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은경의 재미있는 이슈메이커-⑧

출처 네이버
출처 네이버 영화 '오만과 편견' 중

 

“역시!” 긴장감 도는 회의석상. 그가 브리핑을 마치자 누군가의 입에서 터져 나온 탄성이다. 어태(語態)는 명료하고, 눈빛은 흐트러짐이 없다. 깔끔하게 떨어지는 문장의 끝자락에도 힘이 있다. 사람들의 눈길에서 신뢰와 따스함이 느껴진다. 그로 인해 딱딱했던 회의 분위기는 부드러워졌다. 그는 자신이 맡은 모든 일에 자신감이 있었다. 무엇을 맡기든 그는 빈틈없이 정확하다. 그런 그가 선배임이 더할 나위 없이 자랑스럽다.

하필이면 그의 다음 순서는 아픈 손가락 같은 후배다. 그는 회의 시작 전부터 초조하다. 예상대로 그의 혀는 꼬이고 동분서주하는 그가 애처롭다. 못미더운 듯 사람들은 그에게 질문을 쏟아낸다. 답변이 변변찮다. 똑바로 응시하지 못하는 그의 눈이 오갈 데를 잃었다. 사람들의 시선이 차가워진다. 부드러워졌던 회의 분위기는 다시 냉골이다. 온탕과 냉탕을 오고가는 분위기 속에서 차마 그를 바라볼 수 없다. 그의 브리핑이 끝나자 사람들은 생각한다. ‘역시나..’

두 사람을 평가하는 단어는 ‘역시’였다. 같은 단어에서 사뭇 다른 의미를 내포하는 잔인한 잣대이다.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는 말이 사실인 것인가. 부정하려 애를 써본다. 구태여 선배에게서 허점을 찾아본다. 그도 사람이기에 가끔은 실수를 한다. 그의 실수는 ‘그럴 수도 있지’로 허용된다. 필사의 심정으로 후배의 장점을 찾아본다. 누구나 본받을 점은 있고, 한 가지 장점쯤은 갖고 있을 터.

찬찬히 그를 살펴본다. 숨은그림찾기처럼 그의 장점이 드러난다. 낙천적이고 회복력이 강하다. 나였으면 회의가 끝나고 수치심에 자멸하고 말았을 텐데 그는 괜찮다. 아니, 괜찮아 보인다. 그는 허드렛일을 마다하지 않는다. 다들 하는 척 하다가 슬며시 사라질 때도 끝까지 남아있는 건 그였다. 눈에 잘 띄지는 않는다. 그런 그는 안타깝게도 실수가 잦다. 실수는 눈에 잘 띄고, 그의 실수는 ‘항상 그런 식이지’로 치부된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사람들은 누군가에게 그저 관대할 수만은 없다. 정글 같은 직장은 더 이상 학교도 아니고, 가족도 아니다. 바쁜 현대사회에서 시간과 비용 문제로 사람들은 빠르게 판단하고 결정해야한다. 그래서 첫 이미지가 중요한 것이고, 사람들은 그 이미지를 쉽게 버리지 못한다.

이처럼 한쪽으로 치우친 생각을 뜻하는 ‘편견’은 근거 없는 판단이나 느낌을 포함한다. 편견은 흔히 고정관념, 차별 등의 용어와 혼용해서 쓰인다. 이러한 용어들은 그릇되게 고착된 신념화 과정으로 부정적인 상황이 주를 이룬다.

미국의 심리학자 고든 올포트(Gordon Willard Allport)는 어떤 대상에 대한 일반화된 신념은 결국 태도로 나타난다고 하였다. 즉, 신념과 태도를 동화시키는 ‘합리화(Rationalization)’과정을 거치는 것이다.

예컨대, 어떤 대상에 대해 부정적 이미지를 형성하면 그에게 나쁜 특성이 있다고 믿으며, 그에 대한 적대적 태도를 합리화시킨다. 올포트는 편견을 표현하는 방법이 단계적으로 드러난다고 하였다. 적대적인 말이나 물리적 공격뿐만 아니라 회피나 차별과 같은 심리적 표현도 나타날 수 있다. 최종적으로 부정적 편견은 제거 단계에 도달하며 그 대상을 근절하거나 해고하는 상황에 이르게 된다.

어느 유명 예능 프로그램에서 강호동의 하루살이 비유가 생각난다. 눈 내리는 어느 날 태어난 하루살이가 하루를 살고 신에게 이르기를, “신이시여, 지구는 온종일 눈만 내립니다”라고. 그가 본 세상은 눈이 전부였으니 그를 탓할 수 없다. 그저 꽃피는 봄을 보지 못하고, 낙엽 지는 가을을 알지 못하는 것이 안타까울 뿐.

다시 한 번 후배인 그를 세심히 살펴본다. 내가 보지 못한 다른 면이 분명 더 있으리라. 그럼에도 그는 편견으로 가득 찬 이들을 상대하기 쉽지 않을 것이다. 그저 단 몇 초 만에 판가름 나는 세상에서 쉽게 평가되지 않기를 바래본다.

참고문헌 1. 이희용. (2019). 편견에 대한 해석학적 성찰. 현대유럽철학연구, (52), 161-195.

2. Allport, G. W., Clark, K., & Pettigrew, T. (1954). The nature of prejudice.

유은경 사회과학 박사과정 중
유은경 사회과학 박사과정 중

 

저작권자 © 서산시대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