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하영 약사의 「약」이야기-51

장하영 세선약국 약사
장하영
해미 세선약국 약사

필자에겐 오랜 습관이 있다. 가장 좋아하는 책을 들고 다니는 것인데 청소년 시절부터 이어져 왔다. 특별한 이유는 없었다. 그저 그렇게 하고 싶었다. 대학생 시절에도 식판 옆에 책을 두고 식사하였다. 중고등학생 시절 가장 애지중지하였던 책은 영한사전이었다. 지금이야 스마트폰 검색하면 단어 뜻이 자세히 나오지만 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종이 사전을 일일이 찾아야 했다. 오죽하면 학교에서 사전 찾기 대회까지 하였을까. 사전 출판사는 동아, 금성, 에센스 등이 유명하였는데 빨간 딱지가 상징인 동아를 선택하였다. 그 사전은 중1 때부터 고3 때까지 무려 6년을 함께 했으니 본전은 뽑은 셈이다. 필자는 한번 찾았던 단어는 형광펜으로 표기하고 주요한 뜻은 빨간 펜으로 밑줄을 긋는 습관이 있었다. 그리고 책상 맨 왼쪽 상단에 사전을 놓았다. 책상이 작아서 사전은 수도 없이 바닥에 떨어졌다. 충격이 심하면 사전 표지가 찢겨 갈라졌다. 그럴 때마다 스카치테이프로 손보았다. 이러니 사전은 금세 걸레가 될 지경이었다.

고2 때였다. 국어 선생님께서 그리 어렵지 않은 질문을 하였는데 대답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평소에 귀여움(?)을 받았던 터라 꾸중을 듣지는 않았다만 책상 위에 있던 사전으로 내 머리를 살짝 치셨다. 그런데 사전이 너무 오래되어서인지 먼지가 한 움큼 나왔다. 더군다나 창문 밖 햇살에 산란하여 그 먼지는 아주 뿌옇고 윤이 났다. 그때 선생님께서 심각한 표정으로 “머리 좀 감고 다녀라”며 타박하셨다. 농담이 아니었다. 심각한 표정이었다.

난 충격이 컸다. 머리는 아침, 저녁으로 감는 습관이 있었는데 지저분하다는 얘기를 듣게 되니 자존심이 상했다. 내 얼굴이 붉어지고 곧 울음이 터질 것만 같았다. 그래도 꾹 참았다. 선생님께서도 분위기를 직감하였던지 바싹 틀듯 급하게 수습하셨다.

그때 필자는 그 먼지가 사전에서 나왔다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지금 생각해보니 먼지가 아닌 인설, 즉 비듬이었던 거 같다.

그렇다면 비듬이 무엇일까? 쉽게 말하자면 각질이다. 우리 피부를 감싸고 있는 겉 피부나 손발톱의 구성 성분인데 자연적으로 벗겨져 나가는 마른 상태의 각질이다. 주로 두피에서 호발하고 청소년기에 양이 늘어난다.

비듬은 지저분해서 생긴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누구든지 사춘기 이후 호르몬에 의해 생길 수 있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머리를 청결히 하지 않아서 생기는 것도 아니고 특정한 질병이라고도 할 수 없다. 단지 성장 과정에서 자연적으로 생기는 각질의 과한 상태이다. 그 근본적 원인은 사춘기 이후 남성 호르몬이라고 할 수 있다. 얼굴에 생기는 여드름처럼 말이다.

그러나 근래의 연구에 따르면 일종의 진균에 의해서 각질 분비가 증폭되는 것으로 밝혀졌다. 그러니까 사춘기 이후 비듬 생성 자체는 피할 수 없으나 진균에 의해 더 심해질 수 있다는 설명이다. 각질이 정상적인 상태에서도 진균에 감염된다면 염증이 일어나고 이에 대한 반사 작용으로 각질을 더 만들어 내어 비듬이 된다. 이외에 스트레스나 술, 약물 등이 비듬의 원인이 될 수 있다.

비듬의 주관적 증상은 흔하지 않다. 주로 가벼운 가려움증이 있을 수 있다. 그 밖의 특별한 증상은 잘 나타나지 않는다. 이보다는 미용상 문제가 더 크다. 머리를 털었을 때 인설이 날리니 기분이 좋을 리도 없다.

비듬에 특화된 치료법은 없다. 그러나 비듬이 진균 자체가 원인이 되거나 진균으로 악화됐을 때 항진균제로 치료할 수 있다. 현재 시판되는 약물 중 가장 대표적인 항진균제가 니조랄, 나졸액이다. 이 약물은 진균을 죽이는 약으로 진균에 직접적으로 작용한다. 하지만 호르몬으로 인해 자연적으로 생기는 비듬에는 효과가 없다. 이럴 때는 비타민C, D가 비듬에 도움이 되니 평소에 비타민C, D를 복용하도록 하자. 만일 가려움증이 심하거나 염증이 있다면 반드시 병원에 방문하여 전문의의 진료를 받는 것이 좋겠다.

끝으로 비듬에 관해 필자의 개인적 의견을 덧붙이자면 비듬은 성장 과정에서 특정한 시기에 생기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라는 것이다. 그 때문에 대부분 자연적으로 해소되는 경우가 많다. 특별히 가렵지 않고 염증이 심하지 않다면 기다려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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