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네일아트 ‘엣지있게’ 박성신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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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네일아트 ‘엣지있게’ 박성신 대표
  • 최미향 기자
  • 승인 2020.05.24 23:2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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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3시간 쪽잠을 자면서도 꿈으로 가는 길은 멈출 수 없었다

“나의 미래는 오늘이 결정짓기 때문에 나는 오늘도 내 길을 묵묵히 갈 뿐”
네일아트 ‘엣지있게’ 박성신 대표
네일아트 ‘엣지있게’ 박성신 대표

글을 열며

아스팔트 도로를 빠른 속도로 달리다 어느 순간 다시 울퉁불퉁한 비포장 길로 들어서면 힘들지만 아주 재밌는 세상을 경험하게 된다. 누군가는 인생을 달리고 있는 끝없는 트랙이라고 말했지만 스물여덟 박성신 대표의 인생은 포장되지 않은 도로를 주행하기 위해 만들어진 오프로드 바이크란 생각이 든다.

반복되는 일상이 재미없다면 도로 밖 세상을 꿈꾸는 서산시 동문동 엣지있게입주 사장 네일아트 박성신 대표를 만나보라. 당신의 꿈과 일상이 또 다른 변화를 만날 것이다.

4명의 자매와 엄마(가운데 엄마)
4명의 자매와 엄마(가운데 엄마)

아빠가 돌아가시고 나는 중학교 2학년때부터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다섯 자매 모두 손재주가 남다른 집안에서 넷째로 태어난 꿈과 열정의 아이콘 박성신 대표. 익산이 고향인 그녀는 엄마가 아들 낳으려고 5자매를 본 건 절대 아니라고 말씀하셨다는데 이건 정말 믿거나 말거나다라며 아주 재미있다는 듯 환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녀의 부친은 그녀가 중학교 2학년 때 갑자기 돌아가셨다. 그전까지는 평범한 학창시절을 보냈다는 박 대표는 약간은 편찮으셨지만 그래도 돌아가실 만큼 아프지는 않으셨다. 그래서 아빠의 죽음은 더 막막했다.

처음엔 아빠가 없는 시간을 견뎌야 하는 것이 가장 큰 고통이었지만, 슬픔에 빠져 있기에는 혼자 남아 우리 5남매를 책임져야 할 엄마가 너무 가여웠다. 우리 자매들은 갑자기 다들 어른이 된 것처럼 엄마의 어깨 위 짐을 덜어드리고자 노력했다.

일찍 취업을 했다. 아마도 은연중에 살길을 찾아야겠단 생각을 했는지도 모르겠다고 그녀는 담담하게 말을 했다.

어느날, 당시 제일 큰언니가 미용실을 하고 있었다. 내게 용돈도 벌 겸 나와서 일해볼래?’라고 했고, 내 나이 15살 중학교 2학년 때부터 나는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못생긴 손톱도 명품이 될 수 있다는 사실
못생긴 손톱도 명품이 될 수 있다는 사실

못생긴 엄지손톱이 아름답게 변하는 순간 ! 내가 가야할 길은 이거구나싶었다.

학교가 파한 후 그녀가 간 곳은 언니네 미용실이었다. 처음 시작할 때는 물고기가 물을 만난 듯 너무 재미있었다고 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큰언니가 자신에게 너무 큰 기대를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부담이 되기도 했다고 고백했다.

언니는 나를 미용인 박성신으로, 나는 여전히 언니의 철없는 동생이 용돈벌이 한다는 생각으로 일을 했다.”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헤어를 배우게 된 그녀는 재미로 시작했던 헤어디자이너의 생활이 서서히 일이 몸에 익어가면서 어느 순간부터 너무 힘들게 느껴졌다고 했다.

그러던 차 하루는 헤어를 하다가 잠시 틈나는 시간에 차를 마시며 무심코 자신의 엄지손가락을 보게 된 그녀. 그때 보았던 볼품없는 자신의 손톱이 새삼 발견되어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

평소 그냥 보아넘긴 작은 엄지손톱, 그것이 큰 콤플렉스가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이것이 계기가 되어 그날 저녁부터 손톱을 꾸미기 시작했다. 늘 감추기만 했던 엄지손톱, 하지만 네일아트를 하면서 어느 순간 아주 아름다운 손톱으로 변신하는 걸 보면서 ! 내가 할 것은 이거구나란 걸 느꼈다.

그 놀라운 변신이 내게는 그렇게 매력적일 수가 없었다. 그때부터 네일아트를 하기 위해 공부를 시작했다.”

네일아트를 하고 있는 박성신 대표
네일아트를 하고 있는 박성신 대표

힘든 여정이었지만 그래도 꿈이 있었기에 즐겁고 행복했다

공부를 하다 보니 욕심이 생기더라는 박 대표는 네일아트 강사과정까지 배우는 데는 당시 천만 원 정도의 어마어마한 돈이 들었다고 했다. 누군가를 가르쳐야 하는 강사는 모든 아트는 전부 습득해야 했고, 대회 참석 및 소모품인 재료비도 만만치않게 들었다. 그때부터 돈을 벌기 위해 밤낮을 구분하지 않고 살았던 박성신 대표.

신은 우리가 견딜 수 있을 정도의 고통만 허락하시더라는 말을 하는 그녀는 힘들 때마다 네일아트의 꿈을 떠올리면 잠자던 힘이 불쑥불쑥 솟았다고 당시의 심경을 회상했다.

한번씩 나의 10년 뒤 모습은 어떻게 되어 있을까?’라는 스스로의 질문은 자신을 버틸 수 있게 하는 힘이 되기도 했다.”

그녀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네일아트 국가자격증 및 강사 자격증을 따기 위해 그동안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넣었던 적금을 해약했다. 그래도 모자라는 돈은 아침 8시부터 늦게는 새벽 4시까지 거의 매일 일을 해야 했다.

21살 앳된 나이에 이른 시각인 아침 8시부터 화장품 방문판매를 시작했다. 그리고 일이 끝나면 바로 미용실로 출근을 해서 밤 9시까지 자그마치 12시간을 일했고, 다시 미용실 업무가 끝나면 밤 10시부터 대학로 호프집에서 늦게는 새벽 4시까지 아르바이트를 했다. 새벽 늦게까지 하는 일은 수당이 많이 붙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뭔가를 시작했으면 끝을 봐야지라는 큰언니의 말은 자신에게 자극이었다고 했다. 큰언니는 엄마 대신 자신에게 또 다른 엄마였다며 스스로 자립할 수 있도록 격려를 해준 언니가 너무 감사하다고 말했다.

지금 생각하면 정말 힘든 여정이었지만 그래도 그때는 꿈이 있었기에 즐겁고 행복했다고 말하는 아름답고 당찬 그녀 박성신 대표.

네일아트를 받은 손님이 행복해하는 모습을 볼때 행복을 느낀다는 박 대표
네일아트를 받은 손님이 좋아하는 모습을 볼때 행복을 느낀다는 박 대표

강사 생활 2년 동안 넘을 수 없는 벽 나이를 만나, 결국 자신의 샵을 운영하게 됐다

네일아트 학원은 주 1회 수업이 있었다. 그 한번도 미용실을 쉬는 날을 잡아 온종일 그곳에서 원장님을 귀찮게 했다. 심지어 하나를 배우면 다른 것도 가르쳐달라고 떼를 쓰기도 하고. 귀찮게만 했던 제자가 뭣이 이쁜지 그럼에도 마다하지 않고 성심껏 가르쳐 주신 선생님이다.

박성신 대표는 너무 재미있었다. 아마도 그것은 꿈이 있었기 때문에, 하면 할수록 내 꿈이 가까이 다가오니까 그런 것들이 엄청 기분 좋았다. 선생님 덕분에 최단기간에 합격했다며 그날이 연상되는 듯 볼이 복숭앗빛이 돌 정도로 들떠 있었다.

드디어 22살 박성신 대표는 어느 가을쯤에 언니 미용실에서 당당히 걸어 나와 네일아트 시간강사부터 전임강사로 발돋움하게 됐다.

강사 생활 2, 그녀는 그때의 심정을 넘사벽이라고 표현했다. 그녀에게 넘을 수 없는 벽은 나이였다.

강사를 하기에는 내가 너무 어렸다. 당시 네일아트를 배우는 수강생들은 주로 서른 초반 연령대. 그들은 자신들보다 10살 이상 어린 나를 무시하는 경향이 있었다. 그때는 사람을 다루는 노련함이 부족했고 그러다보니 그걸 치고 나갈 자신이 없었다.

기술적인 면뿐만 아니라 수상경력 등을 다 갖춰도 수강생이 나이가 많으면 경력이 많아 보였던 당시의 모습. 결국 나는 좀 더 나이 먹고 해야겠다고 생각하며 그 자리를 물러났다.”

2년 만에 강사 자리를 내려놓고 네일아트 가게 &을 오픈했다. 적성에 너무 잘 맞았다는 박성신 대표는 그때 알았단다. 오히려 교육직보다 기술을 요구하는 서비스 직종이 적성에 맞았다는 것을.

아마도 중2때부터 헤어를 하면서 손님들에게 대하는 노하우가 스스로 몸에 베 나왔던 것 같다.

엣지있게 네일아트 샵 내부모습
'엣지있게' 네일아트 샵 내부모습

홀로서기를 시도하며 더 깊은 아트의 세계를 경험하다

큰언니랑 13살 나이 차가 나는 박성신 대표는 엄마의 울타리도 일찍 벗어났는데 큰언니의 울타리를 벗어나는 게 너무 힘들었다. 큰언니의 기대치는 너무 높았다. 언니가 운영하는 미용실 앞에 네일아트 샵을 내다보니 나는 100%를 노력하고 있는데도 언니 눈에는 30%밖에 일을 안 하고 있다고 느끼는 것 같았다.

결국 나는 또다른 엄마의 그늘에서 벗어나 다시 홀로서기를 시작하게 됐다. 다른 한편으론 혼자 샵을 몇 년간 운영하다 보니 기술적인 면에서도 약간의 정체기가 없잖아 있었다. 세미나에도 참석하고 기술도 좀 더 연마하고 싶은 마음이 절실했다.”

박성신 대표는 짐을 챙겨 훌쩍 날아와 서산시 동문동 손톱달의 직원이 됐다. 그곳에 근무하면서 기술적인 면 뿐만 아니라 세미나도 다니면서 더 깊은 아트의 세계를 경험할 수 있었다.

네일아트는 삶이라는 그녀 박성신 대표
네일아트는 삶이라는 그녀 박성신 대표

문제성 있는 손·발톱에 대해 상당히 관심이 많다. 앞으로 지속적으로 공부할 예정

지난해부터 부쩍 경기가 좋지 않아 원장님과 함께 일하는 것이 너무 미안해서 나오게 됐다는 그녀는 지금의 서산시 잠곡470(동문동 1-47)엣지있게네일아트 가게에 입점하게 됐다.

이제는 벌써 2년 차에 들어 서다 보니 어느 정도 자리도 잡았다는 박 대표는 그래서 그런지 지금은 조금 느슨해진 나를 발견한다그럴 때마다 큰언니였다면 이럴 때 내게 어떻게 말해줄까를 생각해 본다며 정신적 지주인 큰언니의 존재가 감사하다고 말을 아꼈다.

그녀는 요즘 손·발톱을 교정해주는 게 너무 재밌단다. “성인 중에서도 의외로 손톱을 물어뜯는 분들이 많다. 원인을 찾아 케어를 해주면 좋아지는 게 눈에 보인다. 지금부터는 날이 더워지면서 발톱 무좀으로 고민하는 분들이 찾아오는데 이 또한 즐겁게 챙겨주는 부분이다.”

문제성 있는 손·발톱에 대해 상당히 관심이 많다. 앞으로 지속적으로 공부할 일만 남았다. 아주 재밌다엣지있게네일아트 샵 대표 박성신 씨.

‘2020 서산시 우수영업점 인증서’
‘2020 서산시 우수영업점 인증서’

글을 마치며

스물여덟 해를 산 박성신 대표는 서산은 내게 새로운 삶을 열어준 탈출구다. 사랑하는 사람들이 많고 참 좋으신 고객들이 많아서, 그래서 나는 서산이 참 좋다고 말했다.

기자는 그녀의 차분한 목소리가 참 이쁘다고 생각했다. 동문동 코아루아파트 뒷 골목에 위치한 엣지있게토탈뷰티샵은 올해 충남 서산시 우수영업점 인증서를 받을 정도로 매니아들 사이에서는 인기가 높다.

미래는 현재 무엇을 생각하고, 무엇을 하고 있느냐에 따라 크게 달라진다. 나의 미래는 미래가 결정짓는 것이 아니라 바로 나의 오늘이 결정짓기 때문이다. 나는 오늘도 내가 결정한 길을 묵묵히 걸어갈 뿐이라고 말하는 박성신 대표.

서산시대는 그녀가 가는 길이 늘 꽃길이 되기를 기도하며 그녀의 앞날에 응원의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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