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태권도 심판이 꿈이었던 ‘삼성태권도장’ 최윤영 관장
상태바
【인터뷰】태권도 심판이 꿈이었던 ‘삼성태권도장’ 최윤영 관장
  • 최미향 기자
  • 승인 2020.11.25 01:1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태권 브이 소녀에서 관장이 되기까지...

제자를 가르칠 땐 ‘얼마나 진정성을 가지고 지도하는가’를 고민한다
태권도 심판이 꿈이었던 ‘삼성태권도장’ 최윤영 관장
태권도 심판이 꿈이었던 ‘삼성태권도장’ 최윤영 관장

#프롤로그

세상에는 별의별 사람이 다 있다. 그중에서도 생각을 해보고 행동을 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반대로 행동을 먼저하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 전문가들은 생각을 해보고 실천하라고 조언하지만, 이번 호에 등장하는 그녀는 생각과 함께 바로 실천으로 돌입하는 용감무쌍한 분이다.

서산시 남부순환로(죽성동) 767에 있는, 자타가 공인한 체육인 삼성태권도 최윤영 관장이 오늘의 주인공이다. 그녀는 태안에서 태어나 서산여고를 졸업하면서 태권도 사범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해 현재까지 27년을 태권도에 몸 바치고 있다.

인생이 너무 짧아서 아쉽다는 말로 빠르게 지나가는 시간을 아쉬워했던 최 관장은 화려한 이력의 소유자. 스포츠 종목은 대부분 섭렵했고, 그밖에도 민화, 첼로 등 실로 혀를 내두르는 다양한 취미를 가졌다.

그녀 속에는 또 어떤 인물이 꿈을 좇고 있을까 했지만 잠시 후 나타난 아들 앞에서는 영락없는 엄마의 모습으로 완전 변신을 했던 최윤영 관장. “우리 둘째 기령이가 지난달 ‘2020년 연맹회장기 전국초등학교 태권도대회에서 1등을 했어요. 자식 키우며 세상 가장 보람 있는 일이잖아요라며 또 까르르 웃는 그녀에게서는 향기로운 후리지아 향기가 새어 나왔다.

백만 불짜리 웃음을 지닌 호탕한 성격의 최윤영 관장과 만난 월요일 오후, 남편과 함께 삼성태권도장을 운영하면서 체육인으로, 음악인으로, 미술인으로, 브레인트레이너 등 자그마치 16역을 거뜬히 치러내고 있는 최윤영 관장의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첼로를 연주하는 최윤영 관장
첼로를 연습하고 있는 최윤영 관장

Q 다양한 재주를 가졌다고 들었다

누가 그렇게 말씀하셨는지는 모르겠지만 입니다(웃음). 저는 재주가 많은 것은 아니고 하고 싶은 것이 많아 그냥 즐기다 보니 별의별 것을 다하는 것 같습니다.

궁중민화는 무릎이 좋은 않은 제게 특별한 취미로 현재 서양화가인 친언니로 부터 권유를 받아 현재는 세아평 미술관의 관장님이신 김혜란 스승님께 가르침을 받고 있는 중이고, 악기는 워낙 좋아해 피아노, 플롯, 기타, 첼로 등 시도는 다 해봤지만 지금까지 가장 오래 버티고 있는 것이 첼로랍니다.

아들은 플롯을 전공하다 공부를 하고 있지만 한때는 같이 무대에 서보기도 했구요. 역동적인 운동을 하다 보면 감성이 메마를 때가 있잖아요 왜. 그럴 때 그림을 그리고 악기연주를 하다 보면 제 속에 잠재된 소리가 스멀스멀 피어난답니다. 때론 힘들 때가 있긴 있어요. 그래도 포기는 하지 않으려고요. 누가 말하데요. 포기는 배추나 셀 때 써먹는다고요.
도복을 입고 박현화 스승님이 계시던 동문동 대명태권도에서 사범 생활을 하며 100cm도 채 되지 않는 귀여운 삐약이들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도복을 입고 박현화 스승님이 계시던 동문동 대명태권도에서 사범 생활을 하며 100cm도 채 되지 않는 귀여운 삐약이들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어릴 때부터 운동이란 운동은 못 하는 것이 없을 정도로 좋아했습니다. 달리기, 사이클, 수영, 유도, 검도, 합기도, 스킨스쿠버, 스키, 스노우보드, 윈드서핑, 산악회, 태권도 등 안 해본 것이 없었죠. 내년에 재활이 끝나면 서핑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흰 도복을 입고 운동하는 태권도가 유난히 좋아서 어느날 아버지께 태권도를 하고 싶어요라고 말했는데 의외로 아버진 한마디로 안된다고 말씀하시는 거예요.

예상 밖의 단호함에 크게 실망한 나머지 풀이 죽어 있는 제게 엄마가 몰래 관비를 대주시며 응원을 해주셨답니다. 아버지께 비밀로 할 수 있었던 것은 집이 태안이고 저는 당시 서산에 있는 서산여고에 다니면서 혼자 살고 있었거든요. 울 아버지 눈을 속여가며 좋아하는 태권도를 하였고 결국 저는 사범의 길로 들어갈 수 있었어요. 그때가 제 나이 겨우 스무 살이었습니다.

도복을 입고 박현화 스승님이 계시던 동문동 대명태권도에서 사범 생활을 하며 100cm도 채 되지 않는 귀여운 삐약이들을 가르치기 시작했어요. 하지만 닥치는 대로 운동만 열심히 했던 고졸인 제게 태권도 지도자란 타이틀은 여자 사범으로선 엄청난 모험이었습니다. 그때만 해도 여자 사범이 없었던 시절이었으니까요.

충남태권도협회의 상임심판과 심사평가위원으로 활동하는 남편이자 삼성태권도 사범님
충남태권도협회의 상임심판과 심사평가위원으로 활동하는 남편이자 삼성태권도 관장님
Q 남편도 태권도를 전공했던 분이던데 어떻게 만났는지 궁금하다

학력이 뭐라고 고졸이란 이유로 지도자를 하기에는 바라보는 시선이 녹록지 않았습니다. 하는 수 없이 대학 문을 두드렸고, 저는 운 좋게도 과 차석으로 당당히 합격했습니다. 학업과 생업을 병행하며 악착같이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해 동분서주했어요. 아 참! 그 와중에 서산시 태권도 사범모임(태사회)에서 저희 남편을 만나는 행운도 누렸네요(웃음). 사실 우리는 서로 싸우다 정이 든 경우예요. 그 사람은 초등부터 대학 때까지 엘리트 태권도 선수였는데 나름 상당한 프라이드가 있더라고요. 남편은 지금 충남태권도협회의 상임심판으로 상당 기간 활동 중입니다. 심사평가위원으로도 같은 기간 활동 중이고요. 태권도 경기 심판으로서의 남편은 100점 만점에 100점입니다. 카리스마가 칼있쓰마로 변신하거든요. 모든 경기의 흐름을 읽고 판단하는데 지금 봐도 완전 반합니다. 저만 그런가요?(웃음).

그 사람이 좋았던 결정적인 이유는 또 있어요. 순전히 발차기 때문이었죠. 왼발 뒤차기, 뒤후리기를 어찌나 잘하던지 눈을 뗄 수가 없는 거예요. 닉네임도 뒤차기 한방이거든요. 프러포즈는 제가 먼저 했어요. 사람이 인성이 꼬이지 않았다는 것이 결정타였죠.

그때는 이미 제가 태권도 도장을 오픈한 상태였어요. 지금에서야 밝히지만, 당시 저도 태권도장을 같이해야 할 사람이 필요했어요. 남편도 태권도장을 준비하고 있었는데 그러지 말고 같이 하자그랬어요. 혼자 태권도장을 하니 자꾸 이상한 남자들이 꼬이고 무섭고 힘들기도 했거든요.

그 당시 위험한 일이 생길까봐 제 스승님과 슈퍼맨 친구들이 셔터맨으로 자청하여 달려와 주곤 했어요. 그런데 잘 됐죠 뭐. 결혼도 12월 마지막 날에 했어요. 지인들에겐 민폐인 날이고 말에요. 태권도장 방학에 맞추느라 1230일에 했네요. 많은 사범님이 방학 맞춰 결혼 할걸요?(호호) 가슴이 너무 뜨거워서 결혼했다면 믿으시겠어요? 지금은요. 서령고(2)에 재학 중인 첫째 기헌이, 서산중학교 태권도부 입학 예정인 둘째 기령이를 기르는 부모가 되었답니다.

서로 바빠 변변한 사진 한장도 찍지못했다는 가족사진
서로 바빠 변변한 사진 한장도 찍지못한 가족사진

Q 삼성태권도장을 두고 미국으로 건너간 이유는?

체육대학을 졸업하면서 꿈이 하나 생겼어요. 체육학 교수가 되고 싶었죠. 저는 꿈을 이루기 위해 한서대 체육교육전공 교육대학원에 입학했는데 당시 최종인 교수님이 제 지도교수님이셨어요. 이런 저의 꿈을 남편은 감사하게도 적극적으로 밀어주었답니다.

당시 첫째가 태어난 직후라 유축기에 모유를 짜 놓으며 교문 아래 형님댁에 갓난아들을 맡기고 학교를 다녔습니다. 스포츠경영·체육교육학, 그리하여 자그마치 8학기를 다니면서 석사학위를 받았어요.

석사를 마치고 홀로 미국으로 떠났습니다. 첫째를 남편 손에 맡기고 떠난 미국행은 그야말로 가슴 저리는 절절함이었죠. 그래도 꿈이 있기에 주저앉을 수는 없었습니다. 힘들었지요. 남겨진 가족들을 생각하며 이를 악물고 6개월을 버텼습니다. 그러나 혼자는 무리였고, 그리고 다시 한국으로 나와 남편과 아들을 데리고 다시 미국으로 들어와 박사를 목표로 공부를 시작했어요.

저는 공부를 하고 남편은 미국에서 태권도장을 운영하고. 힘들었지만 꿈이 아니었다면 결코 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던 중 비자발급을 받기 위해 한국으로 나왔다가 여러 가지 일로,주저앉게 되었어요. 공부하면서 미국까지, 이런 일련의 과정들을 돈으로 환산하면 아마도 아파트 두 채값은 거뜬히 해 먹은 것 같아요. 열심히 벌어 맘껏 써봤습니다(웃음).

태권도 국제심판 최윤영 관장
오래 전 나의 큰 꿈이었던 태권도 국제심판

Q 태권도를 하다 보면 보람이 많을 것 같다

보통 유치원 때나 초등학교 때 태권도를 시작하면 5년 정도는 수련하지요. 길게는 10년 정도? 수련 후 4단을 취득하고 졸업하는 제자들이 많아요. 이 친구들이 스승이라고 찾아와 인사하는 것이 가장 보람있죠뭐. 그래서 또 지금껏 태권도장을 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처음 운동했던 제자들이 벌써 30대 중반이 되어 부모가 됐어요. 요녀석들 학창시절, 그때는 말도 엄청나게 안 듣고 장난도 많이 치고 그랬는데... 또 그때는 맞기도 많이 맞으면서도 좋다고 운동을 하던 때였어요. 그러다가도 고민이 있으면 쫓아와 털어놓으며 상담을 신청하고, 진학문제도 도와주고 하면서 함께 성장했답니다.

제자들은 스승의날, 특별한 날, 저희가 생각난다고 잘 찾아와요. 20대에는 밥 사주세요”, “술 사주세요그러던 녀석들이 이젠 돈 번다고 밥 사주고, 술 사주고... 작은 보람이지만 인생의 큰 보람이기도 합니다.

저희는 제자들에겐 별소리 안 합니다. 백 마디 말보다 남편의 인성을 믿으니까요. 저는 다만 이렇게 말해요. “준비된 자가 기회를 잡으니 틈틈이 준비하고 살아라~” 이 말 하나면 족하지 않아요?

아이들과 함께 하는 시간이 가장 즐겁다는 최윤영 관장
도복을 입은 우리 아이들의 모습이 세상 제일 이쁘다는 최윤영 관장

Q 기억나는 속상했던 일은?

지금도 기억나는 부모님이 계셔요. 비장애 아이들이 단체로 장애아를 때린 사건이 있었어요. 그중 한 아이가 우리 도장에 다니는 아이였죠. 그때 모피 코트를 입고 신발을 신은 상태로 태권도장 실내로 들어와 삿대질과 욕을 하더라고요. 자기 자식은 마치 아무 일 없는데 니가 내 자식을 마치 문제아로 만들어놨다는 식이었어요. 그때가 갓 도장을 시작했던 20대 중반 때였는데 그 어머니는 욕을 하며 도장을 다 뒤집고 나가셨어요. 정말 속상하더라고요. 분명 그런 부모 밑에는 그와 비슷한 자식이 있더라는 거죠.

가만 보면 그만두고 나갈 때 웃는 모습으로 나가시는 분들이 계시는 반면, 때론 오해를 가지고 나가시는 분들이 있어요. 그중에는 제가 마치 돈만 버는 사람으로 오인한다는가, 또 때론 위의 사례처럼 아이들이 괴롭히고, 때리고, 욕하는 사태가 벌어지는데도 내 자식만큼은 절대 그럴 리 없다시며 태권도장에서 우리 아이를 문제아로 만들었다며 소란 피우고 가는 부모님도 간혹 계십니다. 그럴 때는 한동안 체한 듯이 명치끝이 아파요. 충분히 지도할 수 있는 아이들인데 싶어 속상하기도 하고요. 늘 이런 문제 때문에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태권도는 나약한 아이들에게 상당한 도움을 주지만 그럼에도 한계가 있다.
걸음마를 태권도장에서 배운 두 아들 기헌이와 기령이

Q 태권도가 나약한 아이들에게 상당한 도움이 된다는데?

안타깝게도 태권도만으로는 아이들 지도에 분명 한계가 있습니다. 요즘 아이들은 여러 가지 환경적인 부분으로 인해 심신이 약한 경우가 많습니다. 편리해진 교통, 풍요로운 경제여건, 변화된 가족 구성원, 급속도로 발달한 휴대폰 및 미디어의 영향 등으로 육체적 성장만큼 따라와 주지 못하는 불균형한 정신적 성장이 사회에 문제점을 일으키지요.

우리 때만 해도 어디 그랬나요. 세월의 흐름이 우리 아이들을 온실 속 화초처럼 연약하게 만들고, 나만 아는 이기심과 스스로 해결하지 못하는 문제해결 능력, 충동적 행동, 미디어의 발달로 고르게 발달하지 못하는 불균형한 뇌 구조, 여러 가지 환경문제 등에 노출되어 있어요.

태권도만으로 변화되지 못하기에 고민 끝에 뉴로피드백이라는 새로운 뇌과학을 발견했어요. 눈이 번쩍 뜨였죠.

태권도와 함께 뇌파를 스스로 조절하는 훈련을 하고 있는 삼성태권도 원생들
태권도와 함께 뇌파를 스스로 조절하는 훈련을 하고 있는 삼성태권도 꿈나무들

Q ‘뉴로피드백이라는 이름은 처음 들어보는데?

뉴로피드백은 자신의 뇌파 정보를 직접 눈으로 보면서 뇌 발달에 필요한 뇌파를 스스로 조절하여 뇌 신경 네트워크를 발달시키는 최첨단 뇌 훈련기술입니다. 이것은 뇌 신경조직과 네트워크를 재조직하고 재구성하여 뇌를 스스로 활성화하는 가장 과학적이고 효과적인 방법인데 일명 바이오피드백으로 불리기도 하죠. 뉴로피드백기술은 어떠한 약물도 사용하지 않고 오직 자신의 노력으로 최적의 두뇌 상태로 만들어낼 수 있어요.

제가 처음 뉴로피드백을 접했을 땐 순간 망치로 머리를 얻어맞은 것처럼 멍했습니다. ‘~~그동안 태권도장을 하며 부족했던 것이 바로 이것이구나. 만약 이 이론대로라면 우리가 그렇게 안타깝게 졸업시켰던 제자들을 변화시킬 수 있었을 텐데.

틱이 심했던 아이, 폭력이 심했던 아이, 눈물이 마르지 않던 아이들, 불안이 심했던 아이, 정서 관리가 안 되어 타인을 괴롭히던 아이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습니다. 그 길로 주저 없이 태권도장의 한 프로그램으로 뉴로피드백을 선택하게 되었습니다. 나의 선택 결과는 성공이었으며 제가 원하던 대로 문제가 있던 제자들이 정서 관리가 되기 시작했죠. 그러더니 IQ가 상승하는 것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동안 이런저런 것들로 힘들어했던 친구들에게 두뇌훈련을 시작하였고, 시작한 지 16개월 만에 이젠 내 제자들이 운동도 잘하고 마음도 건강한, 그래서 이젠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 평범한 제자들로 변화를 했답니다. 제 인생에서 우리 부부가 태권도와 뉴로피드백으로 제자들의 몸과 마음을 건강하게 만들어줄 수 있어 얼마나 다행인지요.

최윤영 관장이 직접 그린 민화 '일월오봉도'(위)와 '연화도 10폭 병풍
궁중민화는 (음암 세아평미술관) 대한민국의 민화 거장이신 김혜란 스승님의 사사를 받아 최윤영 관장이 틈틈이 그려 2019년 전국민화대전에서 입상한 작품. 일월오봉도(위) 연화도10폭병풍(아래)

# 에필로그

오른쪽에 벽면에 일렬로 놓인 뇌파 기계들을 마주하며 그녀가 끓여주는 따뜻한 차를 마셨다. 올해 들어 가장 추웠던 날, 최 관장과 풀어놓은 수다 삼매경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이어졌다.

27년 태권도 외길에서 오직 아이들의 미래와, 지금보다는 좀 더 밝고 건강한 사회를 꿈꾸기 위해 끊임없이 고민했던 그녀 최윤영 지도관장, 그녀의 마지막 말이 귓전에 남는다.

짧지 않은 시간, 태권도장을 운영해보니 사범님의 탁월한 태권도 지도능력도 중요하고, 현대식 시설과 지도자의 인성도 중요하지만 이보다 더 중요한 요소는 얼마나 진정성을 가지고 제자들을 지도할 수 있는가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