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학칼럼-국내 최고 뇌의학자가 전하는 ‘생문학적 인간’에 대한 통찰

 

짐승을 사냥하던 우리 조상 중에는 배가 나온 사람이 없었습니다. 사냥만으로는 먹을 것을 충분히 얻을 수 없었기 때문이었죠. 비만은 농사를 지어 먹을 것이 풍족해지면서부터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농사가 사냥보다 편한 것도 비만이 되는 데 일조했을 것입니다. 운동량이 적은 현대인이 폭식하는 것을 보면 비만이 되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입니다.

쫓기는 사슴과 추격하는 치타의 몸에서는 비만의 징후를 찾아볼 수 없습니다. 먹이를 얻기 위해 끊임없이 움직이고, 포식자에게 쫓길 때는 죽어라 도망가야 하니 살이 찔 틈이 어디 있겠습니까? 치타의 사냥 성공률이 5분의 1 이하니 고기 한 점을 얻기 위해 엄청난 운동을 하는 셈입니다. 사슴이나 치타 모두, 사냥을 했던 우리의 조상과 같이 비만은 언감생심焉敢生心일 것입니다.

지구상에서 비만을 걱정하는 동물은 사람과 사람이 기르는 반려동물뿐이라는 것은 의미하는 바가 큽니다. 어느 동물이 우리처럼 잠에서 깨자마자 냉장고에 있는 음식을 마음껏 먹을 수 있겠습니까? 육식동물의 본능을 버리고 배가 늘어진 상태로 어슬렁거리며 돌아다니는 개나 고양이를 보면, 인간이 저지른 또 다른 자연 파괴를 보는 듯해서 마음이 아픕니다.

많이 먹는 사람에게 돼지같이 먹는다라고 말하는 것은 잘못된 표현입니다. 외모와는 다르게 돼지는 절대로 필요 이상 먹지 않습니다. 혹시 돌연변이로 폭식하는 돼지가 태어나 게걸스럽게 먹으면, 그 돼지에게 너 사람처럼 먹는구나!” 하면 맞는 이야기일 수 있습니다.

인간이 폭식하는 것을 보면 제대로 진화한 것인지 의심스럽기까지 합니다. 물을 혀로 먹는 짐승과는 달리 필요 이상으로 벌컥벌컥 마시는 인간을 보면 더욱 그렇습니다.

곰은 겨울잠에 들어가기 전에 몸무게를 30~40퍼센트 늘립니다. 먹이가 풍성한 가을에 잔뜩 먹어 지방을 저장한 뒤, 에너지가 적게 드는 수면 상태로 열악한 겨울을 나려는 것입니다. 가을철을 이르는 천고마비(하늘이 높고 말이 살쩐다)라는 사자성어에서 말이 살찐다는 것도 열악한 겨울을 견디기 위해 풍요로운 가을에 많이 먹어 두는 동물의 습성을 말하는 것입니다.

만약 인간이 곰처럼 단시간 내에 몸무게를 늘린다면 건강에 심각한 문제가 발생할 것입니다. 그러나 곰은 급격한 체중 증가에도 불구하고 심혈관계를 포함한 관련 장기에 전혀 이상소견을 보이지 않으며, 겨울잠에서 깨어나면 원래의 몸무게로 돌아와 건강한 생활을 합니다. 이 이유를 밝히기 위해, 비만에 관심이 있는 많은 과학자들이 동물의 겨울잠에 대해 면밀히 연구하고 있습니다.

지방세포는 염증성과 항염증성 효과를 보이는 아디포가인adipokines을 분비합니다. 염증성 물질에는 렙턴leptin, 리지스틴resistin, 암괴사인자TNF-a 등이 있으며, 항염증성 물질에는 아디포넥턴adiponectin 등이 있습니다. 비만 상태가 되면 염증성 물질의 분비가 느는 반면 염증 대항군이라 할 수 있는 항염증성 물질의 분비가 줄어 몸 전체가 염증 반응을 보이는 대사성 염증metabolic inflammation 상태가 됩니다.

특히 복부비만의 원인인 내장지방은 대사성 염증의 원흉으로 지목되고 있습니다. 내장지방이 많아지면 염증 성향의 M1 대식세포MI macrophage가 많아져서 대사성 염증을 악화시키게 됩니다.

여기서 재미있는 사실이 있습니다. 대사성 염증은 세균에 의한 염증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비만이 되면 백혈구를 포함한 면역계가 지방세포를 세균으로 착각해 반응합니다. 이것이 대사성 염증입니다. 우리가 흔히 성인병이라고 말하는 동맥경화, 당뇨병, 고혈압, 치매 등은 대사성 염증과 깊은 관련이 있습니다.

최근 연구보고에 따르면 유방암, 대장암도 대사성 염증과 관련이 깊은 것로 밝혀졌습니다. 비만에 의한 대사성 염증이 만병의 근원이라는 것을 잊지 않기 바랍니다.

잘 아시다시피 운동은 비만을 잡을 수 있는 묘책입니다. 운동을 하면 부신피질에서는 글루코코르티코이드의 하나인 코르티솔cortisol, 부신수질에서는 카테콜아민catecholamine 이라는 물질이 분비됩니다. 코르티솔은 면역을 억제시키는 물질입니다. 여기서 잠깐, 면역을 억제시키는데 왜 우리 몸에 도움이 될까요. 이는 앞서 설명한 대사성 염증의 특성과 관계가 있습니다. 대사성 염증은 세균에 의한 염증이 아니라 우리 몸이 지방세포를 세균으로 착각해서 벌어지는 일이라고 설명드렸습니다. 따라서 코르티솔이 비만 상태의 지방세포를 세균으로 오판하고 있는 면역계를 진정시켜 비만에 대한 염증이 완화될수 있는 겁니다.

투구를 마친 뒤 얼음찜질을 하는 투수의 모습을 보신적이 있으시죠. 이 역시 대사성 염증과 관계가 있습니다. 무리한 투구를 진행한 투수의 어깨에는 대사성 염증이 발생했을 수 있습니다. 이때 얼음찜질을 통해 면역을 억제시켜 근육의 염증 반응을 줄이려는 것입니다. 코르티솔이나 카테콜아민도 항면역작용을 갖기 때문에 비슷한 작용을 합니다.

운동이 성인병 예방이나 치료에 좋은 이유가 바로 이 때문입니다. 운동은 유방암의 원인인 성호르몬의 분비도 감소시키며, 변비를 완화시켜 대장암의 원인을 줄이기도 합니다. 비만 방지 외에도 운동이 건강에 여러 형태의 긍정적 영향을 준다는 것을 알수 있습니다.

그러나 과도한 운동은 면역을 너무 억제시켜 건강을 해치기도 합니다. 전문 운동선수들이 상기도염과 같은 호흡기질환을 달고 사는 것이나 마라톤과 같은 극한 운동을 하는 선수의 수명이 길지 않다는 사실이 의미하는 바는 큽니다.

세상 일이 다 그렇듯이 모자라거나 지나치지 않도록 중용을 지키는 것이 중요함을 새삼 알 수 있습니다.

나흥식 교수
나흥식 교수

 

저작권자 © 서산시대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