빵점엄마의 200점 도전기-71

 

기다리던 임신이었다. 결혼 16개월차, 임신을 확인한 순간 남편과 얼싸안으며 환호했다.

인구감소와 임신장려 속에서 모성보호시간이라는 제도가 생겼다. ‘임신 12주 이내와 임신 36주 이상인 경우 12시간의 범위에서 근로시간을 단축할 수 있는 제도이다. 현재는 임신 모든 기간에 사용 가능하도록 개정되었다.

임신 사실을 보고했을 때 이 같은 제도에 대해 상사가 먼저 권유해주면 얼마나 고마울까. 모성보호제도를 알아보고 병원에서 발급받은 임신확인서를 쥐고서도 상관의 눈치를 보느라 사용하지 못하다가 사용기간이 종료될 시점에 병가를 제외하고 3일간 사용했다.

임신 12주가 지나도 미친 듯이 쏟아지는 잠과 피로는 계속되었다. 퇴근 후 집에 도착하는 순간 파김치가 되어 침대에 쓰러지듯 드러눕곤 하는 시간이 반복되었다. 임신 전기간으로 확대된 모성보호시간이 더없이 반가운 이유다.

임신 중기에 출혈로 급작스럽게 입원을 하면서 2주 병가를 썼다. 입원 중에 2주 후에는 출근을 할 수 있겠느냐는 전화를 받았다. 앞으로의 상황을 확신할 수 없는 상황이라 어려울 것 같다고 답변하자 상관은 기다렸다는 듯 출산휴가를 미리 당겨쓰라고 제안했다. 여러 상황을 고려하였을 때 어려울 것 같아 병가를 이어 쓰겠다고 했다.

 

 

나의 답변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같은 제안이 반복되었다. 그것은 제안이 아닌 지시였을 것이다. 생후 45일 된 아기를 남의 손에 맡기고 출근할 자신이 없었다. 거절 의사를 여러 번 완곡히 밝혔지만 그의 의지는 단호했다. 기간제 인력 문제로 골머리를 앓았을 그의 논리는 출산휴가 후 병가를 쓰면 된다는 것이었다. 그때는 되고 지금은 안된다니. 출산휴가 후 나에게 병이 있을지 없을지도 모를 일이건만 결국 기싸움에서 패배한 나의 특별휴가는 상관의 결정대로 진행되었다.

 

 

이후에도 이어진 출혈과 몇 번의 입원, 꼼짝 못 하고 누워 지내던 생활, 대학병원으로 전원 후 출산을 하고 신생아 중환자실에 아기를 맡겨야 했던 지난한 시간들이 이어졌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나의 관절은 여기저기 아프지 않은 곳이 없었다. 한의원에서 치료받고 한약을 지어 먹으며 진단서를 발급받은 나는 출산휴가 후에 병가를 이어 쓰게 되었다.

출산휴가가 종료될 시점인 12월 초 예의 상관에게 다시 전화가 왔다. 특별휴가를 잘 사용했으니 근무지에 와서 관리자에게 인사를 드리라는 내용이었다. 순간 뜨악했다. 12월 중순 차가운 날씨에 중환자실 출신의 목도 못 가누는 아기를 데리고 오라고? 죄송하지만 한두 달 후 아기가 목이라도 가누면 인사드리겠다고 하자 돌아온 목소리가 싸늘해졌다.

 

관리자에게 전화를 걸어 감사의 인사를 드렸다. 아기가 목이라도 가누면 카시트 태워서 방문하겠다고 하자 아기는 업고 와도 되고 안고 와도 되는데, 핑계 대지 마라.”고 했다. 인사가 목적이라면 전화로는 안 되는 이유는 무엇인가. 평상시라면 당장이라도 달려갈 텐데, 몸도 성치 않은 나와 목도 가누지 못하는 아기의 조합이 그의 말 속에서 삐걱거렸다.

1월 말이 되어 육아휴직을 쓰러 직장에 갔다. 상관은 서류를 건네며 그의 말을 거역한 내 눈을 한번 쳐다보지도 않았다. 아이를 낳고 키우는 일이 이렇게 고달픈 거였나, 어쩐지 울고 싶은 심정이 되었다. 머릿속에서 만감이 교차했다.

덕분에 휴가를 쓰고 무사히 출산을 할 수 있었다고 감사를 드리고 대화를 이어나가면서 찬 바람이 쌩쌩 불던 그의 표정이 서서히 풀렸다. 같은 여자로서 공감대가 있었으리라 생각된다. 상관 역시 그간 수차례에 걸친 병가와 휴가 처리, 그에 따른 인력 문제로 고생이 많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별의별 난관들을 헤쳐 가며 아이를 임신하고 출산해야 하는 여자의 생이 고단했다. 생명을 잉태하고 그 생명을 근 1년 동안 제 몸에서 키우는 여성. 출산 후에도 여성의 희생 없이 아이를 키우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고, 아이가 성인이 될 때까지 또 다른 여성의 손을 허다하게 빌려야 하는 현실.

노령화 현상이 심해지고 노인을 부양할 젊은 인구가 필요하다며 여성들에게 아이를 낳으라고 외치기 전에 사회 전반에 만연한 갑질이나 어서 청산해주면 좋겠다. 대한민국에서는 아이 없이 사는 게 마음 편하다는 말이 여성들 입에서 더 많이 나오기 전에.

최윤애 보건교사
최윤애 보건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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