흉터에 얽힌 사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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흉터에 얽힌 사연
  • 서산시대
  • 승인 2021.10.04 0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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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점엄마의 200점 도전기 76
다정한 다은 다연 자매
다정한 다은이와 다연이

식탁에서 밥을 먹던 다은이가 무언가에 홀린 듯 거실로 걸어갔다. 거실 테이블 앞에는 커다랗고 둥그런 풍선이 놓여 있었다. 평소라면 풍선을 가지고 논 후 공기를 빼 놓았을 텐데, 전날 놀러 온 지인이 꽁꽁 묶어 둔 풍선은 풀기가 어려웠고 그걸 방치해 둔 게 화근이었다.

테이블 앞까지 다가간 다은이가 발을 들어 풍선을 밟았다. 공기가 들어있는 고무풍선의 질감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아이는 그것이 단단한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체중이 다리로 쏠리면서 물컹한 풍선이 아래로 푹 꺼졌고 다은이는 순식간에 앞으로 고꾸라졌다.

다은이가 고꾸라진 곳에는 하필 모서리가 날카로운 테이블이 있었고, 부딪힌 곳은 하필 보드라운 눈두덩이었다. 다은이가 안정적으로 걸으니 다칠 위험이 줄었다 생각하고 그동안 베란다에 보관하던 테이블을 꺼낸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다. 방심했던 여러 상황들이 집적되어 사고로 이어졌다.

다은이가 울기 시작했다. 눈두덩엔 1cm 남짓의 벌어진 상처가 생겼다. 다친 곳이 안구가 아닌 것에 감사해야 할 판이었다. 드레싱 후 동네 소아과에 갔다. 봉합이 필요해 보였지만 어린 아이가 봉합의 과정을 견딜 수 있을지 걱정스러웠고, 가능하면 드레싱으로 해결해보고 싶은 마음이 컸다. 그러나 소아과에 봉합을 대신할 처치는 없었고 성형외과로 가라는 말만 돌아왔다.

과연 이 어린 아이가 봉합의 고통과 두려움을 견딜 수 있을까? 겁이 났지만 어쩔 수 없이 성형외과가 있는 D종합병원으로 향했다. 눈 주변이라 시술 시 움직이면 위험하므로 전신마취를 해야 했고 따라서 8시간의 금식이 요구되었다. 배가 고프다고 우는 아이를 달래가며 대기시간을 견뎠다.

마취상태인 다은이
마취상태인 다은이

전신마취를 하기도 전에 상처 부위를 수차례 찔러 부분 마취를 했다. 아이가 고통스러워하는 것을 보며 눈물 바람으로 곁을 지켰다. 우여곡절 끝에 전신마취 후 시술을 마치고 잠에서 깬 아이는 술 취한 사람처럼 휘청거렸다.

작은 상처에도 후폭풍은 길었다. 드레싱을 관리하고 발사 후에는 상처가 벌어지지 않게 한동안 스트립밴드를 붙였으며 이후에는 흉터가 옅어지는 연고를 바르고 선크림을 발랐다. 눈을 감고 뜰 때마다 느껴지는 안검의 이물감에 아이의 손이 자주 눈가로 갔고 그때마다 나는 입을 대야했다. 갖은 노력에도 아이의 눈에는 흔적이 남았다.

두번째 흉터의 원인이 된 놀이터 타일벽
두번째 흉터의 원인이 된 놀이터 타일벽

끝이 아니었다. 놀이터에서 놀던 4살 다은이가 손으로 눈을 가린 채 울면서 뛰어오고 있었다.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지만 별 일 아니라 믿고 싶었다. 그러나 다은이가 손을 떼는 순간 올 것이 왔다는 생각이 퍼뜩 들었다.

얼굴에 피가 흘르고 있었다. 휴지로 피를 닦자 놀이터 담벼락 타일에 긁힌 상처가 보였다. 주위가 술렁였다. 짐을 챙겨 아이 둘을 태우고 예전에 방문했던 D병원 응급실로 향했다. 오후 5시가 넘는 시간이었다. 다음날에야 봉합이 가능하다는 말에 대학병원으로 갔다. 자정이 되기 전 다은이는 전신마취 후 봉합을 끝낼 수 있었다.

발사 예정일이 되어 대학병원에서 의뢰해 준 D종합병원 성형외과에 갔다. 매스를 잡은 의사의 손이 떨렸다. 80대의 할아버지 의사였다. 안경을 쓰고 커다란 돋보기 하나를 더 갖다 댔음에도 수전증으로 실밥 하나를 뽑는 시간이 길었다. 시간이 지체될수록 다은이의 공포가 증폭되었다. 간호사, 나와 남편 세 명이 붙어도 다은이의 발버둥이 진정되지 않았다.

떨리는 손이 실밥이 아닌 다은이의 눈을 찌를 것만 같았다. 의사는 가만히 있지 못하는 다은이에게 혀를 내둘렀겠지만 옆에서 보는 내가 더 무서울 지경이었으니 다은이를 탓할 수도 없었다. 진땀 흘리며 겨우 실밥 한 개를 뽑은 의사가 내일 다시 뽑자고 하였다. 내일이라고 다를까? 남편이 이틀간 회사를 비울 수도 없었다.

쉬었다 다시 하기로 하고 진료실을 나왔다. 조용히 외래간호사에게 상황을 설명했다. 돋보기 2개에 의지한 수전증 의사에게 이대로 진료를 받다가는 아이 눈이 찔릴 것 같으니 다른 의사로 바꿔달라고, 타과도 상관없다고 부탁했다. 성형외과는 섬세한 작업이 필요해 타과 선생님이 보기 힘들다는 대답에 나는 인턴선생님도 괜찮다고 거듭 부탁했다. 선을 긋던 간호사가 이리저리 알아보더니 레이저치료를 하는 성형외과 의사에게 안내했다.

젊은 의사는 사탕을 쥐어주며 아이에게 말을 붙이더니 남은 실밥을 노련하고 신속하게 뽑았다. 그 방에 머문 시간은 5분이 채 되지 않았다.

다은이(오른쪽)와 다연이 자매
다은이와 다연이 자매

비싼 흉터연고도 큰 효과를 보지 못한 채 다은이의 왼쪽 눈가에는 2개의 흉터가 남았다. 다시 베란다로 빼놨던 테이블은 모서리보호대를 붙인 후 거실로 옮겼고, 다은이가 성인이 되면 레이저치료를 해 줄 작정이다. 성형외과 전문의 과정을 밟고 있는 조카에게 그때쯤이면 가족할인 혜택을 받을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하면서

최윤애 보건교사
최윤애 보건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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