빵점엄마의 200점 도전기-53

4살 다연이
4살 다연이가 살아갈 세상은 지금보다 좀 더 아름다운 세상이기를 바란다.

화창한 주말이다. 집에만 있기에는 아쉬운 날씨인데 이런 날에도 가족과 나들이보다 친구와 노는 걸 더 선호하는 7살 딸이 있다. 벌써부터 이런 처지니 학령기, 청소년기에는 얼마나 더 할까...

그러나 아이가 즐거우면 나도 즐겁다. 유치원에서 매일 보는 다희네와 오늘도 놀이터에서 만나기로 했다. 동생 다연이까지 덩달아 놀이터행일 테니 아빠에게는 몇 시간의 자유시간이 주어지는 셈이다. 오전에 다 같이 텃밭에 다녀와서 점심식사를 끝내고, 나는 다시 아이 둘을 챙겨 놀이터로 나갔다.

중간 중간 손은 가지만 사이좋게 잘 노는 아이들 틈에서 엄마들은 따뜻한 커피를 마시고, 작은 대화가 오갈 정도의 여유를 가질 수 있었다. 가끔 간식을 챙겨주고 그네를 밀어주고 넘어지는 아이를 일으켜주면 될 정도로 아이들이 컸다. 벤치에서 아이들을 바라보고 있는데 다연이가 화장실에 가고 싶다고 달려왔다. 옆에 있던 초등학생 남자아이도 화장실에 간다고 하여 두 아이를 인솔해 가까운 화장실로 향했다.

여자에게는 쉽지 않은 수많은 일들이 산적해 있는 세상, 우리 아이들이 어른이 되어 있을 때면 세상이 좀 더 달라져 있을까.
여자에게는 쉽지 않은 수많은 일들이 산적해 있는 세상, 우리 아이들이 어른이 되어 있을 때면 세상이 좀 더 달라져 있을까.

남학생이 먼저 훤히 열린 남자화장실로 들어가 소변기 앞에 뒤돌아섰다. 이 모습이 어떤 의미인지 눈치를 챘는지 여자 화장실 문을 여는 나에게 다연이가 엄마, 왜 여자들은 불편해요?”라고 대뜸 물었다. 아이를 안아 성인용 변기에 앉혀주면서 여자는 음순이 있고 음경이 없어서 앉아서 쉬해야 돼. 남자는 음경이 있고 음순이 없어서 서서 쉬할 수 있어라고 설명했다. 말을 하면서도 내심 과연 이게 만족스러운 답변이 될까 의문스러웠다.

유아변기가 없는 곳에서 어린 아이 혼자 변기에 앉는 일은 불가능하니 어린 여자아이다연이가 불편하다고 느끼는 것은 당연하다(이쯤에서 과연 유아변기가 존재하는 공용화장실이 몇 퍼센트나 될까 궁금해진다). 게다가 성인용 변기에 앉은 아이가 앞쪽으로 바짝 몸을 구부려 제대로 균형을 잡지 않으면 순식간에 뒤로 빠질지도 모르는 일이다.

불안한 나는 아이 등을 받쳐주고 싶지만 요즘 다연이는 자존심이 허락지 않는지 엄마가 잡아주는 것을 거부한다.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은 그저 옆에 바짝 붙어 언제든 등을 떠받칠 수 있게 대기하는 것 뿐.

세상에서 여자라 하지 못하게 되는 많은 일들이 다연이가 어른이 되면 그때는 지금 보다 더 많이 좋아졌으면 좋겠다.
세상에서 여자라 하지 못하게 되는 많은 일들이 다연이가 어른이 되면 그때는 지금 보다 더 많이 좋아졌으면 좋겠다.

다연이로 말할 것 같으면 어린이집에서 남자 소변기에 오줌을 누려다 바지를 그만 적셔버린 적이 있는 4살 여자아이다. 서서 누지 못하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소변기에 도전해 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던 것 같다. 어린이집 화장실 문을 열고 직진하면 바로 위치해 있는 소변기가 칸막이 안에 있는 좌변기보다 이용하기에 쉬워 보였는지도 모르겠다.

처음 선생님께 그 소식을 전해 들었을 땐 웃겨서 다연아 다음부터는 남자소변기에서 오줌 누면 안 돼라는 말이 먼저 나왔다. 다음에는 찝찝해져서 집에 가자마자 씻겨야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 아주 단순한 도전이지만 여자라서 실패하고 말았던 다연이의 마음이 어땠을까 안타까워졌다.

그리고 오늘, 다시금 마음이 무거워진다. 어두운 길을 혼자 걸을 때나 늦은 시간 혼자 택시를 탈 때면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고 공용 화장실을 이용할 때면 몰래카메라가 있지는 않을까 염려되는 세상에서 여자라서 하지 못하게 되는 일들이 여전히 많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임신출산육아를 겪으면서도, 직장생활을 하면서도, 심지어 제사를 지낼 때도 남자에게는 열려 있지만 여자에게는 쉽지 않은 수많은 일들이 산적해 있는 세상, ‘여성혐오, 여성표적범죄, 페미사이드, 세모녀사건같은 끔찍한 단어가 혼재하는 시대에 딸들이 더욱 걱정되는 오늘이다. 우리 다연이가 어른이 되어 있을 때면 세상이 좀 달라져 있을까. 아이들을 챙겨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 나갈 때와는 달리 사뭇 어두워져 있었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 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최윤애 보건교사
최윤애 보건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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