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라 한 달 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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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라 한 달 살이
  • 최윤애 시민전문기자
  • 승인 2021.12.05 2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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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점엄마의 200점 도전기 85
다은이와 다연이 자매
다은이와 다연이 자매

어릴 때는 단독주택에서, 성인이 된 후에는 주로 빌라에서, 결혼 후에는 아파트에서 거주했다. 그러다 최근 집을 리모델링하면서 빌라에서 한 달 살이를 했다. 대부분의 짐을 컨테이너에 보관하였기에 의도치 않게 미니멀 라이프를 체험한 한 달이었다.

당연하게도 갑작스런 빌라에서의 생활에는 불편한 점이 많았다.

첫째, 남편의 출퇴근, 아이들의 등·하원 시간이 길어지면서 그들은 740분에 집에서 출발해야 했다. 식사 속도가 느린 아이들이 제대로 밥을 먹고 갔을 리 없다. 그러나 나는 5분 거리에 직장이 있어 출근에 있어서만큼은 식은 죽 먹기였다. 퇴근 후에는 아이들 픽업을 위해 왕복 한 시간을 운전해야 했지만 말이다.

둘째, 와이파이가 되지 않아 인터넷 이용에 상당한 차질을 빚었다. 요금제에 포함된 데이터를 모두 소진하여 여러 차례 충전을 했지만 데이터 소모는 생각보다 빨랐다. 나중에는 최소한으로 휴대폰을 사용하게 되었는데 인터넷 없는 세상이 불편하다는 사실을 크게 깨닫는 시간이었다. 반면에 휴대폰과 거리를 두면서 손가락과 손목 관절의 통증이 줄었다. 앞으로도 휴대폰과 거리두기를 지속하는 게 건강에 좋을 것 같다.

셋째, 쓰레기 배출이 불편했다. 음식물 폐기를 위해서는 전용 바구니와 칩이 필요했는데 한 달 살이를 위해 구입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게다가 매일 버릴 수 있는 아파트와 달리 배출 요일이 정해져 있다는 점이 불편했다. 하지만 빌라만 나가면 빵집, 커피전문점, 치킨집 등 상가가 코앞에 있다는 점은 편리했다.

빌라에서 먹는 맛이 색다르다.
빌라에서 먹는 맛이 색다르다.

넷째, 식기도 부족하고 냉장고 자리도 부족해 음식을 해 먹기 힘들었다. 부모님께 받은 김치 3(배추김치, 총각김치, 깍두기)과 김을 기본으로 간단한 계란프라이, 스팸구이, 멸치볶음, 숭늉 같은 음식만 가끔 했을 뿐이다. 대신 치킨, 피자 같은 배달 음식을 평소보다 자주 먹었고 식사 준비를 위해 투자하는 시간이 줄었다.

다섯째, 베란다가 없어 갑갑하고 바깥 소음이 그대로 들린다는 불편함이 있었다. 어느 날 밤에는 옆 건물 1층 상가에서 벌어지는 부부싸움의 소리를 고스란히 들으며 불안에 떨어야 했다.

물건을 던지고 유리가 깨지는 소리, 욕설과 고성이 오가는 소리를 들으며 혹시 모를 (아마도 여성일) 인명피해가 걱정되었다. 경찰에 신고해야 할지 말지 고민할 정도로 싸움의 양상이 심각했는데(찔러봐 라는 소리가 몇 번이나 들렸다) 어쨌든 결국에는 비극적인 결말 없이(?) 싸움이 종료되었고 나는 방관하는 사람으로 남았다. 다음날 유리 조각을 쓸어 담는 여성을 유리 너머 얼핏 보면서 죄책감을 느꼈다.

여섯째, 1층 상가인 족발집에서 풍겨오는 냄새의 유혹으로 다이어트 중인 남편이 힘들었다고 한다. 그러나 1층이 상가였기 때문에 층간소음을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건물주 말대로 이곳에선 아이들이 마음껏 뛰어놀아도 되어 안심이었다. 한 달간 뛰지 마라, 조용히 해라는 잔소리를 할 필요가 없었다.

일곱째, 아이들이 매일같이 텔레비전의 유혹에 빠졌다. 놀 거리가 별로 없어 일정 시간 시청을 허용해 준 탓도 있지만, 아이들은 습관적(!)으로 아침저녁에 TV를 보았다. 역설적으로 우리 집에는 앞으로도 TV를 놓으면 안 되겠다는 결심을 공고히 하는 계기가 되었다.

여덟째, 세탁기 용량이 적고 빨래를 건조할 곳이 부족해 거의 매일 세탁기를 돌려야 했다. 4인 가족의 옷이며 수건 등 빨랫걸이가 하루마다 어마어마하게 쏟아져 나왔다. 물 부족 국가에서 매일 물 낭비를 하는 셈이었다.

아홉째, 지하주차장이 없어 비가 오거나 서리가 내릴 때 불편했다. 서리가 자동차의 유리창을 꽁꽁 얼린 아침에는 딱딱한 물건으로 박박 긁어내야만 했다.

집 떠난 장점보다 단점들을 더 많이 나열했지만, 이 한 달이라는 기간은 우리가족의 이색적인 추억으로 남을 것이다. 또한 내가 사는 지역에 공원을 겸한 놀이터가 생각보다 많다는 것을 깨닫는 시간이기도 했다.

아이들이 줄어들면서 놀이터를 없애는 곳이 많다는 말을 들었는데(내 고향 동네에도 딱 하나 있던 놀이터가 사라진 지 오래다) 내가 지내던 빌라 근처에는 인구가 많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공원놀이터가 5개쯤 있었다.

아이들은 놀이기구에서 놀고 어른들은 운동기구를 이용하고 나무 아래 벤치에서는 누구나 쉴 수 있는, 열린 휴식공간이 곳곳에 존재하는 지역이었다. 주민들을 배려해주는 유관기관에 고마움이 퐁퐁 샘솟았다.

곧 이 빌라를 떠난다. 리모델링 된 집에 돌아가기 하루 전인 오늘은 유독 가수 이상우의 그녀를 만나는 곳 100미터 전이란 노래가 머릿속에 맴돈다. “마음은 그곳을 달려가고 있지만 가슴이 떨려오네”.

깨끗하고 밝아진 집에서 아쉬운 점보다는 좋은 점들을, 과거보다는 미래를 염두에 두며 한 시절을 보낼 것 같은 예감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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