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0자 읽기】 김가연 시인의 여전히 살아 숨 쉬는 해미읍성 ‘육백 년의 약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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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0자 읽기】 김가연 시인의 여전히 살아 숨 쉬는 해미읍성 ‘육백 년의 약속’
  • 최미향 기자
  • 승인 2021.11.23 21:1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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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당신의 품에 다시 육백 년의 약속을 쌓는다’

해미읍성 축성 600주년 기념 시집

육백 년의 약속제목만으로도 가슴이 뭉클하다. 가만히 손을 들어 유난히 두툼하고 커다란 표지를 만져본다. 차가운 가을에 아우성치는 민중의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해미읍성은 지금도 여전히 살아 숨 쉬고 있다는 작가의 말에 귀를 기울이게 된다. 어디선가 거친 숨소리가 자분히 들리는 듯 하다.

해미읍성 축성 600주년에 맞춰 출간한 김가연 시집 육백 년의 약속에는 무언가 비밀스런 고백이 들어 있는 듯하다. ‘둥그런 당신의 품에 다시 육백 년의 약속을 쌓는다는 말에는 하나 둘 성벽을 따라 쌓은 석공들의 혼불이 가슴 아리게 저려있다.

해미읍성에 대한 기존의 가치에 새로운 가치를 더하려는 뜨거운 사명에서 시작된 축성과 변천사 그리고 사람들의 이야기가 작가의 펜 끝에 오롯이 묻어 세상에 태어난 육백 년의 약속’. 작가는 그 속에서 가슴 벅찬 역사의 현장을 대숲 앞 감나무를 보며 발견했고, 민가의 돌담에서 스치는 바람 소리로 들었고, 또 청허정 소나무 숲에서 쓰러지는 서녘 달을 보며 눈물로 써 내려갔다.

해미읍성은 수많은 천주교인이 무참히 처형되어 목숨을 잃은 순교 성지다. 그 곳은 말씀의 현장이다. 탄압과 박해의 광경을 목도한 옥사 앞 회화나무는 지금도 가지가 잘린 채 그날을 증언하고 있다. 김가연 작가 시집에는 해미읍성이 전하는 뜨거운 전언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김가연 시인
김가연 시인

김가연 시인은 육백 년의 역사를 고스란히 담아내려 부단히 노력하며 창작의 세계를 조화롭게 유지하려 고심했다. 하지만 장구한 시간의 여정을 어찌 둔한 붓으로 다 받아 적을 수 있었겠는가. 못내 가 닿지 못한 마음이 있다그러나 해미읍성의 시간은 영원히 계속될 것이기에 더욱 푸르게 빛날 앞날을 기다리는 것으로 위로 삼는다는 소회를 밝혔다.

시인의 말이 짙어가는 가을 끝자락을 붙잡고 있다.

당신을 그려보고자 시작한 길이 이렇게나 흘렀다. 당신을 걷는 동안 풀벌레 울음을 건져 올리기도 하고 밤하늘 빈터를 서성이는 별의 이름을 부르기도 하면서 여기까지 왔다. 당신의 살 속에는 서로 비추어 일어서는 혼불이 있다. 맑은 영혼 부르는 생령이 있다. 그리고 당신은 도처에 있다. 둥그런 당신의 품에 다시 육백 년의 약속을 쌓는다.

김가연 시인의 해미읍성 축성 600주년 육백 년의 약속은 상권 민초가 쌓은 성’, 중권 사람, 풍경이 되다’, 하권 생명의 말씀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번 시집은 펴낸 곳 서산문화원이며 330쪽으로 ‘2021년 충청남도와 서산시의 보조금으로 제작되었다.


해미海美

멀고 아득한,

그러나 끝내 가 닿아야 할 당신은

우뚝한 나의 표상입니다

 

뼈는 삭고 살은 물이 되어도

이십일만구천 날 당신을 마주합니다

 

깊고 어두운 침묵 속에 계시는

당신은 나의 뿌리입니다

 

설령 이 길의 끝 알지 못한다 해도

눈비 내 몸 지나간 후에도

 

청허정 솔밭에 흰 뼈를 묻고

나는 오로지 당신을 기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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