빵점엄마의 200점 도전기-70

다연이와 함께 오른 집뒤 산책로
다연이와 함께 오른 집뒤 산책로

 

혼자서 아이 둘을 데리고 마을 뒷산에 올랐다. 산책로 수준의 뒷산 초입에 멧돼지 출몰 주의 표지판이 있었다. 먹이가 부족한 봄이면 멧돼지가 간혹 민가로 내려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직접 눈으로 보니 긴장이 배가 되었다. 아이들에게 멧돼지가 나타나면 나무 뒤에 숨어 움직이지 말고 조용히 있어야 된다고 가르쳤다. 다은이, 다연이가 책이 아닌 현실에서 처음으로 멧돼지를 인식한 날이었다.

휴직 기간 친정에 갔을 때였다. 남편은 다음날 출근이라 먼저 울산으로 가고, 우리는 친정에서 하룻밤을 더 머물기로 했다. 날이 어두워지자 다연이가 아빠를 찾았다. 막무가내로 아빠를 찾으러 나가자며 현관을 서성이는 다연이를 한 방에 제압하기로 마음먹었다.

다연아, 외할머니집 뒤에는 산이 있어서 깜깜해지면 멧돼지가 나온대.”

효과 만점이었다. 곶감을 준다니 울음을 뚝 멈추었다는 아이처럼 다연이의 고집이 말 한 마디로 순식간에 꺾였다. 다연이는 겁을 먹고 얼른 현관문을 닫으면서 제 아빠를 걱정했다. 아빠는 힘이 세서 멧돼지가 나타나도 물리칠 수 있다고 둘러댔다. 그 말에 위안을 얻은 다연이에게 아빠라는 존재는 천하무적 그 자체였다.

다연이의 동심이 언제까지나 이어지기를...
다연이의 동심이 언제까지나 이어지기를...

 

한동안 다연이는 놀이터에서 놀다가도 해가 질 무렵이면 멧돼지가 나온다며 내 손을 집으로 잡아끌었다. 괜스레 아이에게 겁을 준 것 같아 미안했다. 차를 타고 가다가도 불빛이 보이면 멧돼지 눈이라고 무서워하는 다연이에게 나는 아빠가 우리를 지켜주니 괜찮다고, 멧돼지보다 아빠 힘이 더 세다고 달래주어야 했다.

시부모님 덕분에 멧돼지 고기를 먹을 일이 생겼다. 시골 이웃이 나누어주었다는데 꼭 쇠고기 같아 보였다. 멧돼지 구이를 먹고 난 뒤부터 다연이는 큰 소리를 떵떵 쳤다. 멧돼지가 나와서 아빠가 멧돼지를 잡으면 잘라서 구워 먹을 거라고. 그새 아이의 인식 속에서 두려움의 존재가 먹을 수 있는 존재로 전환되었다. 잔인하지만 다연이에게는 용기를 내게 만드는 스토리였다.

다연이는 어제 밤에도 어두운 숲을 향해 저기에 빨간 눈이 두 개 보인다고, 그게 멧돼지라고 아빠에게 속삭였다. 멧돼지를 잡으면 다리를 구워먹자고 감히 말하는 다연이에게 우리는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 할까.

아이를 들었다 놨다 하는 세 치 혀가 부메랑처럼 다시금 돌아와 커다란 숙제를 안겨주었다.

아이들이 건강하게 살아갈 세상을 꿈꾼다.
아이들이 건강하게 살아갈 세상을 꿈꾼다.
최윤애 보건교사
최윤애 보건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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