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환경 농산물의 아버지’가 황소고집으로 지켜내는 것은 바로 ‘건강’때문이다

곳간을 걸어 잠그는 식량 수출국, 그에 맞서는 길은 오직 농촌을 지키는 일

서산 친환경 영농조합법인 황춘성 대표
서산 친환경 영농조합법인 황춘성 대표

프롤로그

세상에서 일어나는 대부분의 전쟁은 알고 보면 너무도 단순하다. 바로 잘 먹고 잘살자고 일어나는 것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식량을 확보하기 위한 전쟁들은 지금도 우리 눈 앞에 펼쳐지고 있다.

이번 코로나19만 보더라도 식량 수출국들은 식량 안보를 명분으로 내세우면서 곳간을 걸어 잠가 전 세계 식량 공급망 곳곳에 충격을 주고 있다. 바이러스 확산을 막기 위해 각국이 인적·물적 이동을 제한하면서 식량 생산과 이동이 큰 차질을 빚고 있기 때문이다. 일부 전문가들은 세계적인 식량 대란이 벌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적지 않다.

이런 와중에 서산시 음암면에서 친환경 유기농 먹거리를 재배하여 세상에 내어놓는 서산 친환경 영농조합법인황춘성 대표를 만났다. 황 대표에게 유기농을 고집하는 이유에 대해 묻자 건강이라며 건강한 농산물을 생산하려면 건강한 땅을 먼저 살려야 했다고 말했다.

황 대표는 현재 서산시 음암면 말목길 233-20에서 벼, 고구마, 감자, 생강, 마늘, 배추 등 18,000평에 총 15종을 심어 건강한 먹거리를 생산해 내고 있다.

 언제부터 농사를 짓기 시작했나? 어린 시절 그때부터 자신의 성장기를 얘기해 달라

농사를 짓는 부모님 밑에서 5남매 중 맏이로 태어났다. 시골이니 당연히 어릴 때부터 농사에 발을 들여놓았겠지. 이걸로 본다면 60년은 족히 될 성싶다. 그 당시는 보릿고개다 뭐다 해서 참 힘든 시절이었다. 그 힘든 속에는 수리시설이 한몫한 것 같다. 너무 가물어 흉년이 들면 굶주린 배를 채우기 위해 여물지도 벼를 잘라 밥을 지어 먹었던 사람들도 있었을 것이다. 당시를 건넜던 사람들은 대부분 당해본 일이었다. 나 또한 마찬가지였으니까.

칡뿌리도 캐서 먹어보고, 찔레꽃도 꺾어 먹고, 심지어는 아카시아 꿀도 쪽쪽 빨아 먹었다. 지금 생각하면 정서적으로 비칠진 모르겠지만 알고 보면 이것도 다 배를 채우기 위한 하나의 방법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런 와중에도 주린 배를 안고 우리네 부모님들은 하루하루 농사일을 해가며 자식들 뒷바라지를 해냈다. 나는 형제들과 함께 방학이면 밭을 매고, 소 꼴을 베곤 했는데 그 당시는 웬 비가 그렇게나 많이 내리던지, 자고 나면 호미를 들고 밭으로 나갔는데 메기도 전에 뒤돌아보면 저만치 다시 잡초가 머리를 밀고 올라오곤 해서 짜증을 내곤 했던 기억도 난다.

그때나 지금이나 장남에게는 기대치가 높았다. 부모님은 니가 잘 돼야 동생들도 잘된다며 독려를 하며 어려운 형편에도 대학에 가라며 등을 떠밀었다. 그런데 어떻게 나만 생각할 수 있나. 만약 내가 간다면 밑에 동생들 4명이 중학교에 못 갈 판인데... 당시는 중학교도 반 이상이 가지 못하는 때였다. 나는 아버지게 그렇게 하지 말고 전체로 똑같이 (고등학교)나오자고 말씀드렸고, 우리 형제는 힘들었지만 모두 고등학교까지 무사히 졸업할 수 있었다.

지금 생각해도 너무 공평했다는 생각이 든다.

퇴비제조(쌀겨, 유박, 어분, 골분, 당밀, EM 등)를 하고 있는 황 대표
퇴비제조(쌀겨, 유박, 어분, 골분, 당밀, EM 등)를 하고 있는 황 대표

 1950년대 세대들은 주로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대부분 공무원으로 나가던데?

나는 달랐다. 그때만 해도 공무원 월급이 적어 나름 높은 경쟁률을 뚫고 수원에 있는 삼성전자에 취직했다. 지금도 기억나는 것은 초봉을 받고 보니 생각보다 적은 액수에 상당히 실망했다. 당시 월급이 10만 원이었는데 그걸로 방세 내고 먹고살려니 너무 빠듯했다. 고민고민 끝에 결국 3개월 만에 사표를 내고 시골로 낙향하여 농사를 지었다. 지금 보면 당시 같이 입사했던 동기들은 모두 떵떵거리며 잘 사는데 에이 나도 그만 눌러앉을 걸 하는 후회도 살짝 한다.

왜 내려왔냐는 부모님의 지청구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제일 먼저 했던 것이 소 3마리를 사들여 키우는 일이었다. 나중에는 30마리까지 늘렸지만, 그 또한 수입이 맞지 않아 처분했다. 계속 붙잡고 있었다면 지금은 갑부가 됐을 텐데(웃음). 그러고 보면 나하고 돈하고는 영 궁합이 안 맞는다. 가뭄에 단비같은 불로소득은 내겐 너무 먼 당신. 아무리 일해도 안 되는 것은 안된다는 것을 그때 알았다. 결국 3박자가 맞아야 세상이 돈다.

그때부터 죽으라고 땅이나 파며 농사일에 매달렸다. 남들이 하는 농사를 그대로 답습하며.

황춘성 대표가 만든 액배는 향긋한 냄새가 난다.
황춘성 대표가 만든 액배는 향긋한 냄새가 난다.

친환경 유기농 농법으로 전환했는데 여기에는 그럴만한 사연이라도 있나?

어느 날이었다. 그날도 여느 날처럼 마스크도 없이 장화도 신지 않은 채 벼에 농약을 뿌렸다. 지금처럼 장비를 다 갖춰서 약을 치는 사람들이 별로 없던 시절이었다. 농약을 다 치고 집에 들어왔는데 하늘이 빙빙 돌면서 어지러웠다. 급하게 병원을 가니 아뿔싸 농약 중독이 아닌가!

의사 선생님 왈 농약 줄 때는 다른 사람에게 시켜라고 말하더라. 생각해봐라. 나도 안 되는데 다른 사람에게 어떻게 시키냐. 농약으로 쓰러졌을 때가 1980년이었다.

이 시점이 바로 내가 친환경 농사를 시작한 때였다. 유기농을 한다고 하면 남이 보지 않는 달밤에 몰래 농약을 주고선 아침이면 모른 척 시치미를 딱 떼며 유기농이라고 속이던 시절이었다. 오죽했으면 먹는 것 따로 파는 것 따로 농사들을 짓는다고 했을까.

그즈음 공주대학에서 1년 코스로 농업인 육성과정이 개설되었다. 그곳에서 대체 농법인 ‘EM농사법을 배우게 되었다. 농약을 쓰지 않고도 농사짓는 방법이 있다는 걸 알고 깜짝 놀랐다. 이제는 두말할 것도 없다 싶어 밤낮 뛰어다니며 배우기 시작했다.

시작은 참으로 신기하고 좋았지만, 그때부터 가족들이 겪었을 고난의 행군도 만만치 않았다. 그 당시 내 눈빛을 보면 그 누구도 말릴 수 없을 정도로 불타 있었다고 한다. 하루에 잠을 2시간도 못 자고 미친 듯이 일했으니까.

나를 아는 사람들은 그 짓을 왜 하냐! 돈이 되기는 하냐? 노력의 대가도 안 나오니 당장 접어라고 조언을 했다. 나는 그랬다. ‘농사의 목적은 이득을 추구하기 위해서 하는 게 아니다. 농사는 자연을 보전해가면서 국민에게 안전한 먹거리를 공급하는 것이다. 그리고 화학비료니 농약을 주면 가장 먼저는 내가 해를 입는다. 친환경을 한다는 자체는 바로 자기 자신을 위해서도 필요한 일이었다며 스스로 해답을 찾아 나갔다.

자연은 복원력이 상상외로 굉장히 빠르더라. 화학비료나 농약을 쓰지 않으니 허용기준치 이하로 떨어짐으로써 유용한 생물체들이 서서히 살아났다. 그것은 곧 흙이 살았다는 것을 뜻한다. 그때 알았다. 화학비료나 제초제가 병과 벌레를 불러들이는 역할을 했다는 것을.

광주 ‘참든’ 구매담당 팀장이 양파작황을 확인하고 있다.
광주 ‘참든’ 구매담당 팀장이 양파작황을 확인하고 있다.

영농법인을 만들어 워커힐호텔로 납품을 했다. 납품하기까지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들려달라

친구의 도움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다. 시골에서 친환경 농사를 짓는 걸 보고 군대 동기가 동생이 워커힐호텔 이사인데 직원만 2,000명이다. 이렇게 귀하고 좋은 농산물인데 충분히 말해줄 수 있다. 그러니 납품할 수 있도록 영농법인을 만들어라고 하더라. 사실 생각도 안했다. 덕분에 업체등록을 하고 1년간 친환경 쌀을 납품했다.

지금도 잊을 수 없다. 그 친구가 니가 서산에서 워커힐호텔로 납품하면 도지사나 시장이 맨발로 고맙다며 찾아올 거다고 말했다. 물론 깜깜무소식이었지만... 처음 화물트럭에 쌀 1t을 싣고 신나게 밝아 올라가 호텔 안으로 들어갔다. 이 모습을 보던 주방장이 뛰어나와 잘 덮어서라도 가져와야지 이렇게 가지고 오면 큰일이다고 하더라. 무식이 용감했지. 일주일에 한 번씩 친환경 쌀을 가지고 1년 동안 꾸준히 서산과 서울을 왕복하며 달렸다. 그래도 행복했던 것은 다른 것과 비교해도 서산 쌀이 월등히 맛있다고 하는 소리였다. 물론 단가도 아주 좋았다. 하지만 농민들이 혈혈단신 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땅만 파던 농사꾼들이 포장재 디자인하랴, 이름 고안하랴 여러가지 잡다한 것들이 너무 많아서 머리가 터질 지경이었다. 결국 시청에 도와달라고 말을 했다. 하지만 돌아오는 답변은 보조금이나 따내려고 한다는 뒷소리뿐이었다. 당시 다른 지자체에서는 서로 들어가려고 포장재, 탑차 차량 지원 등을 해준다고 난리도 그런 난리가 아니었다.

그도 그럴 것이 브랜드 하나로도 서산을 알릴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고, 무엇보다 어차피 쌀이 입고되고 있으니 워커힐호텔에 다른 작물은 업체등록만 하면 됐다. 감자, 양파, 마늘 등 다수의 서산브랜드를 납품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는데 지자체의 안일함에 크게 실망만 했다.

농사만 짓는 사람이 농사 이외의 것에 무슨 재주가 있겠나. 농사만 지어도 한도 끝도 없이 바쁜데... 결국 호텔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1년 만에 중도 포기를 하고 말았다. 그때 넣었던 상표가 바로 지금도 시중에 판매되고 있는 서산 쌀 노을미였다.

석천문화관 홍순자 관장님(아래 왼쪽)과 함께
석천문화관 홍순자 관장님(아래 왼쪽)과 함께

 대기업 총수들이 앞다투어 친환경 제품을 가져간다는데?

앞다투는지는 모르겠지만 대기업의 내노라 하시는 어르신들이 우리 제품을 구매하신다(웃음). 지난번 장마 때는 수해로 농산물 피해를 보았을까 봐 얼마나 고생하냐며 수해위로금까지 보내왔더라. 사실 우리는 수해를 입지 않았다고 했는데도 걱정이 돼서 보내왔는데 얼마나 고맙던지... 귀한 것을 받았으니 귀한 곳에 써야 하지 않나. 그 돈을 바로 서산시청에 수재의연금으로 100만 원을 계좌 이체했다.

사실 이분들은 가을이 되면 1년 동안 먹을 쌀과 함께 다양한 농산물을 당신들은 물론이고 가족, 친지, 이웃, 지인들과 나눠 드신다며 가져가신다. “다 가져가고 싶은데 여러사람과 나눠 먹고 싶어 참는다. 나만 먹으면 안 된다는 말씀을 남기시고. 정말 감사한 분들이다.

아시다시피 고도로 발전하는 사회 속에서 유전자 변형을 통해 개발된 먹거리, 대량 수확을 위해 농약을 살포한 채소 등이 넘쳐나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지 않나. 그래서인지 먹고 사는 것에 고민하는 분들이 많다. 우리 집을 이용하는 이분들 또한 안전한 먹거리를 찾다가 나를 만나게 됐고 믿을만한 생산자다 싶으니 10년 동안 한차례도 이탈 없이 거래하게 됐다.

인제군 EM 환경센터 교육생들이 현장교육을 왔을 때
인제군 EM 환경센터 교육생들이 현장교육을 왔을 때

 농촌인력난 해소에 도움을 준 계절 근로자들이 코로나19로 입국이 금지됐다. 기존 국내에 체류하던 외국인 근로자의 인건비가 천정부지로 치솟아 농가의 시름이 깊어지고 있는데 앞으로도 친환경 품목을 계속할 생각인가?

인력난 때문에 나도 사실 고민을 많이 하고 있다. 농산물 가격은 같은데 인건비는 100%까지 올라갔다. 문제가 심각하다. 논은 우렁이로 제초하니 제초제보다 더 깨끗하다. 물론 논독은 사람이 깎아야 한다. 그러고 보면 논은 친환경이 더 쉽다. 약 안 줘도 벌레나 병도 안 오고. 하지만 밭은 풀 뽑는 것이 제일 큰 문제다. 그동안은 인건비가 싸니까 부담없이 했는데 이제는 문제가 정말 심각해 졌다.

그래서 앞으로는 노동집약적인 품목은 빼고 손이 많이 가지 않는 고구마, 감자, 양파 등을 심는다든가, 비닐이나 부직포를 이용하여 풀이 나지 못하게 바꿔나가야 할 것 같다.

그리고 친환경 품목을 계속하냐고 물었나? 물론이다. 친환경 유기농은 바로 건강이며 몸살림이다. 화학농업은 이미 수확량이나 품질면에서는 한계에 다다랐다. 더 이상 발전해 나갈 수가 없다. 하지만 친환경 유기농은 앞으로도 계속 발전한다고 자신있게 얘기할 수 있다. 그러니 내가 안 할 이유가 없지 않나.

농산물꾸러미에 대해 말들이 많았는데 어떤가? 그리고 현재 농민들에게 지원되는 혜택들을 보면?

농산물꾸러미에 대해서는 나도 할 말이 많다. 내가 아는 농산물꾸러미는 코로나19로 위기에 빠진 농민들을 살릴 돌파구로 탄생됐다. 하지만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자면 지자체는 현재 지원해주는 방식으로는 남 좋은 일만 다 시킨다.

지난 6월 학생들이 있는 가정에 6만 원 상당 농산물꾸러미 배송을 했다. 금액적으로 11억6천만 원 정도 썼다고 들었다. 하지만 혜택은 정작 농민들에게는 얼마 돌아가지 않는다. 유통마진과 소분료 등으로 중간에서 다 빠져 버린 것이다. 학교 이것은 학교 급식도 마찬가지다. 업체에서 만들어 급식센터로, 학교로 몇 차례 거치다 보면 이 또한 별반 다르지 않다. 차라리 농민들은 로컬푸드에 주는 게 훨씬 낫다고 말한다. 이런 구조방식은 적절치 못하다.

이뿐만이 아니다. 농업 쪽으로 지원되는 것은 대부분 그렇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농어촌구조개선기금으로 정부에서 10년 동안 110조를 썼다고 들었다. 1년에 11, 농가 호수로 따지면 3,800만 원이다. 만약 이 돈이 10년 동안 농가들에 실질적으로 지원됐으면 구조개선? 아주 제대로 됐을 것이다. 그런데 중간에서 유리온실로 빠지고 인삼가공으로 빠지고...정작 농민들에게는 혜택이 없다.

농기계 반값 가격공급도 그렇다. 국비로 50% 지원한다고 하니 업체에서 농기계 가격만 올려놓은 꼴이다. 농업 쪽은 인건비, 기곗값, 자잿값이 비싸 이제 소용없다. 지금 트랙터, 콤바인 한 대 값이 1억이 넘는다. 정부에서 반값 지원해주니 공장에서 올려버린 거다. 모든 게 그런 식이다.

결론은 농민들 쓰는 돈은 중간에서 다 챙겨가는 꼴이니 혜택 자체가 미미하다. 실질적인 혜택이 돌아올 수 있도록 해줬으면 좋겠다. 올바른 먹거리를 생산할 수 있도록 말이다.

서산시 먹거리 종합계획 수립 연구용역회에 다녀오면서
서산시 먹거리 종합계획 수립 연구용역회에 다녀오면서

옛말에 문전옥답이란 말이 있다. 이는 아주 귀한 재산을 의미하는 말인데 지금 농촌의 현실을 말해줄 수 있나?

옛날 말이다. 지금 농촌 현실은 아주 죽을 맛이다. 농민들은 인건비가 비싸 농산물을 판매해봐야 종잣값도 안 나온다는 말을 한다. 그러다 보니 문전옥답이란 말은 이미 물 건너간 얘기다. 잡초만 수북한데 무슨 귀한 재산이냐. 지금은 농사를 지으면 지을수록 농민은 죽어나고 다른 사람만 득을 본다.

일례로 전년도에 유통회사와 양파 계약재배를 했던 농가들이 있었다. 올해는 모두 포기했더라. 물어보니 열심히 수확해서 갖다 줘야 뭐하냐, 죽도록 일만 해봐야 자기들 이득만 챙기는데... 그러니 올해 안 심지라며 허탈해하더라. 지금 농촌 현실이 대부분 그렇다.

올해 양배추 심은 면적이 작년보다 절반도 안 된다. 심은 것도 50%는 죽어 없어졌다. 벌써 장사꾼들이 난리다. 팔봉에 사는 농가도 평소 많이 심었었는데 이상하게 올해는 안 심었더라. 장사꾼들 좋은 일만 시킨다고. 오죽했으면 어떤 양파농가는 값비싸게 팔리는 양배추를 전부 로타리 치더라. “금값일 텐데 왜?”라고 물으니 불과 두달전인 7월달에만 봐도 한 망에 1,000원 정도 계약했다. 그럼 낱개로 치면 300원 겨우 넘는 금액이다. 이처럼 비싸도 밭에서는 똥값에 팔린다. 그런데 마트에만 가면 1/4쪽해서 2,000~2,500원 받는다며 울분을 터뜨리는데 너무 마음 아프더라. 어떤 집은 봄에 심었지만 인건비 때문에 묵혀버리는 예도 있고.

~ 생각하면 많이 속상하다. 제발 도움을 주려면 좀 더 실질적인 지원이 이뤄졌으면 좋겠다.

유기농을 하면서 가장 보람 있었던 일은?

토양 검사결과 247개 항목에 유해성분 불검출이 나왔을 때가 가장 보람 있다. 그동안 고생한 것들에 대한 보상 같아서 정말 기쁘다. 특히 무농약은 기준치가 있는데, 유기농은 기준치가 없다. 무조건 불검출이라는 결과가 나와야 한다. 더구나 토양검사는 예고 없이 국립 농산물 품질 관리원에서 나와 흙을 가져가 검사한다. 그러니 요령을 피워서 될 일이 아니다. 유기농은 적당히가 없다. 요령 피우다 적발되면 그것으로 끝이다.

체험농장을 방문하신 분들에게 유기농에 대한 교육을 하며
체험농장을 방문하신 분들에게 유기농에 대한 교육을 하며

농사를 통해 배우는 것들에는 어떤 것이 있나?

모든 먹거리는 기본적으로 생산자와 소비자가 서로를 신뢰해야 한다. 지금까지 정말 고생을 많이 했다. 그게 쌓여서 이제는 조금씩 열매를 맺어가는 것 같다. 또 농사를 지으면 질수록 모든 생명체가 소중하다. 모든 것에는 자기 자리가 있는 것 같다. 내가 친환경을 하면서 자연으로부터 배운다.

보이지 않는 미생물조차도 유기농에 없어서는 안 되는 큰 힘이 되니까. 좋은 농산물이 자랄 수 있는, 살아있는 땅을 만드는 것, 그것이 내가 해야 할 일이 아닐까 싶다.

에필로그

모든 먹거리의 기본은 소비자로부터의 신뢰가 있어야 한다. 상표만 붙인다고 소비자가 선택하는 것은 아니다. 더군다나 친환경 농산물이라고 병들고 벌레 먹고 못생기고 작아도 된다는 것은 이제 통하지 않는 세상이다.

특히 관행 농산물과 품질로 경쟁해야 한다. 보기 좋은 것은 기본이며 맛과 향, 당도 또한 높아야 한다. 소비자에게 선택받기 위해서는 포장 진열도 신경 써야 하고. 무엇하나 만만하고 어수룩한 게 없다는 서산 친환경 농업법인 황춘성 대표.

본지와의 인터뷰를 통해 그는 우리 농업을 자연스럽게 유기농화 될수 있도록 정부에서 유도해줬으면 좋겠다. 나는 앞으로도 시민들의 건강한 삶을 위해 힘들더라도 친환경 농산물을 포기하지 않고 생산해 내겠다는 약속을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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