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에 한 번 하는 여행...너무 떨려요

장애인에겐 여전히 문턱 높은 식당

 

서산시중증장애인자립생활지원센터 소속 장애인들과 활동지원사 등 24명이 세종특별자치시에 위치한 ‘국립세종수목원으로 여행을 떠났다.
서산시중증장애인자립생활지원센터 소속 장애인들과 활동지원사 등 24명이 세종특별자치시에 위치한 ‘국립세종수목원으로 여행을 떠났다.
모녀의 모습
모녀의 모습

간만에 하는 여행이라 너무 떨려요. 몇 날 동안 잠을 설쳤어요.”

중증장애를 가지고 있는 이지숙(40) 씨는 나들이 소식에 행여 비라도 내릴까 노심초사했다. 그녀의 마음을 알기라도 한 듯 하늘은 비 소식 대신 한자락 낮은 바람을 데려다 주었다.

시곗바늘이 열 시를 넘겼다. 출발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아직 한 분이 도착하지 않았어요라고 했다. 아마도 일찍 잠자리에 들었을 테지만 막상 1년 만의 나들이 전야가 어디 그리 쉬 잠을 데려왔을까. 분명 여행길에 오를 지각생의 새벽잠을 설치게 했으리라.

지난 18일 오전 10시를 조금 넘긴 시간, 서산시중증장애인자립생활지원센터 소속 장애인들과 활동지원사 등 24명을 실은 버스는 손소독과 체온체크 등 방역수칙을 지키며 세종특별자치시에 위치한 국립세종수목원으로 출발했다.

수목원에 들어가기 전 촬영한 모습
버스에서 하차하여 수목원으로 들어가기 전 촬영한 모습

여전히 식당에서는 환영받지 못하는 현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약 1시간 30분을 달려 도착한 첫 번째 장소는 정부세종청사가 즐비하게 늘어서 있는 한식집이었다. 이미 식당에는 사람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음식을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 일행이 문을 열고 들어가자 주인은 급하게 다가와 짜증 섞인 인상으로 퉁명스럽게 우리 일행을 자리로 안내했다.

기분이 좋지 않았지만 꾹 참고 죄지은 사람마냥 옆으로 비켜섰다. 예약을 했는데도 찡그린 인상과 강압적인 태도에 화가 치밀기도 했다. ‘그래, 좋은 날인데 참자를 몇 번이나 되뇌었는지 모른다. 시키는 대로 몇 번의 자리 옮김을 한 후에야 겨우 의자에 앉을 수 있었다.

이런 상황에 대해 활동지원사 중 한 분은 이렇게 말했다. “장애인분들은 마음 놓고 어딜 가지 못해요. 장애인 편의시설이 안되어 있는 곳이 많아 사실 갈 곳도 별로 없고요. 무엇보다 식당을 정하려면 서너 곳은 기본이에요라고 말했다.

착한 가게도 있어요. 제가 아는 식당 한 곳은 장애인들이 예약하자 휠체어가 쉽게 올라갈 수 있도록 그날 바로 경사로를 대주었죠라고 감사함을 잊지 않았다. 함께 사는 세상이라면 적어도 이런 마음이면 얼마나 좋을까.

54살의 보치아선수 이명숙씨
54살의 보치아선수 명숙씨

때 빼고, 광내고. 이발까지 하며 기다렸던 여행

빨간 운동복을 입은 동안녀 54살의 보치아선수 이명숙씨는 연신 해맑은 미소를 보이며 귀걸이와 팔찌를 보여주었다. 예쁘게 보이기 위해 이른 아침부터 한껏 멋을 낸 모습이 눈에 선했다.

최강 동안이라고 말했더니 연신 웃음기를 거두지 못하고 좋아한다. 누구보다 순수함에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여행하는 날이 제일 신난다고 했던 분이다.

활동지원사 A씨는 작년에는 안면도로 가서 꽃게찜을 먹고 수목원을 갔어요. 올해는 휠체어를 타고 돌아다니기에 좋은 이곳으로 오게 됐고요. 너무 설레요. 사전답사 때 보니 이곳은 경사도 심하지 않고, 편의시설도 상당히 좋더라고요. 기분 전환하기에는 여기만 한 곳이 없는 것 같아요라며 옆자리의 중증장애인과 스스럼없이 편하게 대화를 나누기도 했다.

20대 권호철씨
호철씨는 여행 떠난기 전, 때 빼고 광내며 이발까지 했다

모야모야병 환자이며 뇌전증을 앓고 있는 20대 권호철씨의 활동지원사 B씨는 제가 돌보는 친구는 여행간다고 진작부터 때 빼고, 광내며, 이발까지 했어요. 여행은 떠나기 전이 제일 설렌다잖아요. 우리 친구보다 제가 더 떨렸던 것 같아요라고 말하며 환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수목원을 거닐며 기뻐하는 모습들
수목원을 거닐며 사진찍기에 여념이 없는 모습들
수목원을 거닐며 사진찍기에 여념이 없는 모습들
수목원을 거닐며 사진찍기에 여념이 없는 모습들

 저마다의 아픔을 내려놓고 나선 여행길

점심을 먹고 수목원으로 입장하니 햇살의 포근한 미소가 그동안 장애인으로서 겪어야 했던 이분들의 아픈 상처를 어루만져 주었다. 이미 여러 곳에서 관람 온 장애인들이 느린 걸음을 옮기며 수목원을 구경하고 있었다. 그들의 얼굴에도 웃음이 가득했다.

40대 후반 김익수씨의 수목원 나들이
40대 후반 김익수씨의 수목원 나들이

일상생활에 불편을 겪고 계시는 중증장애인들에게 활동지원사가 짝이 되어 구간 구간마다 행복한 걸음을 옮겼다. 그중에서도 20대 초반에 교통사고를 당한 40대 후반 김익수씨는 부모님으로부터 24시간 활동지원 서비스를 받고 있다.

한시도 눈을 뗄 수 없을 정도로 손이 많이 가는 분이셨는데도 불구하고 굉장히 긍정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 때때로 투덜거렸던 자신이 한량없이 부끄러워지는 순간이었다.

아들을 돌보는 아버지께 여행소감을 물었더니 아들 돌보느라 정신없이 보냈는데 이렇게 가족들과 함께 하루 동안 여행을 하게 되어 너무 기분이 좋다연신 웃는 아들을 보면서 오길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고 좋아하셨다.

늘 씩씩한 상표씨
늘 씩씩한 상표씨

씩씩하게 앞서 나가시는 또 다른 장애인 강상표씨는 부모님이 걱정을 많이 했는데 저 스스로 독립을 했어요. 처음에는 휴지도 팔고 이것저것 경제적인 벌이를 했죠. 하지만 그때 너무 무리했는지 요즘은 아파서 아무것도 하지 못해요라며 이 손이 너무 많은 혹사를 당했어요라고 애써 밝은 모습을 지어 보였다.

오늘 나들이가 어떠냐는 질문에는 스트레스가 확 풀려서 너무 기분이 좋다며 연신 싱글벙글 웃었다. 먼저 간 지인들을 큰 소리로 부르며 찾기도 했던 당당하고 멋졌던 분. 때때로 힘든 일이 찾아오면 이분의 긍정적인 생각을 떠올리며 힘을 받아야겠단 생각을 잠시 해봤다.

시부문에서 최우수상을 수상한 이지숙씨(좌)와 김경수 센터장(우)
시부문에서 최우수상을 수상한 이지숙씨(좌)와 김경수 센터장(우)

이지숙 시인 시가 있어 행복해요

서산시중증장애인자립생활지원센터 김경수 센터장은 수목원을 거닐다 약간 뒤떨어져 오고 있던 이지숙 씨를 불러 함께 움직이자고 제안했다. 평소에도 그녀를 만나고 싶었었다.

그녀는 충청남도남부장애인종합복지관에서 주최한 제4회 장애인 문화예술 작품 공모전 의 시부문에서 성인부 최우수상을 받은 분이었다. 평소에도 이 씨는 켈리그라피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등 글쓰기에 남다른 재주가 있었다. 이번 여행에서 그녀는 또 어떤 글로 사람들에게 감동을 전할까.

엄마가 돌아가신 지 5년 됐어요. 어떻게 살아갈까 생각했지만 그래도 제겐 시가 있어 다행이었어요. 시만 있으면 혼자서도 당당히 살아갈 수 있거든요. 아 또 있어요. 센터에 계신 분들과 같이 해마다 한 번씩 여행도 가요. 그중에서도 이번 여행이 평생 기억에 남을 것 같아요. 사진을 많이 찍고 싶어요. 남는 것은 사진밖에 없잖아요.”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을 시로 승화시키는 마흔살 지숙씨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을 시로 승화시키는 마흔살 지숙씨

능수능란하게 전동휠체어를 운전하는 이지숙 씨를 보면서 육신은 멀쩡하지만, 정신이 병든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를 생각하게 했다. 그녀는 교통사고로 모든 것을 잃었다고 생각했다지만, 누구도 가질 수 없는 아름다운 시가 자신의 마음속에 소복이 들어 있는 걸 느끼고 다시 일어날 수 있었다.

지숙 씨의 이야기를 시로 만나고 싶어요. 조만간 지숙 씨가 쓰고 있는 시에 대해 얘기해 줄래요?”라고 하자 부끄럽다며, 그렇지만 꼭 얘기해주겠다는 약속을 해주었다.


장애인의 90% 이상이 후천적으로 어느날 문득 장애를 가지게 됐다는 통계를 본 적이 있다. 그들도 한때는 장애를 갖지 않은 비장애인이었다. 그렇다면 비장애인은 어쩌면 예비 장애인일지도 모른다.

그날 식당에서 보여준 장애인에 대한 차별은 어쩌면 앞으로 내가 감수해야 할 차별의 문제는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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