죄책감을 떠안는 행동은 그만두고 싶다.

이제는 사소한 행위를 하더라도 기분 좋게 즐기면서 하기로 했다. 어제보다는 조금 더 나은 내일을 살고 싶다. 어제보다는 조금 더 나은 내가 되고 싶다.

드디어 아빠가, 남편이, 가정으로 돌아왔다. 두 달은 제법 긴 시간이었다.

최윤애 보건교사
최윤애 보건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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