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석리 아기장수 바위에 얽힌 사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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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석리 아기장수 바위에 얽힌 사연
  • 김석원 시민기자
  • 승인 2021.05.12 1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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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로림만 스토리텔링】 가로림만 흑석리 아기장수 ③
가로림만 흑석리~중왕리 구간 풍경
가로림만 흑석리~중왕리 구간 풍경

서해바닷물이 팔봉산 발밑까지 들어오는 곳. 흑석리 작은말방조제에서 중왕리방조제까지 이어지는 해변은 사람의 발길이 그리 많이 닿지 않았던 곳이다.

보리사가 있는 팔봉면 흑석3리와 대황리 가느실어촌계 사이가 작은말방조제다. 흑석2리 바닷가엔 높이 10m, 폭 5m의 검은 빛을 띤 커다란 바위가 있다. 언제부터인지 알 수 없지만 마을사람들은 이 바위를 ‘장수바위’라고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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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의 “조선지지자료”에서 흑석리를 <‘거믄돌(검은돌)마을’ 黑石洞> 혹은 <‘외악골’ ‘외약골’' ‘외야골’>이라고도 불렀다고 한다.

무슨 사연이 있는 걸까. 마을 어르신에 따르면 옛날 흑석리의 한 평민의 집에 아기장수가 태어났다. ‘아기장수’의 탄생은 개혁(역적)을 뜻하는 것이 아닌가. 마을 사람들은 아기장수 탄생으로 인해 마을이 피해를 입을 것이라고 입을 모으고 ‘아기’를 도성리 쪽 ‘새섬’에 버렸다. 하지만 어찌된 일인지 바다새들이 몰려와 아이를 품고, 키우는 것이 아닌가. 거기에다 가로림만에 물안개가 자욱한 날에는 맞은 편 호리 주벅녀의 용난둠벙에서 하늘에 오르지 못한 용이 아기장수에게 찾아오곤 했다.

마을 사람들의 걱정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이런 사실을 관에서 알면 마을이 쑥대밭이 될 판이었다. 이에 마을 사람들은 새섬으로 가서 아기를 직접 죽이기로 모의를 하였다.

“나를 낳아 준 부모와 마을 사람들이 나 때문에 죽을 수는 없지 않은가.” 아기장수는 세상을 한탄하며 스스로 목숨을 끊고 말았다. 그리고는 흑석리 앞바다에 커다란 검은 바위로 변하였다. 이후 사람들은 이 바위를 장수 아기가 변하여 생성된 바위라 하여 장수바위라 이름 지었다고 한다.

이 설화에는 가난한 백성들이 관원의 침탈을 벗어나고자 새로운 영웅의 출현을 기대하는 대중의 심리가 담겨 있다. 아기장수는 미래의 꿈이고, 부모와 관군은 현실적 상황이다. 현실적 힘에 의하여 미래의 꿈은 좌절되고 마는 민중의 삶이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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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석리 돌정승
흑석리 돌정승

# 흑석리 돌장승

흑석리 돌장승은 ‘외악골’의 ‘고갯마루’에 세워 져 있다. 예전에는 ‘거믄돌마을’의 부잣집 뜰에 세워 져 있었으며, 마을사람들에게 ‘아기’를 ‘점지’하여 주는, 돌장승 역할을 하였던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하지만, 새마을운동 때 미신 문화로 치부되면서 돌장승은 한동안 버려졌었다.​

어느 날 이름을 알수 없는 도승이 나타나 “아기장수의 혼이 서려있다. 귀히 모셔야 마을이 편안하고 번창할 것”이라며 충고를 한 뒤 가로림만 바다로 홀연히 사라졌다.

이에 마을 촌로들이 회의 거쳐 지금의 자리로 옮겨 져, 마을을 지켜주는 ‘수호신’으로 변화가 되었다. 그 이후로 ‘아들’ 갖기를 원하는 ‘부녀자’들의 ‘기도처’가 되었고, 그 옆에 ‘키’가 작은 돌장승의 얼굴은 임신을 한 부녀자들의 낙태약으로 쓰기 위하여 심하게 갈아 ‘눈’의 모습은 사라진 모습으로 남았다.

한편, 서산시에는 예부터 오남동 「아기장수와 용마」, 「선녀가 데려간 아기장수」, 「홍천리 아기장수 전설」, 「마룡리 아기장수 전설」 , 옥동샘 등 다양한 악기장수 설화가 전해오고 있다.

 

※ 이 기사는 지역신문 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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