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최고 뇌의학자가 전하는 생물학적 인간에 대한 통찰-

 

우리 몸이 갖고 있는 모순적 특징에 대해서 이야기해볼까 합니다. 복합부위 통증증후군CRPS, Complex Regional Pain Syndrome이란 병이 있습니다. 부분적인 신경손상에 의해 통증이 나타나는데 살짝 건드리기만 해도 기절할 정도로 아픕니다. 환자에 따라서는 통증이 20~30년간 지속되어 환자가 의사에게 아픈 부위를 잘라달라고 하거나 자살을 시도하기도 합니다.

루프스lupus’의 한 증상으로 복합부위 통증증후군을 앓다가 자살한 행복전도사 고 최윤희 박사는 유서에 “700가지 통증에 시달려본 분이라면 저의 마음을 조금은 이해해주시리라 생각합니다라고 그의 고통을 남겼습니다. 처절하기 그지없는 그의 글을 읽다 보면 그저 적당한 수준의 통증을 느끼며 살고 있는 현실이 얼마나 고마운지 모릅니다. 인간에게 통증은 그만큼 괴로운 일입니다. 가시에 찔리는 것은 아프고 괴로운 일이죠. 세게 부딪히거나, 뜨거운 것에 화상을 입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모두가 통증을 유발하는 일들입니다.

그러나 아프면 반사적으로 피할 수 있고, 그 상황을 기억해뒀다가 대처할 수 있으므로 아프다는 기억은 효과적인 방어전략이기도 합니다. 아픔을 기억하지 못하거나 느끼지 못할 경우에 생길 수 있는 문제는 생각보다 심각합니다. 선천적 통각신경 결핍이란 병이 있습니다. 아픈 것을 느끼지 못하는 병이죠. 이 병에 걸린 사람은 온몸이 상처투성이며 여러 가지 사고로 인해 치명상을 당할 수 있습니다. 다른 한편으로 통각은 우리 몸의 파수꾼 역할을 하는 셈이죠.

 

스트레스가 몸에 해롭다는 것은 삼척동자도 압니다. 스트레스가 지속되면 면역을 억제하는 부신피질의 코르티솔과 부신수질의 카테콜아민이 과하게 분비됩니다 그래서 두 호르몬을 스트레스호르몬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스트레스가 심하면 감기를 비롯한 여러 질병에 쉽게 걸리는 것도 바로 이 두 호르몬의 영향이 큽니다. 스트레스 상황에서 이 두 물질이 과하게 분비되면서 면역을 억제하고 방해했기 때문이죠. 심하게는 백혈구의 기본 기능 중 하나인 암세포에 대한 감시 기능이 약화되어 암에도 쉽게 걸릴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 몸은 스트레스가 없는 세상이 좋을까요? 월요일이 싫다고 매일 일요일로만 지낸다면 좋을 리가 없듯이 그렇지 않습니다. ‘메기 효과라고 들어보셨을 겁니다. 노르웨이의 한 어부가 정어리를 잡아 육지까지 운반하는 동안 정어리가 싱싱하게 살아 있도록 하기 위해 수조에 정어리의 천적인 메기를 함께 넣은 것에서 유래된 말입니다. 일부 학자의 반론이 있기는 하지만 적당한 스트레스가 집단을 건강하게 만들 듯 우리 몸도 일정양의 스트레스는 반드시 필요합니다.

대부분의 사람은 자외선을 공공의 적으로 생각합니다. 자외선은 기미, 주근깨, 광 알레르기의 원인이며 피부 노화를 일으키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일조량이 적은 북유럽에 사는 사람들은 해가 나면 웃옷을 벗고 일광욕을 즐깁니다. 자외선을 통해 비타민 D를 얻기 위함이죠. 비타민D는 칼슘 대사에 관여해 뼈나 근육의 건강에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뽀얀 피부를 위해 자외선 차단제를 남용하는 것은, 훗날 뼈 건강에 큰 해가 될 수도 있습니다. 일조량이 부족하면 우울증에 잘 걸린다는 것도 공공연한 사실이 되었습니다. 피부 노화의 원흉으로만 알았던 자외선이 비타민 D 생성과 우울증 예방은 물론 피부의 살균작용까지 맡고 있다니, 자외선은 우리 몸에 양날의 칼과 같은 존재인 셈입니다.

최근 들어 과학자들은 유해산소가 우리 생명을 노리는 가장 무서운 적이라고 말합니다. 비만과 유사하게 노화, , 치매 등 인간을 위협하는 모든 질환의 중심에 유해산소가 있습니다. 이대로라면 유해산소는 말 그대로 해롭기만 한 존재 같습니다. 그러나 소량의 유해산소는 강력한 멸균작용과 함께 세포의 대사작용에 없어서는 안 될 결정적인 역할을 합니다.

간질환 환자의 황달 현상에 대해서 들어보셨을 겁니다. 간에서 대사됐어야 할 빌리루빈 bilirubin(담즙 색소의 하나)이 제대로 처리되지 않은 채 혈관에 남아 피부가 누렇게 되는 것이죠. 황달은 생명을 위협하는 여러 가지 질환의 원인이기도 합니다. 다량의 빌리루빈은 간경화, 췌장염. 혈액응고 이상, 신부전, 패혈증 등 치명적인 질환을 일으키며 갓난아이의 뇌조직을 손상시켜 뇌 기능을 무너뜨리기도 합니다.

그러나 적당량의 빌리루빈은 유해산소를 없애는 등 우리 몸에 유리한 작용을 하기도 합니다. 분만 후 일주일 정도 유지되는 신생아 황달은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태아가 호흡을 시작하면 갑자기 흡입되는 산소에 의해 다량의 유해산소가 생성되는데, 이것을 신생아 황달을 일으키는 빌리루빈이 없애주기 때문입니다. 황달을 유발하거나 대소변의 색깔을 담당하는 노폐물로만 알았던 빌리루빈까지 적당량이 필요하다는 것은 신기하기까지 합니다.

중용(中庸)은 공자의 손자인 자사가 쓴 책으로 대학, 논어, 맹자와 함께 사서(四書)로 불립니다. ‘()’은 지나치거나 모자람이 없이 도리에 맞는 것을 뜻하며, ‘()’이란 평상적이고 불변적인 것을 뜻합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덕론(德論)도 지나치거나 모자라지 않는 올바른 중간에 기초해 정립된 개념입니다.

세상사가 다 그렇지만, 우리 몸의 어느 것도 서로 반대 방향을 보고 있는 야누스의 두 얼굴처럼 양극으로 치우치기보다는 모자라거나 넘치지 않아야 건강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약력>

나흥식 고려대학교 의과대학 교수
나흥식 고려대학교 의과대학 교수

1990년 모교인 고려대학교 의과대학 교수로 부임한 이래, 기초의학인 생리학 연구와 학생 교육에 매진하고 있다. 고려대학교 우수 강의상인 석탑강의상18회 수상, 2017중앙일보가 선정한, 전국 17개 대학 32명의 대학교수 강의왕중 한 명이다. 교육부가 주관하는 케이무크(KMOOC, 일반인 대상 온라인 공개강좌)에서도 최고의 강의 평가를 받으며 2017년 교육부총리 표창장을 수상하는 등 학생 교육뿐 아니라 과학의 대중화 작업에도 최선을 다하고 있다.

대한생리학회 이사장, 한국뇌신경과학회 회장, 한국뇌연구협회 회장 등을 역임했다.

신경병증성 통증 실험동물모델에 관한 연구가 독일 슈프링거Springer 출판사에서 발간한 통증백과사전Encyclopedia of Pain’에 실렸고, 그의 이름이 세계 3대 인명사전 마르키즈 후즈 후Marquis Who's Who’에 등재되는 등 연구에서도 뛰어난 업적을 남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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