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최고 뇌의학자가 전하는 ‘생문학적 인간’에 대한 통찰

나흥식 고려대학교 의과대학 교수
나흥식 고려대학교 의과대학 교수

톡소포자충Toxoplasma gondi이라는 기생충에 감염된 쥐는 고양이를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이 신기한 현상은 톡소포자충이 기획한 일입니다. 톡소포자충의 목적은 중간 숙주인 쥐를 거쳐, 최종 숙주인 고양이 내장에 들어가 알을 낳고 일생을 마치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 톡소포자충이 쥐의 편도를 억제해, 쥐가 고양이를 두려워하지 않게 만든 것이죠.

공포를 담당하는 편도를 심하게 억제한 경우에는, 쥐가 고양이를 자기의 짝짓기 상대로 오판한다니 신기할 따름입니다. 고양이가 자기를 두려워하지 않는 쥐를 잡아먹는 것은 식은 죽 먹기일 것입니다. 톡소포자충이 자손을 퍼뜨리기 위해 기획하고, 그에 따라 쥐와 고양이가 충직한 꼭두각시 역할을 하는 한 편의 드라마를 보는 듯합니다.

레우코클로리디움 바리에 Leucochloricium variae라는 기생충은 멀쩡한 달팽이를 좀비 달팽이로 만들어버립니다. 달팽이에 침투한 기생충이 달팽이 더듬이에 들어가 새가 좋아하는 벌레처럼 흉내를 낼 뿐 아니라, 달팽이를 나무위로 올라가게 해 새의 눈에 잘 띄게 만듭니다. 원래 달팽이는 남에게 잘 들키지 않기 위해 낮에는 축축하고 으슥한 곳에 숨어 있다가 밤에만 이동한다는 것을 감안하면 엄청난 변화가 아닐 수 없습니다.

이 기생충은 중간숙주인 달팽이를 거쳐 새의 내장에 들어가 알을 낳는 것이 삶의 목표입니다. 달팽이의 더듬이에 있는 기생충을 벌레로 착각하고 먹은 새는 똥으로 기생충 알을 내보내고, 건강한 달팽이는 그 똥을 먹고 기생충에 감염되는 것이 반복되죠. 독소포자충과 유사한 방법으로, 이 기생충도 자손을 퍼뜨리기 위해 달팽이와 새를 충직한 노예로 만든 것입니다.

감기는 바이러스성 공기전염질환입니다. 춥고 건조하면 감기 바이러스의 증식이 쉬워져 감기에 걸리기 쉽습니다. 감기가 심해지면서 엄청나게 증가한 바이러스는 한 명의 숙주(환자)에 만족하지 못합니다. 이에 감기 바이러스는 코와 목 부분을 포함한 상기도에 염증을 일으켜 기침이나 재채기 같은 호흡기 증상을 유발합니다. 기침이나 재채기에 의해 밖으로 튀어 나간 감기 바이러스는 바로 옆에 있는 건강한 사람에게 전달되어 또 다른 감기 환자를 만듭니다. 감기가 공기로 전염되는 과정이죠.

이러한 전염 과정에 등장하는 2명의 사람과 감기 바이러스 중 누가 이득을 봤다고 생각하나요? 환자는 바이러스를 자신의 몸에서 일부 내보냈으니 이득입니다. 바이러스도 숙주를 둘로 늘렸으니 이득입니다. 반면 환자 옆에 있던 건강한 사람은 단단히 손해를 봤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억울하게만 생각하지 마십시오. 곧 기침을 통해 옆에 있는 사람에게 자신의 몸속 바이러스를 전달할 것이니까요. 물론 이 모든 기획은 감기 환자와 그 옆의 건강한 사람 모두를 노리개로 삼으면서 감기 바이러스가 꾸며낸 일입니다.

식중독은 수인성 질환입니다. 소독이 제대로 되지 않은 음식을 먹으면 식중독에 걸릴 수 있습니다. 병이 진행되면서 증가한 식중독균은 기침이 아닌 설사나 구토를 통해 다른 사람에게 전해집니다. 수인성 질환이기 때문이죠. 전염되는 경로는 다르지만 감기 바이러스와 식중독균의 기획은 일맥상통합니다.

공수병은 이름 그대로 물을 무서워하는 병입니다. 좀 생소한 병명이라 생각하실지도 모르겠습니다만 공수병의 다른 이름은 광견병입니다. 이 병은 감염된 가축이나 야생동물이 미친개처럼 돌아다니다 사람을 물 경우 타액에 있는 바이러스가 상처를 통해 사람에게 침투함으로써 유발됩니다. 공수병에 감염된 동물은 침을 흘리고 다니거나, 물을 무서워하며 물 먹는 것을 꺼립니다. 이 모든 행동이 입 속 공수병 바이러스 농도를 높게 유지해 공수병이 잘 전염되게 하려는 공수병 바이러스의 기막힌 속셈이라면 믿으시겠습니까?

역사는 피의 욕조다.” 미국의 철학자이자 심리학자인 윌리엄 제임스가 전쟁에 반대하면서 한 말입니다. 역사를 통해 본 인간은 자기의 종교나 이데올로기를 따르지 않으면 상대를 멸시하거나 처단하는 경우가 빈번했습니다. 이 어리석은 광기에 희생된 사람은 역사적으로 엄청나게 많았죠. 30년전쟁(1618~1648)은 로마 가톨릭교회를 지지하는 국가와 개신교를 지지하는 국가 사이에서 벌어진 종교전쟁이었습니다. 인류 역사상 가장 잔인한 전쟁 중 하나였으며 사망자 수가 무려 800만 명에 이르렀습니다.

이 전쟁 역시 여느 많은 전쟁들과 같이 작은 문제에서 시작됐습니다. 새로 선출된 신성 로마제국 황제 페르디난트 2세는 국민들에게 로마 가톨릭을 강요했습니다. 이에 북부 프로테스탄트 국가들이 개신교 제후동맹을 결성해 반대한 것이 전쟁의 발단이었습니다. 참전국들의 국민이 무참히 죽어나가고 국가재정이 파탄 위기에 몰려 유럽을 공포에 빠뜨린 것을 생각해보면, 신앙의 기본적인 취지와는 어울리지 않는 판단이자 행동이었습니다.

더욱 안타까운 사실은 400년 전 30년전쟁이 발발했을 때와 현재가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입니다. 종교 갈등은 여전히 세계 곳곳에서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습니다. 더구나 세계 곳곳의 어른들이 자신들의 아이가 이런 망상에 빠지도록 종용하기도 합니다. 종교적인 신념으로 무장한 소년병이 소총을 들고 두려움 없이 거대한 적에게 맞서는 장면은 이데올로기 뇌벌레에 감염된 인간을 단적으로 보여줍니다.

저는 그 소년병이 톡소포자충에 감염돼 고양이를 우습게 보는 쥐나 속절없이 나무 위로 오르는 달팽이와 크게 달라 보이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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