옹졸했던 엄마의 눈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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옹졸했던 엄마의 눈물
  • 서산시대
  • 승인 2020.11.19 2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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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점엄마의 200점 도전기-33
타고난 놀고잡이 다은이
타고난 놀고잡이 다은이

다은아 옷 입자, 다은아 밥 먹자, 다은아 이 닦자, 다은아 목욕하자, ...”

하루 동안 내 입에서는 셀 수 없이 빈번하게 다은아라는 말이 나온다. 이쯤 되면 듣는 다은이도 다은아라는 말이 그저 일상의 배경음으로 느껴질 수밖에 없다. 수시로 자신을 부르는 말에 무감각해 질대로 무감각해진 아이는 이제 엄마의 웬만한 말에는 콧방귀조차 뀌지 않는다. 하지만 조급해진 나는 나대로 또 참지 못하고 외치게 되는 것이다.

다은아!!!!!”

타고난 놀고잡이 다은이와 기다림의 미덕이 부족한 엄마의 좌충우돌은 좀처럼 끊이지 않는다. 내 입에서 같은 말이 최소한 3번쯤 나오고 목소리가 점점 커지면 그제야 아이는 마지못해 굼뜬 몸을 움직인다. 아빠를 닮아 날렵한 운동신경을 가진 다은이는 청유형을 가장한 명령형의 내 말에만 느림보가 된다. ! 바닥을 드러내는 나의 인내력이여!

해 뜨는 시간이 점점 늦어지면서 아이의 기상시간도 늦어지는 요즘, 덩달아 바빠진 아침 준비시간에 마음이 조급해지는 것은 엄마인 내 몫이다. 엄마의 부름에는 미적거리다가도 인형이나 장난감 앞에서는 순식간에 흥이 오르는 다은이가 때로는 얄밉다. 일찍 잠자리에 들면 아침이 수월할 것 같아 잘 준비를 서두르지만 좀체 피곤해하지 않는 강철체력 다은이는 더 놀고 싶어 이리저리 꽁무니를 빼기 일쑤다.

씻기려고 욕조에 물을 받아놓고 아이를 기다리던 그제 저녁이었다. 따뜻했던 물이 식어갈수록 내 안에는 그동안 쌓였던 화가 끓어오르기 시작했다. 나는 스스로를 다스리지 못한 채 욕실에 들어온 아이를 거칠게 다루기 시작했다. 미움이 차오른 상태로 양치를 도와주다보니 치약거품이 다은이의 입 주변에 가득 묻었다. 대충 입을 닦아주고 양치 컵을 건네니 물을 찍찍 뱉으면서 아이는 또 장난이다. 조금 기다리다 과격한 손놀림으로 머리를 감겨주고 몸을 대충 씻겼다. 얼른 씻고 나가면 좋겠는데 분위기 파악 못한 아이는 컵과 탕온계로 물놀이를 할 태세다. 찬바람이 쌩쌩 부는 엄마의 말투와 얼어있는 표정을 보고 반강제적으로 목욕을 마친 다은이도 결국 기분이 나빠진 것 같았다.

거친 손길로 로션을 발라주고 내보내는데, 욕실을 나가는 다은이가 밑도 끝도 없이 사과해야지라고 말했다. 의외의 당돌함에 놀라면서도 화가 풀리지 않은 나는 다연이 목욕 다 시키고 나가서 사과할게라고 받아치며 욕실 문을 닫았다.

딸바보 아빠와 두 자매
딸바보 아빠와 두 자매

옷 입는 것을 도와주는 아빠에게 엄마는 자꾸 화만 내라며 하소연하는 아이의 말소리가 문 너머로 들렸다.

아니야. 엄마는 다은이 제일 사랑해. 다은이도 엄마 사랑하지?”

나는 엄마 사랑하는데 엄마는 아니야

다은아, 엄마랑 아빠는 세상에서 다은이를 제일 많이 사랑해

아빠는 맞지만 엄마는 아니야

비겁한 나는, 아이의 상처보다 남편에게 비춰질 내 모습에 더 뜨끔했다. 다연이까지 모두 씻긴 후 방에 들어가면서 못난 나는 다은이에게 건성으로 사과했다.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주고 자리에 누웠다. 매일 밤 아이들을 각자 안아주며 사랑해, 고마워, 소중해, 축복해, 행복해, 잘 자라는 인사를 귓가에 해주는데, 제 딴에도 화가 안 풀렸는지 다은이는 나의 손길을 슬며시 거부했다. 하는 수 없이 늘 하던 굿나잇 인사를 다연이에게만 해 주고 나자 나의 옹졸했던 마음도 스르르 열렸다.

아이들은 금세 곯아 떨어졌다. 하지만 나는 마음이 복잡해 잠을 잘 수도, 몸을 일으킬 수도 없었다. 어두운 방에 누워 한참을 생각하고 철딱서니 없는 나의 행동을 반성하다가 법륜스님의 책 [엄마 수업]을 꺼내들었다. 엄마라면 마땅히 아이를 보듬어줘야 하는데 나의 행동으로 아이가 받았을 상처를 생각하니 마음이 무거웠다.

부끄러운 행동을 숨기고 싶어 혼자 속으로 삭히려다 남편에게 상황을 설명하고 심경을 토로했다. 다그치고 혼내는 나의 행동이 아이의 마음속에 누적되어 가시로 박혀 있을까 걱정되고 미안해 눈물이 났다. 내 마음, 내 행동 하나도 제어하지 못하면서 아이를 내 마음대로 움직이려 하다니, 모든 게 나의 아집이었다. 아이의 문제라 여기는 것이 사실은 엄마의 문제라고 하는데, 나는 아이만 닦달했으니 부끄럽기 그지없다.

나의 태도가 한 순간에 쉽게 고쳐지지는 않겠지만 나는 엄마니까, 내 아이를 위해 노력하리라. 잔소리 대신 아이의 성향을 존중하되, 때로는 단호한 태도를 취하리라. [엄마 수업]에서 나오는 글귀처럼 아이를 위하는 따뜻함과 원칙을 지키려는 냉정함과 자신의 분노대로 표현하지 않고 감정을 다스릴 수 있는 인내심을 가진 엄마가 되리라.

아침에 일어나면 다시 한 번 아이에게 진심어린 사과를 할 것이라 다짐하며 그날 나는 겨우 밤잠을 이룰 수 있었다.

보건교사 최윤애
보건교사 최윤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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