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하나의 ‘하! 나두’ 건축 - 24

아무것도 없을수록 무엇이든 할 수 있다. 서울대학교 시흥캠퍼스 교육협력동 복도
아무것도 없을수록 무엇이든 할 수 있다. 서울대학교 시흥캠퍼스 교육협력동 복도

“Simplicity in forms does not signify simplicity in experience” - Robert Morris

"형식의 단순성은 경험의 단순함을 의미하지 않는다" - 로버트 모리스

매해 연말 느낌이 덜 나더니, 올해는 한 해가 통으로 편집 당한 듯이 무덤덤한 느낌이다. 모종의 노력을 해서라도 분위기를 쇄신하고 마음에도 활력을 충전하고 싶었다. 조금씩 모아 둔 가격 대비 만족도가 높은 갖가지 '신통방통' 소품으로 이리저리 장식했다. 하지만 어쩐지 흥이 나지를 않는다. 갑자기 추워진 날씨 때문인지, 여전히 공허함이 가시질 않는다.

곱씹어 보니 나의 공간에 참 많은 것을 들였다. 그리고 제각각의 테마로 모은 여러 아이템에는 쉴 새 없이 먼지가 쌓이고 있다. 조금은 거추장스럽다는 느낌마저 든다. 갖가지 추억을 담고 있어서 차마 정리하지 못하고, 버겁지만 싸 안고 있는 묵은 감정 같다. 이쯤 되니, 물건으로 공간의 분위기와 나의 마음을 채울 수 있는 한계점에 다다른 것 같다. 산속에 꽃을 꺾지 않고 그냥 놓고 오셨다가, 다음에 가서 다시 보신다던 '깐부 할아버지'의 말씀이 울림으로 다가온다.

당연하게도, 공간이든 물건이든 가득 찬 것을 바꾸기란 다소 어렵다. 주택만 생각해 보아도 꼭 필요한 물품이나 이미 소유 중인 가구 등이 있기에, 획기적인 변화를 위해서는 각고의 노력이 필요하다. 우선은 상상 이상의 큰 결심이 필요하고, 일부는 크고 작은 공사까지도 수반해야 한다. 반면에 잘 비워진 공간이라면 꽃 한 다발이나 작은 소품 하나만 슬쩍 들여놓아도 산뜻하게 기분 전환을 할 수 있다.

일상에서 통용되는 '미니멀리즘'은 용어의 해석에 가까울만큼 가지치기가 많이 되어 있다. 소위 최소의 요소로 생활을 영위하는 개념 정도로 사용된다. 그런데 이 사조는 회화와 조각 등의 예술 분야에서 추상의 어지러움이 극에 달하면서 물성 자체로 환원하고자 하는 반작용의 시도였다.

건축계는 세계 2차대전과 함께한 기계의 발전에 더 큰 영향을 받느라, 예술에서 일어난 변화의 여정을 함께하지 못했다. 이후 모더니즘에 들어서면서야 매개를 극한으로 객관화하여 자체의 존재를 인정하고자 하였다. 심플하고 단순한 건축물의 덩어리와 구성이 등장한 것이다. 이는 모든 것을 배제하여 감정이 풍부해지도록 돕는 면모에서 매력을 발산하였다. , 채움의 한계를 넘어서고 비우며 더 큰 채움을 경험하게 한다.

오래 함께하며 익숙해지고, 설레임을 소실한 오브제의 더미 속에 살고 있음을 깨달았다. 그리고 얼마 전부터 빈방 하나가 있었으면 싶다촛불을 밝혀 방을 빛으로 가득 채운 지혜로운 이야기처럼, 텅 비워진 곳에 조명과 소리로 채워서 창조적 사고가 샘솟는 다른 의미로 가득 찬 공간을 가져보고 싶다.

최하나 건축 칼럼니스트/전) (주)엄앤드이종합건축사사무소/전) 서울건축사협 서부공영감리단/전) SLK 건축사사무소/현) 건축 짝사랑 진행형/현)서산시대 전문기자
최하나 건축 칼럼니스트/전) (주)엄앤드이종합건축사사무소/전) 서울건축사협 서부공영감리단/전) SLK 건축사사무소/현) 건축 짝사랑 진행형/현)서산시대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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