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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테넷'. 워너브러더스코리아 제공
사진출처 한국일보 (영화 '테넷'. 워너브러더스코리아)

팬데믹으로 공연장 중심의 문화 산업이 직격탄을 맞았다. 오랜만에 찾은 영화관은 예전 풍경이 아니었다. 관객도 눈에 띄게 줄었지만 좌석간 거리두기로 전체 좌석은 절반 이하로 줄었다. 사회적 거리두기 단계가 일시적으로 완화됐을 때 영화관을 찾았다. 최근 대중 뿐만 아니라 과학자들 사이에서 화제가 된 영화를 보기 위해서였다. 2014인터스텔라로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을 대중에게 과감하게 꺼냈던 크리스토퍼 놀런 감독이 이번에도 관객을 과학의 세계로 초대했다.

놀런의 영화는 한 번도 안 본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본 사람은 없다고 할 정도로 난해한 각본으로 유명하다. ‘테넷이란 제목의 영화도 실망시키지 않았다. 이번 영화를 관통하는 맥은 엔트로피 인버전 Entropy inversion’이다. 엔트로피는 물리학에서 다루는 용어로 쉽게 이해하기 힘든 개념이다. 그런데 인버전이라니, 이 개념이 뒤집혔다는 뜻이다. 어려운 것이 뒤집혔으니 오히려 쉽다는 말일까?

엔트로피는 물리학에서 열역학 제2 법칙을 말한다. 분명 열과 관련된 법칙이지만, 일반적으로 자연에서 일어나는 변화의 방향을 말해주는 물리량으로 풀이된다. 이렇게 설명해도 어렵다. 좀 더 쉽게 풀어 보자. 뜨거운 물이 담긴 컵에 인스턴트 커피를 넣어 보자. 당연히 그 다음은 커피 알갱이가 물속에서 퍼진다. 극성을 가진 물분자의 충돌로 입자들은 쪼개지고 컵 전체에 골고루 퍼지며 커피가 식어간다.

우리가 사는 세계에서는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 물리학에서는 엔트로피를 무질서한 정도라고 표현한다. 무질서는 잘 정돈된 것이 흐트러지는 것을 말한다. 물속에서 커피 입자가 확산되는 것을 무질서하다고 표현한다. 그래서 흔히 물리학자들은 엔트로피가 증가한다는 말로 복잡해지는 심경이나 상황을 농담처럼 빗대어 표현하곤 한다.

엔트로피 법칙에서 중요한 것은 에너지 출입이 없는 고립된 계에서 전체로 보면 엔트로피가 증가하지 줄어들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물에 퍼진 커피 입자는 다시 원래의 단순했던 알갱이로 돌아갈 수 없다고 이해하면 된다. 물론 이론적으로 알갱이로 다시 돌릴 수도 있다. 그러려면 엄청난 일을 해야 한다. 결국 외부와 에너지 출입이 이루어진다. 에너지 생성으로 엔트로피는 더 증가한다. 그러니까 이런 현상을 모두 포함하는 커다란 고립계, 결국 우리가 사는 세상 전체로 보면 모든 현상과 과정은 엔트로피가 증가하는 방향으로만 일어난다. 거꾸로 가는 것, 가역 과정은 일어나지 않는다.

그런데 이 과정을 영상으로 찍고 거꾸로 돌려 보면 어떨까. 잘 섞인 커피가 물과 분리돼 알갱이로 다시 모이고 식었던 물은 온도가 올라간다. 이렇게 엔트로피를 증가하는 방향이 아니라 거꾸로 감소하는 방향으로 만들 수 있는 유일한 해답은 시간이다. 시간의 방향을 거꾸로 돌리면 된다. 과거로의 시간여행이 불가능한 이유가 바로 엔트로피 개념 때문이었는데, 엔트로피 인버전을 다룬 영화에는 과거와 현재, 미래라는 각 세계가 마치 평행이론처럼 서로 다른 엔트로피 변화가 동시에 작동했다. 인버전 상태에서는 모든 것이 거꾸로 작동한다. 사람과 자동차가 거꾸로 다니고 하늘의 새도 거꾸로 날아간다. 호흡도 이산화탄소를 흡입해 산소를 토해내야 한다. 불은 에너지를 흡수해 주변을 얼리고 바람의 저항, 마찰 등 모든 게 거꾸로다. 우리가 아는 모든 물리법칙이 반대인 세상은 끔찍하다. 물론 영화는 현실이 아니다.

하지만 영화 같은 팬데믹은 현실이다. 최근 확진자 한 사람의 거짓말은 7차 감염으로 이어져 80명 넘는 확진자를 만들고 방역 당국을 망연자실하게 했다. 그리고 감염경로 파악이 안 되는 이른바 깜깜이 환자환자 비율이 높아지며 방역이 한계에 부딪쳤다. 감염 경로라는 정보는 사람들의 삶, 그 자체이다. 시간 흐름은 현재를 과거에 묻고 미래를 현재로 만들어 간다. 과거에 갇힌 삶은 알 수 없고 정보는 사라진다. 공공성을 외면한 한 사람의 이기심이 과거 정보를 왜곡해 감염 경로 추적의 사슬을 끊어냈다. 감염병의 확산도 점점 불확실해지는 정보도 엔트로피의 증가로 볼 수 있다.

할 수만 있다면 시간을 거꾸로 돌리고 싶다. 시간여행은 불가능하지만 이 고립계안에서 엔트로피를 감소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 바로 감염학의 역학조사다. 역학조사가 단순히 환자의 동선을 조사한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 역학조사는 의과학과 통계학을 토대로 논리적으로 분석하고 사회과학과 인문학에 이르는 폭넓은 분야의 입체적 이해를 바탕으로 하는 융합과학이다. 감염이 발생하면 감염 위험을 무릅쓰고 현장에 가장 먼저 달려가는 이들이 방역 당국의 역학 조사관들이다. 우리는 분명 영화 같은 어려운 시기를 무사히 지날 것이다. 현실에서는 일어날 수 없는 엔트로피 인버젼을 해내는 주인공들이 있기 때문이다.

김병민 한림대 나노융합스쿨 겸임교수
김병민 한림대 나노융합스쿨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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