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고전에 물으니, 고전이 새로운 길로 답하다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고 느끼고 상상하는 새로운 고전
'나는 그 여자에게 ‘사랑한다’고 말하고 싶었다. 그러나 ‘사랑한다’라는 그 국어의 어색함이 그렇게 말하고 싶은 나의 충동을 쫓아 버렸다.'
누군가를 뜨겁게 사랑할 때, 그것을 고백할 때 우리는 얼마나 그 언어의 진부함과 대체불가능성에 절망했던가! 작가는 그런 감정을 오히려 언어로 풀어낸다. ‘그 국어의 어색함’이라는 이 절묘한 표현에는 어떠한 수식어도 따르지 않는다.
그런데도 문장 전체뿐 아니라 앞뒤의 맥락까지 단숨에 압도하는 간결하면서도 세련된 서술이 함축적으로 담겼다. 놀랍지 않은가! 국어를 쓰면서 ‘국어의 어색함’이라는 두 낱말로 그 언어로도 도저히 담을 수 없는 심오한 감정을 응축하면서 정작 작가는 ‘뭐, 그런 것쯤이야’ 하는 듯 아무렇지도 않게 씩 웃어넘긴다. 내가 「무진기행」을 읽으면서 가장 충격적이었던 대목이기도 하다.
‘우리말’에서 느끼는 그 ‘낯선 친근함’은 어쩌면 우리 모두가 느끼는 감정이며 인식이기도 할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그 표현을 출산한 산모인 작가에게 모자를 벗어 경의를 표한다. 위의 글은 <고전에 묻다>에 수록(P90-91쪽)된 글의 일부다.
김경집 전 교수의 고전 새롭게 읽기 3부작 중 2016년에 쓴 제1편 <고전, 어떻게 읽을까>로 시작해서 <다시 읽은 고전>을 거쳐 드디어 종착점인 <고전에 묻다>가 대장정의 막을 내렸다.
그는 이 책을 세상에 내면서 “고전에 대한 책들이 많은 걸 알면서도 권위있는 해설과 설명, 심지어 누구처럼 변종자기계발서로 만들어놓은 것들과 달리 거의 내 눈과 마음에 의존해서 좌충우돌 대들어온 과정들이 이 책에 담겨있다.
글을 쓰기 위해 책을 다시 읽었고, 그러면서 생각의 갈래들을 최대한 자유롭게 끄집어내는 일은 즐거움인 동시에 내겐 고역이었다. 능력이 딸려서 모자란 부분들도 물론 많겠지만 그래도 각 권마다 서로 다른 방식과 방향성으로 실험해본, 정말 값진 경험들을 이들 책 속에 담고자 했다. 홀가분하면서도 끝났다는 게 새삼 섭섭하기도 하다”며 소회를 밝혔다.
총 3장으로 구성된 <고전에 묻다>는 각 장마다 ‘우리는 모두 슈호프다’ ‘이 사람의 신발을 신고 걸어보라’ ‘영원한 사유의 보물’이라는 각각의 토픽을 알차게 실었다.
인문학자 김경집 전 교수의 <고전에 묻다>는 주인공뿐 아니라 다른 등장인물의 시선을 통해 이야기를 바라보거나 다양한 감각과 상상을 동원해 새로운 관점에서 이야기를 풀어나감과 동시에 재해석했다는 것이 큰 특징이다.
가령, 《논어》를 군자가 아닌 소인의 눈으로 읽고, 《어린왕자》를 시각만이 아닌 오감을 총동원해 느껴보는 식이다. 《데카메론》에서 《전태일 평전》까지, 《이탈리아 여행기》에서 《창백한 푸른 점》까지...
문학, 역사, 경제, 예술, 과학 등 국내외 고전 26권에 대한 숙독의 기록은 ‘고전은 질문하는 사람에게 늘 답을 건넨다’는 믿음 아래 자유로운 상상력으로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며 우리를 고전들에 대한 더 넓은 이해의 지평으로 이끈다.
저자 김경집 전 교수의 <고전에 묻다>는 이달에 출간된 신간이며 학교도서관저널 출판 16,000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