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에게 별을 그리는 방법을 가르치고 싶다"

봉주르 아트센터 미술학원 김은정 원장
봉주르 아트센터 미술학원 김은정 원장

아이들이 옹기종기 모여 브라질 여성 화가 프라다 칼로초상화를 그리고 있었다. 프라다 칼로 얼굴을 색칠하는 아이들의 손에는 하나같이 살구색 크레파스가 쥐어져 있다.

아이들에게 질문한다. “우리 피부는 모두 살구색일까?” 아이들은 이구동성 아니요라고 대답한다. 원장이 그런데 우리는 왜 모두 얼굴을 살구색으로 색칠할까?”라고 묻자 한 아이가 사람들이 그렇게 정한 거 아닐까요? 이 크레파스 색 이름이 살색이잖아요라고 대답한다. 사람들은 하얀 피부가 더 예쁘다고 생각한다고 답하는 아이도 있었다.

멕시코화가 프리다칼로 모습(좌)과 아이들이 그린 프리다칼로 모습
아이들이 그린 프리다칼로 모습

그때 한 아이가 프리다 칼로는 브라질 사람이니까 피부 색깔이 우리와 다를 것이라고 말했고 아이들이 사진을 들여다보더니 다른 크레파스를 집어 들었다.

우리는 별을 그리라고 하면 왜 을 떠올릴까? 지난 12일 서산시 성연면 봉주르 아트센터 미술학원 김은정 원장은 우리가 누군가에게 별을 그리는 방법을 배웠기 때문이라고 설명하며, “바야흐로 창의력이 중요시되는 4차 산업혁명시대가 왔다. 우리는 아이들에게 뾰족한 별을 그리는 방법을 가르치며 아이들의 창의력을 작은 그릇에 가두고 있는 건 아닐까라며 걱정스러워했다.

Q 프랑스에서 돌아와 ‘1600판다 플러스전시와 크리스찬 디올전시에 참여한 분이 고향으로 내려와 정착하게 됐다. 먼저 감사하다는 말을 하고 싶다. 어린 시절을 떠올려보면 어떤 모습들이 기억되는가?

다섯 살쯤 되는 아이가 미술학원 가방을 들고 있는 모습과 크레파스를 쥐고 있는 모습이 오버랩된다. 그때는 선생님이 지도해주시는 대로 그대로 따라 그리는 말 잘 듣는 착한 아이였다. 그러다 머리가 커지면서 나만의 작품을 그리고 싶어 하는 나를 발견했다.

18살 고2 때 친구와 함께 개인전을 열었다. 부모님이 잔뜩 기대를 안고 딸의 전시회를 보러 오셨다. 아마도 풍경화나 예쁘게 그린 그림을 기대하고 오신 듯했다. 그때 나는 현대설치미술에 굉장히 꽂혀 있던 터라 기괴한 그림을 많이 그려 전시했다.

하나의 세계를 생각해서 눈 하나만 그려둔 작품과 텍스트로 뭔가 미니멀한 작품 세계를 그렸다든가. 그때 두 분은 상당히 당황해 하시며 왜 그림은 안 그리고 이런 것을 그렸냐며 의아해했다. 그때는 확실히 그런 그림들이 나를 표현할 수 있는 최상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러면서 당진 아미미술관을 알게 됐고, 프랑스 유학파 선생님과 인연이 되어 유학을 결심하게 됐다.

서산시 지곡면에 있는 서일고등학교 3학년 말, 미처 졸업식을 하지 못한 채 혈혈단신 프랑스행 비행기에서 몸을 실었다. 무섭기도 하고 설레기도 하면서 드디어 꿈에 그리던 샤를드골 공항에 내렸다. 나를 기다리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고, 단지 2월의 차가운 공기만 장거리 비행으로 지친 나를 에워쌀 뿐이었다.

기차표 한 장만을 달랑 든 동양인이 대화도 통하지 않은 이국땅에서 프랑스 서부에 있는 도시 앙제로 가는 기차에 몸을 실었다고 상상해 보라. 상상만으로도 얼마나 무섭고 떨리겠는가. 우여곡절 끝에 기숙사에 도착하니 깜깜한 밤이었다. 지나친 한기가 온몸을 에워쌌다. 피곤한 상태에서 스르르 잠이 들었다.

프랑스 대학시절
프랑스 대학시절

Q 프랑스에 도착하여 첫 아침을 맞았을 때의 느낌은 어땠나?

온돌문화에 익숙해서인지 온몸에 한기와 더불어 여전히 불안함을 떨칠 수가 없었다. 내 방 창문을 통해 오가는 사람들은 나와 닮은 사람들이라곤 보이지 않았다. 진짜 오긴 왔는데 잘 해낼 수 있을까 또다시 겁이 났다. 그중에서 가장 무서웠던 건 어둠이었다. 오죽했으면 저녁 6시만 되면 뛰어서 기숙사 내방으로 돌아왔을까.

취사가 되는 방이었지만 밥을 할 줄 몰라 일주일 내내 오렌지 주스와 마들렌만 먹었다. 마들렌은 밀가루, 버터, 달걀, 우유를 넣고 레몬 향을 첨가해 구운 프랑스의 티 쿠키이다. 지금도 마들렌을 먹으면 여전히 오렌지 주스가 마시고 싶고 그때 그 시간이 생각난다.

Q 프랑스국립대학에 입학했다. 우리나라 교육과 차이점이 있었다면?

차이점을 얘기하기 전에 이 말을 하고 싶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인문학을 좋아했다. 책을 읽으면서 작가의 감정을 느끼고, 스스로 철학적인 질문을 던지고 답하는 것을 즐겼다. 일방적으로 정보를 전달받는 주입식 교육에 만족하지 못했고, 상상에 대한 갈증을 느낄 때는 책을 읽거나 전시장을 찾았다.

그날도 같은 이유로 전시회를 찾았다. 우연히 프랑스에서 활동하는 작가를 만나 대화를 나누면서 개인의 자율성과 개성을 중요시하는 프랑스 교육에 흥미를 느꼈다. 그리고 19살이 되던 해에 미술을 배우려고 프랑스로 유학을 갔다

프랑스는 한국과 달리 우선 교수와 학생 간의 대화가 굉장히 많다. 그들은 결과를 바로 내려고 하지 않았다. 늘 과정 중심이었다. 그 안에서 이 사람이 뭘 생각하고 뭘 나타내려고 하는지에 대해 중요하게 생각했다.

그리고 라는 이유에 대해서도 굉장히 많이 물었다. 정말 예술하는 사람들처럼 자유로운 대화들이 끊임없이 이뤄진 곳이 프랑스 교실이었다. 교우 간에도 이방인을 배려해주는 문화가 조성되어 있었다. 모두 현지인 속에 나 혼자 달랑 한국인으로 있었지만 이해해 주려고 애쓰는 것을 너무 많이 봐왔다.

그곳에서 순수미술과 설치미술을 전공했다. 프랑스 국공립 미술관이나 박물관에서 인턴으로 활동하면서 더 폭넓은 것들을 배워나갔다. 그렇게 나는 5년 반 만에 부모님이 계시는 한국으로 돌아왔다.

Q 한국으로 나온 특별한 이유라도 있었나?

한국 친구들과 연락을 하다 보면 다들 취업을 한 것을 봤다. 하긴, 보통의 나이라면 다들 일을 하고 있는 게 당연했다. 프랑스에 떨어져 사는 나만 도태되는 느낌이었다. 계속해서 공부해나간다는 것이 엄청난 부담감으로 다가왔다. 그때까지도 한국 마인드를 못 버렸던 것 같다(웃음).

부모님은 프랑스에 있기를 권했지만 나는 일이 너무 하고 싶었다. 무엇보다 한국 뉴스만 봐도 청년취업난으로 다들 힘들어하는데 더 늦어지면 힘들겠단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더 빨리 오게 된 거다.

한국으로 돌아와 동대문디자인플라자 DDP 크리스찬 디올 마케팅
한국으로 돌아와 동대문디자인플라자 DDP 크리스찬 디올 마케팅

Q 한국으로 돌아와 가장 먼저 했던 일은 어떤 것이었나?

운이 좋았던 것 같다. 세계적인 거장들의 전시를 맡았다. 러버덕을 기획한 전시회사에 3일 동안 면접을 볼 정도로 엄청난 지원자들을 물리치고 최종 합격을 했다.

그때 마침 1600판다 플러스 전시와 동시에 크리스찬 디올 전시가 동대문DDP에서 열리는 중이었다. 둘 다 프랑스 브랜드였다. 작가님들도 프랑스분이어서 통역도 해드리고 기자회견도 가졌다. 또 작품에 대한 아이디어와 기획에도 참여했다. 불어를 할 수 있는 직원은 나 하나뿐이었기에 정신없는 시간을 보냈다.

프랑스 공공미술 파울로 그랑종 작가의 인터뷰 통역
프랑스 공공미술 파울로 그랑종 작가의 인터뷰 통역

특히, 동대문디자인플라자에서 진행하는 크리스찬 디올 전시전에는 내가 마케팅 쪽에 있었다. 그러다 보니 디올 본사 팀과 회의를 하면서 전시 가닥을 잡아 나갔다. 정말 한 전시를 위해서 치열한 노력을 투입했다.

어느날 문득 몸이 상당히 나빠져 있는 걸 알았다. 그도 그럴 것이 전시와 기획 자체가 밤을 새야 하는 일이 많았고 더구나 그 모든 일이 프랑스랑 계속해서 일하다 보니 시차가 맞지 않아 잠을 잘 수 없었다. 잠도 못 자고 대면 회의를 해야 했고, 회의 결과에 따라 내가 해야 하는 일이 산더미처럼 쌓여있게 됐다. 살이 급격히 빠지고 머리카락이 계속 빠졌다.

오죽하면 부모님이 계시는 서산에 가끔 오면 쓰러질 것 같다며 깜짝 놀라시곤 했다. 부모님은 당장 일을 그만두기를 원하셨고, 의외로 나는 그 일이 피곤하지만, 너무 재미있었다.

그렇지만 건강의 적신호로 더 이상 진행할 수 없는 지경이 돼서야 그 일을 털고 내려오게 됐다.

고향에서 건강을 다시 찾고 나서 내가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을 다시 시작하게 됐다. 그것이 바로 미술학원이다.

. 봉주르아트센터 미술학원 수업 모습
봉주르아트센터 미술학원 수업 모습

Q. 봉주르 아트센터를 하면서 교육철학이 있다면?

창의력, 성향, 기질의 세 가지다. 같은 활동이라도 아이들의 성향과 기질에 따라 다른 교육방식이 필요하다.  흥미롭고 새로운 커리큘럼도 중요하지만, 그것들을 얼마나 온전하게 받아들이고 그 시간을 내 것으로 만드냐가 중요하다. 이를 통해 아이의 생각과 스토리를 담은 작업을 통해 입체적인 사고와 창의력 발달이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 ‘똑같이그리기만을 강조하는 기존의 미술 교육이 아닌 자유롭게 상상하며 나의 스토리를 풍부하게 담은 작품을 표현하도록 말이다. 뾰족 별이 아닌 동그란 별을 그리고, 검은색으로 꽃을 칠하고, 파란색으로 해를 표현해도 자신 있고 단단한 자존감을 가진 아이로 자랄 수 있도록 교육하고 싶다.

세상의 모든 아이가 기존의 정해진 그림틀에서 벗어나 시야를 넓히고 더 자유로운 표현을 마음껏 펼칠 수 있기를, 그래서 사물을 똑같이 그리고 아니고가 중요한 것이 아닌, 아이의 생각이 충분히 녹여진 작품을 표현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 그것이 바로 나의 교육철학이다

내포 대형유치원 아동기질성향 부모교육
내포 대형유치원 아동기질성향 부모교육

Q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우선 3가지 일을 하고싶다.

먼저, 다양한 기질과 성향을 가진 아이들을 잘 파악해서 적합한 프로그램을 연구개발하고 싶다. 그렇게만 된다면 아이들은 분명 조화로운 교육을 통해 안정적인 관계 속에서 건강한 사회인으로 성장해나갈 것이다.

다음은, 사람들의 눈높이에 맞는 문화활동을 만들어 세계인이 찾는 서산시를 만들고 싶다. 지방은 대도시와는 다르게 다양한 문화를 누리지 못한다. 무엇보다 우리 서산시 성연면은 평균 연령이 34.6세라고 들었다. 아이는 미래다. 이곳에서 부모님과 아이들이 마음껏 꿈을 펼칠 수 있도록 일조를 하고 싶다.

마지막으로 서산시의 주민 참여형 문화 활동 조성에 새로운 활력을 제공하고 싶다. 특히 누구나 쉽게 참여할 수 있는 문화예술 프로젝트를 기획하는 게 꿈이다.


유럽인들은 예술을 삶의 일부, ‘한 사람을 나타낼 수 있는 최고의 수단이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유럽에서는 많은 사람이 예술을 즐긴다. 그들은 예술로 그들의 생각을 나타내고 소통한다그들에게 미술 교육이란 선택적 교육이 아닌 인간으로서 누려야 하는 삶의 일부라고 말하는 김은정 원장.

그녀는 인터뷰 말미에 이런 말을 했다.

우리나라 사람들도 예술을 삶의 일부로 생각하고 누리면서 살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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