빵점엄마의 200점 도전기-94

사랑하는 부모님
사랑하는 부모님

평생 농사일을 하던 아버지는 기관지가 좋지 않았다. 흙먼지를 마실 때도, 드넓은 논밭에 농약이나 비료를 뿌릴 때도 마스크 없이 일을 하던 아버지는 힘들 때마다 소주와 담배의 힘을 빌렸다. 언제인지 기억도 나지 않을 어릴 적부터 아빠는 기침을 하고 가래를 뱉어냈다. 만성기관지염일 거라 짐작했다.

건강을 타고 난 몸인지 반주로 매일 술을 마셔도 간이 튼튼하던 아버지는 본인이 천식이라고 생각했다. 스스로 농사일을 하기 힘들다 생각할 즈음 아버지는 병원 투어를 시작했다. 천식 진단을 받을 때까지 병원을 서너 군데 돌았고 마지막에 천식 진단을 받고서야 투어를 멈추었다. 마지막 병원에서 천식약을 처방받은 아버지는 숨이 찰 때 흡입기를 힘껏 빨아들였다.

병원에서만 보았던 흡입기가 안방 머리맡에 자리한 물건들의 일부가 되고 난 뒤 아버지는 진짜 천식 환자가 되어갔다. 흡입기를 사용하면서부터 조금씩 조금씩, 숨이 더 차기 시작했다.

숨이 차서 많이 걷지도 못하게 되던 어느 날부터 아버지는 자주 폐렴에 걸렸다. 지역의 대학 병원과 타지의 대학 병원으로 찬 바람이 불면 입원을 반복하던 아버지를 가족들은 행여나 잃게 될까 걱정했다. 다행히 아버지의 생명줄은 질기고 단단했다.

아버지의 반복되는 입원으로 정작 힘든 사람은 어머니였다. 집과 병원을 번갈아 왔다갔다하며 환자 수발을 들고, 불편한 보호자 침대에서 새우잠을 자면서 어머니는 몸과 마음이 동시에 고달팠다.

퇴원을 해도 집에서 수발을 들어야 하는 건 마찬가지. 평소에도 약을 좋아했던 아버지는 몇번이나 약을 과다복용했다. 1알 먹고 금방 효과가 나타나지 않으면 또 1알을 먹는 식으로 과다복용하여 응급실에 간 적이 있기에 어머니는 장을 보러 가는 것조차 불안해했다.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을 좋아하는 어머니는 외출도 제대로 못한 채, 추위를 많이 타는 아버지의 삼시세끼를 언제나 안방까지 차려다 바쳤다. 어휴.

다행스러운 건 노인 인구가 많아지면서 노인복지센터가 많이 생겼다는 점이다. 오빠의 도움으로 아버지는 여러 기관에서 증명서들을 발급받아 주간보호센터에 다니게 되었다. 어머니는 아버지가 센터에 가 있는 동안 홀가분하게 집안을 돌보고 장을 보거나 친구도 만나고, 때론 편히 쉴 수도 있게 되었다.

생신을 맞은 아버지께 노치원에서 생일상을 차려주셨다.
생신을 맞은 아버지께 노치원에서 생일상을 차려주셨다.

하루종일 방 안에서 티비 보는 게 전부이던 아버지도 사람들 사이에서 보내는 시간이 좋은 것 같다. 노치원(노인+유치원)으로 불리는 그곳에서 아버지는 마치 아이들처럼 프로그램에 따른 여러 활동들을 한다. 매번 먹는 집밥 대신 잘 짜여진 식단표 대로 식사를 하고 다양한 간식을 먹는다. 등하원 차량을 이용해 짧은 거리나마 매일 콧구멍에 바람을 쐬는 것도 하나의 낙이다.

센터가 쉬는 날이면 갑갑해서 못 견뎌하는 아버지를 보니 예전에는 어떻게 살았나 싶다. 아버지에게 환기구가 되어주는 센터가 고맙고 어르신들을 잘 보살펴 주시는 직원들은 더더욱 고맙다. 내내 마스크를 쓰고 다녀 코로나19는커녕 폐렴이나 감기조차 비켜 가니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다은이, 다연이를 낳고 산후조리를 했던 조리원은 일찌감치 노인주간보호센터로 바뀌었다. 지금도 주변에는 노인을 위한 기관들이 꾸준히 늘고 있다. 산부인과, 산후조리원, 어린이집 같은 기관이 줄어 안타깝지만 우리네 부모님들이 이런 혜택을 누릴 수 있다는 건 참으로 감사한 일이다.

병원에서 일할 때 친한 선배와 일당 다섯이 모여 실버타운 운영 계획을 세웠다. 경희대 의대를 포기하고 서울대 간호학과를 선택했던 똑똑한 선배가 노인사업이 촉망된다며 실버타운을 세우자고 했다. 힘을 보태 미래에 함께 일하기로 했는데 약속은 희미해지고 우리는 뿔뿔이 흩어졌다.

그랬던 내가 20년 뒤면 환갑이다. 노인은 남의 나라라고만 여겼는데 어느새... 비록 실버타운을 설립하지는 못하겠지만(^^) 먼 훗날 어느 멋진 실버타운에 입주해서 편안한 여생을 보낼 수 있게 주어진 현재의 몫에 최선을 다해야겠다.

그리고 이 자리를 빌려 어르신들에게 행복과 즐거움을 주는 노치원에 감사드린다.

최윤애 보건교사
최윤애 보건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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