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서산세무서 미화담당자 이덕순씨의 사모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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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서산세무서 미화담당자 이덕순씨의 사모곡
  • 최미향 기자
  • 승인 2021.07.27 23:3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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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감자꽃이 떨어지면 엄마가 그립다
서산세무서 미화담당자 이덕순씨
서산세무서 미화담당자 이덕순씨

작고 아담한 모습의 그녀는 평범한 청소부다. 남들과 같이 제시간에 출근해 작업복으로 갈아입으면 그때부터 그녀의 행복한 일과가 시작된다. 어제 하루 종일 쓸고 닦았지만 언제 그랬냐는 듯 하루살이가 쌓여 있고 먼지가 가득하다. 그녀는 누군가 자신의 손길이 필요로 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그저 고맙다.

어제 읽은 글 한 줄이 머릿속을 맴돌 때 안녕하세요. 수고하십니다라는 직원들의 목소리가 들린다. 마주 보며 인사하는 그녀의 눈길이 따사롭다. 그렇게 하루를 보낸다. 때로는 엄마에 대한 그리움에 목이 메어 아무도 없는 곳에 웅크리고 앉아 훌쩍여도 그녀에게 신경 쓰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 좋다.

불볕더위가 34도를 가리키는 23일 양산 하나에 의지하며 씩씩하게 걸어 오고있는 이덕순씨를 만났다.

저로 말할 것 같으면 나이도 어느 정도 먹을 만큼 먹은, 하얀 머리카락을 가진 사람이라며 저는 서산세무서 청소아줌마 이덕순이라고 합니다라고 반갑게 인사를 해왔다.

2007년 엄마가 길을 잃다

서울에서 서산으로 이사하다

엄마가 치매 판정을 받다

이씨의 고향은 충남 당진이며 13녀 중 장녀로 태어났다. 줄곧 서울에서 결혼생활을 했고 서산은 남편 사업체가 있다 보니 가끔 한 번씩 왕래만 하던 중이었다.

그러다 어느날 경찰서로부터 한 통의 전화를 받게 됐다. “어머니께서 당진 장에 나오셨다가 집을 잃어버리셨습니다.” 그동안 엄마가 여기저기 잘 다니시는 걸 알기에 당뇨성 치매가 와 있다는 것을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겸사겸사 이씨는 딱 2년만 살다가 서울로 올라갈 심산으로 서산으로 내려왔다. 그리고 2007년 치매를 앓던 엄마를 집으로 모셨다.

엄마를 돌보기 위해 당시 막 신설된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따기도 한 이씨는 엄마와 함께 흘렸던 무수한 눈물들을 기억합니다. 그것은 지금도 제 인생길 위에 깊은 자국으로 남아 저를 아프게 합니다라고 했다.

치매 환자, 더구나 그것이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우리 엄마라는 사실에 미치도록 무너졌던 시간들. 그렇게 힘들고 가슴 아픈 사이에도 해는 뜨고 사람들은 어제와 같은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었다.

이씨는 서산에 터를 잡은 지 올해로 17년입니다. 그중에는 엄마와 함께 한 9년이 고스란히 포함되어 있어요. 엄마라는 단어는 여전히 그리운 단어입니다. 그리고 저를 지탱하고 있는 힘이기도 하고요라며 고개를 떨궜다.

세 자매와 함께 여행 중
세 자매와 함께 여행 중

남편이 사업체를 접다

슬픈 굴비 한 마리

잘해드리지 못한 괴로움에 잠 설쳐

이씨의 엄마는 그래도 고운 치매에 속했다. 욕을 하거나, 던지거나, 벽에 뭘 바르는 일은 없었다. 단지 건망증이 심하다는 정도일까. 밥을 다 드시고 쟁반이 바로 옆에 있는데도 밥 달라고 하는 정도였다.

그 무렵이었다. 꽤 괜찮게 사업을 하고 있던 이씨의 남편이 사업체를 접고 집으로 돌아와 컴퓨터 앞에서 떠나지 않았다. 이씨는 남편의 생명은 곧 자존심이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그러다 보니 엄마의 생활비 잔고가 여기저기 모래알 세듯 빠져나가면서 줄어들기 시작했다. 슬픈 사실은 엄마가 좋아하는 굴비를 사러 가서도 제일 비싼 굴비는 눈으로만 봐야 했던 심정이었다. 결국 중간 크기의 굴비를 담아 집으로 돌아오는 날이면 왼쪽 가슴을 아무리 치고 또 쳐도 맺힌 곳이 뚫리지 않았다. 그 죄스러움에 이씨는 지금도 굴비를 먹지 못한다.

요즘처럼 유난히 더운 날이면 문득 청소하다가도 아이스크림을 내가 몇 번 엄마에게 사드렸을까?’ 생각하곤 가슴 언저리가 미어진다. 머리 감기는 날 짜증 난다고 샴푸질을 세게 했던 일. 그렇게 머릿밑이 빨갛게 된 엄마 모습을 발견하며 옷 입히다 말고 엄마 품에 안겨 한바탕 울기도 했다.

엄마 내가 누구지?” 울먹이며 물으면 우리 이쁜딸이라며 이씨를 꼭 끌어안았던 그녀의 엄마. 돌이켜보면 이씨에게는 모든 날 모든 순간이 후회투성이로 남아있다.

동생들은 엄마를 모셨다는 이유로 이씨 부부가 최고인 줄 안다. 하지만 그녀는 그게 더 부끄럽다. “너네들은 엄마랑 같이 안 살아서 죄를 안 지었지. 나는 잘못한 게 너무 많아.” 그런 날이면 이씨의 가슴엔 밤새 비가 내렸다.

20171117일 일요일 새벽

93세 엄마의 마지막 선물

이씨 품에 안겨 하늘나라로 떠나다

엄마를 모신지 9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다. 당시 서산으로 내려올 때 군인이었던 아들은 한 가정의 가장이 되었고 남편도 다시 일자리를 찾아 생활전선으로 뛰어들었다.

2017, 집안에 슬픈 바람이 불었다. 엄마가 93세 되던 해였다. 그때까지도 이씨는 엄마가 자신에게 줄 선물이 있다는 것을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노인분들이 식사를 안 하시면 위험한데도 저는 우리 엄마는 안 죽어. 그냥 내 곁에 있는 거야라며 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습니다. 엄마는 그렇게 영원히 자식들 곁에 계실 줄만 알았습니다.”

20171116일 밤 11, 엄마가 평소와 다른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날은 막냇동생 아들의 결혼식이 있던 날이었다. 늦게 집으로 돌아온 이씨는 엄마의 피부에서 붉은 반점을 발견하곤 뭔가 불길한 예감을 느꼈다.

이씨는 엄마를 품에 안고 기도를 했다. 형제들이 달려왔고 엄마는 긴 숨소리를 연거푸 하며 그녀의 가슴에 아기처럼 안겨있었다. 그것이 엄마의 이승에 남아있던 마지막 호흡이었다.

우리 엄마가 제게 당신의 마지막 품을 허락하셨습니다. 엄마가 저를 살게 하려고 선물을 주신 것이었죠. 만약 제가 돌아오기 전에 혼자서 돌아가셨다면 저는 지금 살지 못했을 것입니다.”

이씨의 엄마는 치매를 앓다가 20171117일 일요일 새벽에 4남매를 남겨두고 하늘나라로 떠났다.

어버이날 꽃바구니를 선물하면서 함께 찍은 사진
어버이날 꽃바구니를 선물하면서 함께 찍은 사진

엄마를 그리며 쓴 일기

잠을 설치는 무수한 밤

후회는 뼛속을 타고

이씨는 엄마는 남겨질 딸을 위해 마지막 시간을 선물로 주신 고마운 분이십니다. 우리 엄마는 제가 이 세상에 태어났을 때 저를 품 안에 안으시고 젖을 먹이셨던 그 모습으로 제 오른팔에 안겨 긴 호흡 가다듬으셨죠. 먼 길 갈 채비를 하신 엄마가 제 품에서 하늘나라로 떠나셨어요. 그 귀한 시간을 제게 주신 고마우신 우리 엄마께 생명 다 받쳐 감사를 드립니다며 눈물을 흘렸다.

지금 이씨는 엄마가 살아가신 그 길을 살아내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엄마께 다하지 못한 효도를 생각하면 오늘도 헛되고 헛된 통곡만 나온다. 그리고 나직이 엄마를 독백처럼 불러본다.

2019년에 쓴 그녀의 일기다. 이씨의 엄마가 떠난 지 14개월 되던 날, 잠을 잊은 일기장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밤중에 자려고 누웠는데

엄마 생각에 눈물이 나요

눈물이 귀 안으로 고이길래 일어났어요

 

소리내어 흐느끼는 슬픈 눈물

엄마 엄마

뼛속까지 아려오는 슬픈 눈물

 

어쩌라고 어쩌라고

좋은 것 맛있는 것도 못해 드리고

이토록 괴롭고 고통스러운지

 

엄마 어쩌지요?

엄마는 제 곁에 아니 계신 데

불효한 눈물이 끝도 없이 나와요

 

감자가 익어가면 엄마가 그립다

엄마의 빈자리, 그리고 취업

슬픔은 가슴에 새기고 씩씩하게


이씨가 쓴 일기장에는 엄마에 대한 그리움이 사무쳐있다.
이씨가 쓴 글에는 엄마에 대한 그리움이 사무쳐있다.

엄마, 하얗구 이쁜 감자꽃이 떨어지고 토실히 알이든 유월 감자가 익어 갑니다. 요맘때 감자 쪄서 뜨거운 걸 입김으로 호 불어 식혀서 엄마 입에 넣어 드렸던 그때가 생각나서 눈물납니다.

엄마 난 매일 눈물이 나요. 날마다 통곡이 나요. 엄마한테 불효해서요. 그리운 어머니

지난 6월에도 감자를 찌다가 가스레인지 앞에서 눈물을 뚝뚝 떨어뜨리며 가슴을 찢어냈던 이씨는 그때의 심정을 일기에 담아냈다. 그래도 아침이면 또 씩씩하게 일터로 떠난다.

사실 엄마가 떠난 빈자리가 너무나 커 더 이상 집에 있을 수 없었던 이씨는 일자리를 찾기 위해 서산고용센터로 잦은 발걸음을 옮겼었다.

제게는 너무 절박했어요. 그대로 있다가는 엄마 잃은 슬픔에 병이 날 것 같았거든요. 날마다 기도하면서 그랬어요. ‘작은 거라도 괜찮으니 안정적으로 급여를 받을 수 있는 일자리를 주세요. 제가 제일 잘 할 수 있는 것은 청소밖에 없습니다. 기다릴게요. 인도해 주세요라고요.”

기도가 통했는지 2018년 늦은 여름 이씨는 서산세무소 미화담당자로 취직을 했다. “주님은 저의 간절한 기도를 이루어 주셨어요. 저는 지금 일터에서 감사하게도 일할 수 있는 행복을 누려요. 송화가루가 날려서 일거리가 많아도 그냥 좋아요.”
이씨는 자신에게 일이 없었다면 지금쯤 우울증에 걸렸을지도 모르겠다고 했다. “여전히 엄마를 그리는 마음은 변함없지만, 그래서 일을 하다가도 때론 멍하니 서 있을 때가 있지만 이제는 약해지지 않습니다. 하늘나라에서 제가 힘들어하는 모습을 본다면 엄마 마음이 더 아플 것 같거든요. 가슴 깊이 사랑하는 엄마가 제 가슴에 영원히 머물기에 슬프지만 힘내서 또 열심히 살아갑니다.”

이제 이씨의 바람은 단 하나다. “지금껏 엄마께 더 잘해드리지 못했음에 슬픔의 무게가 심장을 가득 짓눌렀습니다. 하지만 이번 인터뷰로 인해 슬픔도 죄스러움도 한쪽에 묻고 남은 가족들과 행복하게 생활하겠습니다. 물론 저의 반쪽 사랑인 서산세무서와 함께요. 저는 이곳에서 아름다운 노년을 가꾸어 갈 예정입니다.”

이씨는 말을 마치자 자리에서 일어나 올 때처럼 씩씩하게 걷다가 되돌아보며 필자를 향해 오랫동안 손을 흔들어 주었다. 그녀의 밝은 미소가 더 이상 슬픔에 물들지 않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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