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서산문화재단 조규선 대표이사 선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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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서산문화재단 조규선 대표이사 선임
  • 최미향 기자
  • 승인 2020.08.09 2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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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산문화재단, 시민행정의 전환점으로 만들겠다”
서산문화재단 조규선 대표이사 선임
서산문화재단 조규선 대표이사 선임

프롤로그

“시민과 문화·예술인이 하나 되어 ‘행복한 시민의 서산’을 만드는데 일익을 담당하고파”

태풍의 영향으로 비가 내리는 오후, 약속된 시간보다 약간 늦은 관계로 분주하게 문을 노크하자 반가운 얼굴의 조규선 전 서산시장이 반가운 얼굴로 맞았다.

그간 친분이 있는 관계로 편하게 이곳저곳을 둘러보니 제일 먼저 눈에 띈 것이 운보 김기창 화백 작품과 나태주 시인의 시 그리고 미인도의 천경자 작가의 작품 등이 오롯이 세워져 있었다.

기자의 눈을 의식했는지 조규선 전 서산시장은 아끼고 아끼던 고구려시대 새 모양 토기를 유리 속에서 고이 꺼내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

환한 얼굴로 호탕하게 웃으며 고구려시대 토기인데 기가 맥히지라며 무덤에서 발굴된 새의 형상인데 그 당시 무덤에 새 모양 토기를 함께 넣었던 이유는 아마도 죽은 이가 훨훨 날아가기를 바라는 마음이었을 것이라고 했다.

토기를 이리저리 돌려가며 연신 기가 맥히잖아. 살아있는 것 같지. 자세히 보면 기가 맥히지. 자꾸 보면 기가 맥힌거여. 잘 봐봐 기가 맥히지라는 말에 기자는 웃음보를 터트리지 않을 수 없었다.

평소에도 문화에 대한 관심이 상당하다는 것을 알았지만 이렇게 좋아할 줄은 몰랐다. 집무실 한쪽에 세워져 있는 작품들과 장식장에 곱게 놓인 향로, ‘우리 문화예술론의 선구자들이란 책 외 다수의 문화·예술에 관한 서적들이 책상 위를 곱게 차지하고 있었다.

서산시대는 2020년 서산문화재단 대표이사 선임이 된 조규선 전 서산시장을 만났다.

무덤에서 발굴되었다는 고구려시대 새 모양 토기
무덤에서 발굴되었다는 고구려시대 새 모양 토기

서산문화재단 대표이사가 되심을 진심으로 축하드린다. 지원하게 된 계기를 말해달라.

18일 날 위촉장을 받는다. 아직 된 것은 아니고 최종 합격통지만 받은 셈인데 인터뷰를 해야 할지 고민했다(웃음). 오늘날 내가 존재하는 것은 모두 시민여러분 덕분이다. 이 지면을 빌어 맹정호 시장님을 비롯한 시민여러분께 감사드린다.

내가 이곳에 지원한 것은 가장 먼저 우리 서산의 문화를 발굴하고 지키고 싶었기 때문이다. 문화재단을 통해 새로운 문화를 창조해 나가면서 시민들의 행복한 삶에 이바지하고 싶은 간절한 마음이 내면에 깔려있었다.

솔직히 민선 3기 때 추진하다 중지된 것들이 몇 가지 있다.

가장 먼저는 시립미술관 건립을 기억할 것이다. 당시 국비 예산을 확보해서 건축설계 공모를 완료한 상태였었다. 더 이상 추진되지 않아 아쉬웠다. 만약 그때 추진되었더라면 지금쯤 우리 서산에도 번듯한 시립미술관 건립으로 시민들의 문화욕구가 다소 충족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다음은 지곡면 화천리에 24,588평 규모로 안견예술공원 조성이 타당성 조사 및 기본계획 수립 중이었고, 서산시 운산면 고풍리에 80,163평 규모로 예술인 창작마을 조성이 기본계획 수립 타당성 조사 도시계획에 포함되어 시설계획용역 중이었다.

이밖에도 계획했던 사항들이 있었지만 이뤄지지 못해 서운하던 차 서산문화재단이 설립된단 소식을 들었고 이런 여러 가지 사업에 대해 재추진 타당성 검토 후 시민의 수준 높은 문화예술 향수기반 구축을 위해 계속 진행될 수 있도록 맹정호 서산시장에게 제안하여 실현하고 싶었다.

한서대학교 평생교육원 예술·인문 노블레스 최고위과정에서 강의를 하며
한서대학교 평생교육원 예술·인문 노블레스 최고위과정에서 강의를 하며

서산시장직도 역임했었고, 한서대학교 대우교수직도 역임하고 있다. 이제 서산문화재단 대표이사를 맡았는데 역시 마음가짐을 물어보지 않을 수 없다

지난 2, 분데스리가에서 뛰던 권창훈 축구선수는 골닷컴의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했다. “1분을 뛰든, 90분을 뛰든 내 마음가짐은 똑같다.”

나 또한 마찬가지다. 서산시장직을 수행할 때도 교수직, 그 밖에 여러 가지 일들을 맡으면서도 내 사전엔 안되는 일이 없다고 생각했다. 늘 최선을 다했다.

서산문화재단 또한 같은 마음으로 올바른 서산의 역사·문화 인식을 고취하는 데 초점을 맞추며 최선의 노력을 다할 생각이다. 그 바탕으로 새로운 문화를 창조하고 싶다.

이러한 뜻을 가지고 그간 살아온 경험과 지혜로 서산시민의 문화예술진흥과 문화복지증대를 위해 일하고자 한다. 무엇보다 시민과 문화예술인들이 하나가 되어 문화예술의 끼를 마음껏 발휘하는, 그래서 새 문화로 행복한 시민의 서산을 만드는 데 일익을 담당할 생각이다.

2019년 서산해미읍성축제 개회식을 알리는 징을 치며
2019년 서산해미읍성축제 개회식을 알리는 징을 치며

서산은 문화·역사적으로도 상당한 보고의 도시다. 서산문화재단 대표이사님이 바라보는 서산은 어떤 곳인가?

딱 맞는 말씀을 하신 거다. 바로 그거다. 우리 서산은 선사시대부터 리아스식 해안으로 찬란한 문명을 꽃피워 온 보고라 할 수 있다. 서산문화의 옛 명성을 찾고 싶었다.

우리 서산은 백제시대 기군, 신라시대 부성군, 고려시대 서주목, 조선시대 서산군이 되어 1989년 서산시로 승격되었고, 오늘에 이르렀다.

특히 서산의 서는 상서러울 서()’로써 복되고 좋은 일이 일어날 기미가 다분히 많다는 뜻이다. 이보다 더한 극찬이 또 어디 있겠나. 이것만 보더라도 우리 서산은 희망과 미래의 땅이다.

누군가는 늙은 도시’, ‘노을의 도시로 치부하는데 이는 상당히 잘못된 역사인식이다. 자랑스러운 서산을 폄하하는 것은 있을 수 없다.

나는 40년 전 젊은 시절, 서산JC 회장 등을 하면서 우리 서산을 바라봤고, 새마을운동 서산군 지회장과 서산발전포럼 공동의장 그리고 서산시장을 지내면서 우리 서산의 나아갈 방향과 지속가능한 발전을 늘 고민하며 살아왔다.

우리 서산은 대대손손 문화와 예술을 상당히 사랑하는 주민들이었다. 이제 서산문화재단이 설립되는 만큼 선조들의 뒤를 이어 서산의 눈부신 문화발전에 심혈을 기울이겠다.

서산시 지곡면에 위치한 안견미술관
서산시 지곡면에 위치한 안견미술관

외부에 있는 사람들은 서산 예술가 하면 제일 먼저 안견을 떠올린다. 한때 안견 기념사업회 창립 초대회장직을 수행했다는데?

서산이 낳은 조선시대 최고 화가 안견을 재조명하며 그의 예술혼을 기리기 위해 발족한 것이 바로 안견기념사업회이다. 당시 내가 초대회장직을 맡게 됐다. 벌써 30여 년 전의 일이니 세월 한번 빠르다(웃음).

안견은 다들 아시다시피 조선시대 위대한 최고 산수화가가 아닌가. 그런데 그분이 우리 서산 출신임을 확인했다. 이후 지곡면 화천리에 안견기념비 제막을 1990년대에 했고 그다음 해에 안견기념관 건립을 주도했다.

1990년 경향신문과 일본 아사히신문에 몽유도원도 반환운동 전개등으로 언론에 조명되는가 하면 문화체육부에 줄기차게 건의하여 당시 19947월 제14대 김영삼 대통령 시절, 정부가 안견을 이달의 인물로 정하였다.

그 시절 문화체육부는 안견에 대한 책자를 만들어 전국에 배포하는가 하면, 안견 기념사업회에서는 한국미협 서산시지부 주최 안견미술상 상금 1백만 원씩을 수년간 기탁하기도 했다.

이로써 안견미술대전은 명실상부한 문화예술인들의 대축제가 되었다.

서산출신 '나비'를 쓴 윤곤강(1911~1950) 시인의 시비
서산출신 '나비'를 쓴 윤곤강(1911~1950) 시인의 시비

그밖에도 우리 고장의 문화예술인들을 위해 많은 일을 했다고 들었다. 어떤 일들이 기억에 남나?

일단 내가 문학을 하다보니 문화예술에 애정을 갖게 되더라.

1990년대 새마을운동서산시지회 회장 당시 충남도 내고장으뜸가꾸기사업의 일환으로 서산문화회관 오른쪽에 윤곤강 시인이 지은 나비라는 시비는 늘 내 눈을 사로잡는다. 시는 이렇게 이어진다.

비바람 험살궂게 거쳐 간 추녀 밑/날개 찢어진 늙은 노랑나비가/맨드라미 대가리를 물고 가슴을 앓는다/찢긴 나래에 맥이 풀려/그리운 꽃밭을 찾아갈 수 없는 슬픔에/물고 있는 맨드라미조차 소태맛이다/자랑스러울 손 화려한 춤 재주도/한 옛날의 꿈조각처럼 흐리어/늙은 무녀(舞女)처럼 나비는 한숨진다.’

봐도 봐도 어디서 이렇게 멋진 시가 탄생하였는지 감탄이 절로 나온다.

또 하나는 조선조 당대 가야금 산조와 병창의 대가로 알려진 심정순(1873~1937) 기념비를 세운 일이다. 이보형 문화재 전문위원의 감수를 받아 직접 비문을 지었다.

또 한 분, 내 가슴을 뛰게 하는 문학인이 있다. 대한민국에 산다면 대부분 다 아는 민태원 선생의 수필 청춘예찬’! 이것은 1930년대 쓰인 수필로서 뛰어난 수사와 힘찬 호흡의 문체가 바로 이 글의 특징이다.

청춘의 순수하고 고귀함을 찬양한 작품 청춘예찬의 우보 민태원 선생 문학비 건립은 반드시 건립되어야 하는 열망이 있었기에 1991년도에 주도하게 됐다.

청춘! 이는 듣기만 하여도 가슴 설레는 말이다로 시작되는 서정적인 수필인 민태원 선생의 청춘예찬은 두고두고 읽어도 여전히 가슴이 뛴다.

청춘! 너의 두 손을 대고 물방아 같은 심장의 고동을 들어 보라. 청춘의 피는 끓는다. 끓는 피에 뛰노는 심장은 거선(巨船)의 기관같이 힘있다.

(중간 생략)

청춘은 인생의 황금 시대다. 우리는 이 황금 시대의 가치를 충분히 발휘하기 위하여, 이 황금 시대를 영원히 붙잡아 두기 위하여, 힘차게 노래하며 힘차게 약동하자!’

누가 이렇게 멋진 글을 쓸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가슴뛰지 않는가?

이밖에도 간월도 어리굴젓 탑비문을 직접 짓는 등 여러 방면에서 서산시를 알리는데 기여하는데 앞장섰다.

그림에 조예가 깊은 조규선 전 서산시장
그림에 조예가 깊은 조규선 전 서산시장이 천경자 화백을 작품을 설명하고 있다.

선진 문화와 예술을 배우기 위해 중심축에 있었다고 들었다. 그 부분에 대해 말해달라

30대에 미리 미국, 일본, 프랑스 등 세계 각국을 순회하면서 많은 것을 배웠고, 1981년 미국 프레스노 농과대학을 비롯하여 국립대만대학(농업발전과정), 덴마크 농협중앙회 등 여러 곳에서 연수를 받기도 했다.

1984년 인도에서 열린 국제농촌개발대회(IERD)에서는 한국추진위원으로 활약하기도 했다. 1990년대 벨기에, 프랑스, 스위스, 네덜란드, 스페인, 이태리 등 선진 유럽과 중국, 몽골, 러시아 등 세계 각국의 박물관과 미술관 견학은 물론 도시와 농어촌을 견학했다.

그중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프랑스 장 프랑수아 밀레(1814~1875) 생가다. 그가 그린 만종’ ‘이삭 줍는 여인들등 작품을 그렸던 보리밭과 교회가 그대로 보존되어 있었다. 또 몽마르뜨언덕에서는 길가에 이어진 아름다운 예술작품과 기념품가게, 그림을 그리는 화가들로 예술의 향기가 진하게 남아 관광객들의 눈을 사로잡았다.

특히 200511월에는 한국 시장·군수 구청장대표로 참석한 중국의 국제시장협회 지방정부 대표모임에서는 서산 천수만의 새 등 세계 각국의 아름다운 자연생태를 문화재로 등록하자는 주제로 기조연설을 하여 서산의 문화를 알리기도 했다.

또 하나 기억에 남는 것은 대통령 직속 국가균형발전위원회 주관으로 프랑스 산업단지와 스페인의 빌바오를 방문했을 당시 쇠락한 도시가 재생 프로젝트를 실현하여 자연과 인간이 함께하는 예술의 도시가 된 것이 정말 인상적이었다.

도시 전체를 예술 도시로 구성했다는 말 그대로 옛것과 새것이 조화를 이뤄 보는 이들로 하여금 감탄을 자아내게 했다. 특히 빌바오 구겐하임미술관 유치등은 나를 흠칫 놀라게 했다.

작년 가을, 가족들과 함께 보물 제143호로 지정된 대웅전과 충남문화재자료 제194호인 명부전 및 심검당을 둘러보며
작년 가을, 가족들과 함께 보물 제143호로 지정된 대웅전과 충남문화재자료 제194호인 명부전 및 심검당을 둘러보며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은?

서산문화재단 설립은 서산시의 큰 변화라고 생각한다. 전통적으로 공무원의 고유영역으로 인식되고 있던 문화예술진흥과 문화복지 증대를 위한 업무가 재단에서 하게 된다는 것은 관료행정에서 시민이 주인이 되는 시민행정으로 바뀌는 전환점이 될 것이다.

특히 문화예술인과 전문가 그리고 시민이 모든 정책과정과 집행을 자율적으로 함으로써 책임과 창의성을 더욱 발휘할 수 있다고 본다.

4차산업혁명시대의 특성은 미래예측의 불가능이다. 이 말인즉슨, 수많은 기술끼리 동시에 발전하고 우리가 상상하지 못하는 기술들끼리 또다시 합쳐지는 게 4차산업혁명이어서 미래예측이 무엇보다 불가능하다는 얘기다.

그러므로 안타깝게도 국가나 지방정부가 미리미리 대비하고 준비할 수 없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이에 우리는 현장에서 활동하는 문화예술인들의 고견을 듣고 이로써 지역의 특성과 문화를 잘 아는 전문가들이 변화를 이끌어야 한다.

서산문화재단이 그 중심에서 중요한 역할을 해야하기 때문에 재단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임원으로서 재단에 기여할 활동계획 그리고 서산문화재단은 시민들의 다양한 예술창작활동과 보편적인 문화복지가 정착할 수 있도록 활동하겠다.

이를 위해 문화예술인들에게 마음껏 창작할 수 있도록 협력하고, 시민들에게 행복한 삶을 만드는 문화충전의 행복발전소 역할을 다하겠다.

아무쪼록 우리 지역을 비롯한 전국이 태풍피해로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조속한 시일 내에 빠른 복구가 이뤄지기를 기원한다.

다시 한번 모든 분께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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