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수만 고니가 맺어 준 ‘사랑 이야기’

솔감저수지 전경
솔감저수지 전경

가로림만 해양정원 조성사업이 막바지 문턱을 남겨두고 있다. 가로림만 해양정원 조성사업은 서산시·태안군 가로림만 일원 159.852,448억 원을 투입해 해양정원센터, 점박이물범전시홍보관, 갯벌정원, 해양생태학교 등을 조성해 글로벌 해양생태관광 거점을 구축하는 사업이다.

가로림만 해양정원 조성사업은 2019년 기재부 제4차 예타 조사 대상사업으로 선정된 이후 현재까지 한국조세재정연구원의 예타 조사가 진행 중이다. 올해 6월 말 결과가 발표될 예정이다. 현재는 조건부가치측정(CVM)조사가 진행중이다.

이 조사는 국민들에게 가로림만 해양정원이 조성되면 찾아갈 의향이 있는지와 이용 시 얼마를 지불할 수 있는지를 조사해 비용대비 편익(B/C)값을 산출하는 방식이다.

이에 가로림만 해양정원 관문에 해당하는 해양정원센터 건립 후보지인 솔감저수지를 찾았다.

서산 어송리와 태안 도내리를 잇는 제방에 1982년 634번 지방도로가 개설됐다.
서산 어송리와 태안 도내리를 잇는 제방에 1982년 634번 지방도로가 개설됐다.

# 굴포운하 역사가 깃든 곳

볕 좋은 봄날, 솔감저수지를 찾았다. 제방에 막혀 바다로 이어지지 못한 솔감저수지는 옛 굴포운하를 이루지 못한 슬픔을 간직한 채 바다를 그리워 하며 멈춰섰다. 고려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천수만과 가로림만을 연결하고자 했던 세계 최초의 운하공사가 몇 차례 있었지만 매번 좌절하며 오늘에 이르렀다.

팔봉면 진장리 어르신들의 이야기에 따르면 인평저수지에서 팔봉면 쪽으로 운하 공사에 투입된 백성들이 신발에 묻은 흙을 털어서 만든 신털이봉이 있었다는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고 하였다.

솔감저수지에서 바라 본 가로림만 전경
솔감저수지에서 바라 본 가로림만 전경

# 솔감저수지 사랑 이야기

옛날, 아주 먼 옛날, 태안군은 섬이 될뻔한 일이 몇 번 있었다. 인평저수지와 가로림만을 잇는 굴포운하 시도였다.

볕 좋은 봄날, 솔감저수지를 찾았다. 솔감저수지는 옛 굴포운하를 이루지 못한 슬픔을 간직한 채 바다를 그리워하며 제방 앞에서 멈춰섰다. 고려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천수만과 가로림만을 연결하고자 했던 세계 최초의 운하공사가 몇 차례 있었지만 매번 좌절하며 오늘에 이르렀던 일.

팔봉면 진장리 어르신들의 이야기에 따르면 인평저수지에서 팔봉면 쪽으로 운하공사에 투입된 백성들이 신발에 묻은 흙을 털어서 만든 신털이봉이 있었다는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사실 천수만과 가로림만은 그리 먼 거리가 아니다. 높은 산도 없다. 양쪽 마을 사람들간의 왕래도 잦았다. 천수만의 철새들도 가로림만으로 넘나들었다.

옛날, 먼 옛날, 천수만에 살던 한 청년이 솔감 갯벌로 낙지잡이를 왔다. 갯벌을 따라 가다보니 구도포구를 넘어 주벅녀 앞까지 갔다. 청년은 그곳 옻샘에서 그만 살결이 희다 못해 명주천처럼 맑은 한 아리따운 여자가 목욕을 하고 있는 모습을 보게 됐다. 한 분에 반한 청년은 그만 넋을 잃었다. 청년은 무례를 무릅쓰고 그 자리에서 청혼을 하며, 함께 살자고 매달렸다.

어찌나 간절했던지 청년의 준수한 용모와 정성에 감동한 선녀는 저는 하늘에서 살고 있는 선녀랍니다. 선녀는 인간세상 사람과는 인연을 맺을 수 없어요라며 고개를 저었다.

그래도 막무가내인 청년. 혼인만 할 수 있다면 뭐든지 하겠다며 매달렸다.

저와 꼭 혼인을 하고 싶다면 하늘 나라로 함께 가셔야 합니다.”

청년은 혼인만 할 수 있다면 하늘나라가 아닌 지옥이라도 따라 가겠다고 다짐에 다짐을 했다.

청년의 정성에 감동한 선녀는 천수만 갯벌에서 수컷을 기다리며 어스름까지 혼자 남아 있는 흰 고니가 있을 테니, 그 고니를 타고 오시면 팔봉산 치성바위 위에 하늘로 올라가는 문이 열릴 거예요라고 귀뜸했다.

청년은 하루하루 그날을 손꼽아 기다렸다. 날이 저물길 기다려 천수만 갯벌에 가니 과연 수컷을 기다리는 흰 고니가 있지 않은가. 고니는 긴 목을 굽혀 청년에게 타라고 했다.

힘찬 날개짓과 함께 하늘로 오른 고니는 천수만을 떠나 가로림만으로 향했다. 팔봉산이 손에 잡힐 듯 가깝게 다가왔다. 하지만 그 순간 흰 고니가 방향을 틀어 솔감저수지로 방향을 틀었다. 청년이 고니의 목을 흔들고 사정을 해도 소용없었다. 이를 어쩌나 선녀가 귀뜸해줬던 치성바위 위로 하늘 문이 열리는 시간을 놓치고 말았던 것이다.

솔감저수지에 내려 앉은 청년은 가슴을 치며 통곡했다. 청년의 울음소리가 어찌나 슬펐던지, 솔숲의 소나무도, 가로림만 바다도 함께 울었다.

그때 밤 하늘 저쪽에서 흰 날개를 펄럭이며 수컷 고니가 나타났다. 그 고니 등에는 선녀가 타고 있었다.

하늘에서 청년 통곡소리를 내려다 보던 선녀가 청년의 사랑에 감동하여 하늘나라를 버렸다. 솔감저수지에서 서로 부둥켜 안고 두 남녀는 슬퍼서 울었고, 행복해서 울었다.

천수만 청년과 선녀는 혼인을 하고, 제방 옆 울곶이 마을에 보금자리를 꾸몄다. 물론 고니 부부도 이들과 함께 솔감저수지에서 터를 잡았다. 솔감저수지를 찾는 연인들이 있다면 천수만 청년과 선녀의 사랑이야기를 바람결에 들을 수 있을 것이다.

솔감저수지~구도항 아라메길
솔감저수지~구도항 아라메길

# 징검다리가 전하는 솔감 이야기

솔감의 어원은 솔티 가느실이 변하여 만들어진 지명으로 보인다. 솔숲이 많은 실처럼 가는 골짜기로 이해된다.

일제강점기 때 서산 어송리와 태안 도내리를 이어주는 징검다리가 있었다. 태안 큰 장에 가기 위해 어송리 사람들은 솔감목을 건넜다. 바닷물과 민물이 교차하던 솔감이 1982634번 지방도로가 건설되면서 그 흔적은 사라졌다.

당시 징검다리 돌들은 솔감저수지 아래로 수장되어 없어졌지만, 건너편 솔섬처럼 튀어나온 소나무 숲이 옛 다리의 위치를 짐작케 한다. 당시만 해도 이 징검다리를 건너 태안으로 시집을 갔고, 오일장을 다녀왔다. 한 번은 태안 장을 보고 돌아오던 어송리 술골에서 혼자 살던 아낙이 솔감목에서 밀려오는 밀물에 휩쓸려 그만 바다로 사라졌다. 동네 사람에게 선녀처럼 착하기로 소문났던 아낙이었다. 그 후로 전해오는 이야기는 당시 밀물이 몰려올 때 가로림만 선녀가 아낙을 데리러 온 것이었다는 소문이 돌았다. 그 아낙의 긴 치맛자락이 옛 비연대의 길고 흰 바위가 된 것이라는 이야기와 함께...

이 기사는 지역신문 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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