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산시대 문단】 저자마당의 풍속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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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산시대 문단】 저자마당의 풍속도
  • 서산시대
  • 승인 2021.11.25 2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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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숙/수필가. 수석동
김기숙/수필가. 수석동

시월의 마지막 달력이 한 장 찢기어 나가고 불청객 늦 가을비가 내리는 날이다. 날마다 내리는 비에 촌로들은 지쳐가고 몸뚱이는 천근만근이다. 서울에서 사는 친구의 전화가 왔다. 벼 타작도 끝이 나고 비 오는 날 무엇 하느냐는 소리다.

이 친구 하는 소리 좀 들어봐! 벼 타작이 끝났다고 일이 없는 줄 아나 봐, 농사지은 부산물 치울 것이 더 많거든. 입동이 지났으니 더 추워지기 전에 마늘도 심어야 하고 김장도 해야 하고 등등 메주까지 쑤어야 다리 뻗고 쉬어보는 것이여. 또 여름내 부려 먹은 몸도 션찮으니 병원에 가야하고.......”

나는 친구한테 무슨 보상이라도 받으려는 것처럼 푸념하듯이 대거리를 한다. “여름내 부려 먹은 몸은 자그마치 칠십 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는 국산 메이커 농기구나 마찬가지여. 병원에 가서 어디를 고쳐야 될지 알아봐야 쓰것다.”

한 마디 더 얘기하고 마무리를 지었다. 농촌 실정을 잘 모르는 친구와 미주알고주알 한참 이야기를 하고 병원에 들렀다. “허리가 안 좋으니까 일 좀 적게 하세요?” 충고하는 의사에게 대거리를 한다.

촌에서 살면서 어떻게 일을 안 해유?”

치료를 받고 나오니까 비는 계속 내리고 있다. 떡 본 김에 제사 지낸다고 비는 오거나 말거나 오래 만에 전통시장인 난전과 생선시장을 골고루 돌아다녔다. 전통시장인 난전은 주로 농촌에서 농사지은 채소나 푸성귀를 파는 분들로 대개가 다 연세 드신 분들이 많다. 그런 모습이 보나 마나 젊어서의 내 모습이고 허리 굽고 손마디 굵고 주름지고 검은 얼굴은 현재의 내 모습이다. 나도 아이들 어릴 적 한 때는 밭에서 길러 온 참외나 무, 배추를 가리개도 없는 저자 마당에 나온적이 있다. 오는 사람 가는 사람 쳐다보면서 간신히 자리를 잡아 앉으면 주인이라며 비키라 하고, 어떤 이는 자기가 먼저 자리를 잡았다고 떼를 쓰며 자리를 뺏기도 했다.

이리저리 쫒기다 보면 푸성귀 보따리는 정리정돈이 안된다. 지금 영성약국 골목이 복개천 이전이라 악취가 만만하지 안핬다. 하천 둑 따라 여럿이 일렬로 앉아 저자를 보면 물건이 하천으로 떨어지기 일쑤고, 그나마나도 대문이 앞으로 난 집주인들은 문앞에서 장사하지 말라고 아우성을 친다. 집 없는 서러움보다 더한 자리가 저자마당에서의 자리다툼이었다.

지세가 삼백 원이었는데 지세를 안 내려고 남의 물건 앞에 자기 물건 갖다 놓고 생떼 쓰는 아주머니와 지세 받는 아저씨와 입씨름이 벌어지기도 했다. 멀리서 망보다 냅다 와서 지세 달라고 하면 물건 안 가지고 왔다고 옥신각신하면 난전은 갑자기 떠들썩하는 진풍경이 벌어지기도 했다.

요즘은 저자마당의 난전도 깔끔하게 단장해서 파라솔 하나씩 세우고 장사를 한다. 가끔 뒷골목에서 보자기 깔고 저자 보는 이들도 더러 있기도 하지만, 지금은 지세를 받는지 안 받는지 모르겠다.

서산은 바다가 가까워 싱싱 살아있는 생선들이 많이 있어 시장에 가면 구경삼아 들르는 곳이 수족관이다. 수족관을 거쳐 시장통로를 나오면 등 굽은 할머니가 호박잎 몇 장, 풋콩 한 대접. 달래 한 주먹을 보자기 깔고 우산도 없이 비를 맞고 앉아 있다. 물건값을 물어보는 이도 없다. 비를 맞아서 손이 시려 운 지 두 손을 모으고 나를 쳐다본다. 할머니가 하도 딱해서 오도 가도 못하고 나도 쳐다보다 둘이서 눈이 딱 마주쳤다. 나를 올려다보는 할머니 눈빛은 처량하기만 하다.

따뜻한 커피 한 잔을 사다 드렸으면 좋으련만 마음만 있다. 허리가 아파 제대로 걷지를 못하는 발길을 돌려서 나오는데 코앞에서 김이 무럭무럭 나는 찐빵 장사가 있다.

따뜻한 찐빵을 사드리면 손도 덥히고 잡수시면 요기가 되겠지.”

찐빵을 샀는데 김이 덜 올라와서 빵 주인에게 선불을 주고 저기 푸성귀 파는 할머니에게 빵 좀 갖다 드리라고 부탁했다. 할머니에게 가서 할머니, 빵 장사가 빵 갖다 드리면 잡수셔요하니까 뭐라고 안 들려. 안 들려만 반복하신다.

누가 빵 갖다주면 잡수시라 구유.” 귀도 몹시 어두운 할머니다.

지나가는 이가 들으면 싸운다고 할까 봐 대충 말하고 맡긴 빵은 빵장수의 양심에 맡기고 버스를 타러 터미널로 향했다. 가는 길 할머니가 눈에 연신 어린다.

방석도 없이 쪼그리고 앉은 세월의 모습. 두툼한 잠바는 비에 젖어 무겁기도 하련만 왜 그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할까.

돈은 벌기도 어렵고 쓰기는 쉽다. 대궐 같은 집은 있어도 저자마당에 오면 사서 고생하는 곳이 난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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