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지골 한국전쟁 민간인 희생자 유해발굴 개토제 개최

메지골 한국전쟁 민간인 희생자 유해발굴 개토제
메지골 한국전쟁 민간인 희생자 유해발굴 개토제

서산시 메지골(성연면 일람리 산 163) 골짜기에서 한국전쟁전후 억울하게 희생된 민간인 유해 발굴 작업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8일 오후 서산시와 한국전쟁 민간인학살 유해발굴 공동조사단’(단장 박선주 충북대 명예교수)은 서산시 성면면 메지골에서 정명호 서산유족회장을 비롯한 희생자 유족과 맹정호 서산시장, 이연희 시의회 의장 및 의원 등 3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유해발굴 시작과 희생자들의 넋을 달래는 개토제를 개최하고 8일간의 유해발굴 작업을 시작했다.

메지골 한국전쟁 민간인 희생자 유해발굴 개토제
메지골 한국전쟁 민간인 희생자 유해발굴 개토제

서산시에 따르면 이번에 발굴되는 메지골은 지난 2006~2010년 활동한 1기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가 선정한 서산지역 유해 매장지 3곳중 한 곳으로 한국전쟁 당시 보도연맹과 인민군에 협조했다는 이유로 100~200여 명이 억울한 죽임을 당한 곳이다.

당시 이 모 씨 목격자에 따르면 보도연맹원들에 대한 총격사살은 점심 때부터 해질녘까지 있었다. 이 모 씨는 “10여 명의 경찰이 100여 명의 사람들을 메지골로 끌고 가는 것을 보았는데, 그들의 양손은 뒤로 묶인 채 허리 부분이 서로 엮여져 있었다. 총소리가 그치고 나중에 현장에 가보니 시신들이 30여 미터 정도 길게 널려 있었고, 몇몇은 총상을 입었음에도 살아서 산을 내려갔다고 전했다.

메지골 현장에서 살아 난 사람으로는 해미면 홍천리의 전 모 씨를 들 수 있다. 전 모씨가 생전에 주변에 한 말에 의하면 현장에서 정신을 잃었다가 깨어보니 물 흐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마침 목이 말라 물을 마셨는데 알고보니 사람 피였다고 하였다.

진실규명 대상자중 메지골에서 시신이 수습된 사람은 명0, 0, 0(), 0, 0, 0, 0, 000(-3215), 0, 0, 또 다른 김0, 0, 0, 0, 0직 등이다.

주민들에 따르면 보도연맹 사건 당시 메지골로 끌고 와 살해한 뒤 시신조차 매장하지 않은 채 골짜기로 버려져 산 짐승 등에 의해 많은 시신이 훼손됐다. 당시 메지골 학살 소식을 들은 대부분 유족이 옷깃이나 신분을 알 수 있는 흔적을 찾아 시신을 수습했지만, 그렇지 못한 유해 20~30여 구는 마을사람들에 의해 현장에 매장되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개토식에서 황창순 유족 대표는 여기까지 오기엔 너무나도 오랜 시간이 걸렸다. 지금까지 아버지를 찾지 못한 불효자를 용서해 달라발굴을 통해 마지막 한 분이라도 끝까지 유족의 품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노력을 다할 것이라고 오열했다.

유족회 관계자는 희생자 상당수는 좌익사상과 무관하게 좌익단체에 가입한 전력이 있거나 보도연맹이 무엇인지 모르고 가입한 농민들로 20~40대 청장년층이었다고 말했다.

개토제에 참석한 맹정호 시장은 한국전쟁 당시 억울한 (민간인) 희생은 무엇으로도 보상받을 수 없다라면서 이제라도 진상을 밝히고 억울함을 풀도록 하는 것이 남은 이들의 책무일 것이라며 희생자들의 명복을 빌었다.

시는 이번 발굴을 위해서 지난 2월 공고를 거쳐 한국전쟁기 민간인 학살 유해발굴공동조사단을 사업자로 선정했다. 시 자체사업비 6,000만 원을 투입한다. 수습된 유해는 보존처리를 거쳐 세종시 추모의 집에 안치될 예정이다.

맹 시장은 “70여 년간 외롭게 잠든 한국전쟁 민간인 희생자들을 가족의 품으로 모시는 첫발을 내디뎠다유해발굴을 통해 희생자들의 명예가 회복되고 유가족분들에게 위로가 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한편, 시는 2007년부터 매년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희생자 합동추모제를 지원하고 있으며, 지난해 12월을 시작으로 내년 129일까지 2년간 진실규명 신청을 접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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