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하나의 ‘하! 나두’ 건축 - ⑭

통일 신라 시대 왕궁터인 월성에 복원한 월정교. 현재의 문화재는 복원과 보존의 공생 중이다.
통일 신라 시대 왕궁터인 월성에 복원한 월정교. 현재의 문화재는 복원과 보존의 공생 중이다.

태어나서부터, 해만 뜨면 팔랑팔랑뛰어놀던 어린 시절 즈음까지 전통 한옥에 살았었다. 그 시절 우리 동네에는 양식 건물과 한옥이 절반 정도 어우러져 있었고, 가장 친한 친구네가 양옥집이었다. 네 집 내 집을 하루에도 몇 번씩 오가며 놀았는데, 어린 마음에도 산뜻하게 지어 올려 따뜻한 새집이 수만 가지 이유로 부러웠다.

그러나 나의 한옥집에는 어린아이 취향을 저격하는 큰 자랑거리가 한 가지 있었다. 비가 오는 날이면 마루에 앉아 놀았는데, 빗물이 기와 미끄럼을 타고서 가지런히 떨어지는 모습은 아무리 보아도 재미있었다. 게다가 빗소리에 빗물 줄기가 더해진 물소리를 즐기노라면, 마라카스 소리에 드럼 비트가 얹어져서 풍성해지는 것 같았다. 그때부터였나보다. 가끔 접하는 빗소리의 리듬감은 생각 주머니를 잡념 없이 푹 쉬게 해준다. 비 내리는 스페인에서 작곡된 쇼팽의 빗방울 전주곡이, 장마철 한옥의 맛을 머금었다면 어땠을까 상상해 본다.

한옥은 숨을 쉬는 건축물이라고 한다. 이는 기후와 환경에 유기적으로 적응하는 과학적 요소가 곳곳에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기와에도 무릎을 '' 치게 하는 똘똘한 면모를 쉽게 찾을 수 있다. 기본적으로 기와지붕은 오목하게 생긴 암키와를 가지런히 놓고, 흙으로 접착하며 볼록하게 생긴 수키와로 덮는다. 이러한 시공방식은 여러 개의 틈과 결을 두어 건축물의 숨길을 열어준다. 겉으로는 물길을 잡아주고, 지붕 아래로는 공기가 소통하도록 한다. 이 같은 방식은 건축물에 여유와 생기까지 채워낸다.

기와와 관련하여서 고래 등 같은 기와집이라는 표현도 있다. 권위와 부의 상징을 위하여, 지붕 마감의 최고급 명품 외장재를 내세웠다. 기와는 건축의 부자재 중 한 가지일 뿐이다. 하지만 기술과 미학적 요소를 전문화하고자 많은 투자를 하였기에, 역사적으로도 시대별 양상을 파악하는 연구에 중요한 데이터가 된다. 기와터 유적에서 건축의 발전상을 발굴하고, ‘우리라는 기와를 세는 단위가 따로 있다는 것만으로도 전통 건축에서 기와는 꽤 큰 존재감을 빛냈음을 알 수 있다.

기와의 속사정을 살펴보자면, 흙과 물을 재료로 불을 겪어냈다. 음양오행(五行)의 상징 다섯 가지 중에 무려 세 가지나 안았기에, 조화와 적응에도 탁월한 능력을 보여준다. 습도를 품되 고여있지 않고, 온도에도 적극적으로 반응한다. 상황에 맞추어 젖거나 마르기를 반복하고, 간혹 얼었다가 녹으면서 기후 변화로부터 공간을 지켜내는 필터 역할을 한다. 사람의 머리카락처럼, 흡사 살아있는 듯한 건축물의 보호기관이다.

매력이 넘치는 한옥 건축의, 하해와 같은 방대한 이야기 중에서도 기와의 기능 부분만을 살짝 언급해 보았다. 더 알아가고 싶은 꾸러미가 한가득 남아 있다. 기와지붕과의 패키지라고 할 수 있는 처마 목구조와 단청의 추억이 튀어나오려는 것도 간신히 아껴 두었다. 그 또한 사랑해 마지않는 글거리가 되어 줄 것이다.

최하나 건축 칼럼니스트/전) 엄이건축/전) 서울건축사협회 서부공영감리단/전) SLK 건축사사무소/현) 건축 짝사랑 진행형
최하나 건축 칼럼니스트/전) 엄이건축/전) 서울건축사협회 서부공영감리단/전) SLK 건축사사무소/현) 건축 짝사랑 진행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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