農者칼럼

農者칼럼

 

팔봉면 박지연

 

 

올해 고구마 농사가 영 시원찮다. 땅이 좀 척박해야 알맞은 크기로 상품성이 있다고 했는데, 우리 밭 고구마는 김장 무우보다 크다. 고구마 좀 거저 캐어 가겠다던 후배 놈도 고구마가 크면 맛이 떨어진다며 고구마 줄기만 가져가겠단다. 고구마가 크니 삽질을 해야 정상적인 고구마를 캘 수 있기에 잔머리가 나를 뛰어 넘는다.

실상 게으른 농부의 잔머리로 조금은 편해 볼까 양배추 밭에 연작 피해를 막겠다는 핑계로 고구마를 심었다. 사실 고구마 농사만큼 힘이 덜 드는 것도 없다. 필자는 올해도 고구마 줄기() 열 단을 사서 널찍하게 심었다. 비오는 날에 맞혀 나무 막대기로 비스듬하게 찔러 고구마 순을 7센티미터 정도 찔러 넣고 흙을 꼭꼭 눌러줬다.

하지만 잡초와의 싸움은 농부에게는 천형과 같다. 여름 내 잡초와의 싸움에서 버티다 KO패를 당한 덕분에 잡초와의 싸움은 고구마 스스로의 몫이었다. 골마다 나무처럼 고구마 숲을 헤치고 자란 외래식물은 예초기로 줄기만 쳐 줬다. 그리고 여름이 갔다.

선선한 가을바람이 분다. 창문을 통해 보이는 고구마 밭은 잡초를 이겨 낸 승리자의 잔치가 열린 듯하다. 바람에 고구마 잎과 줄기가 파도를 탄다.

본시 고구마는 외래 작물이다. 1600년경 중국에서 재배하던 것이 일본 오끼나와 지역에 전해졌고 그 뒤 우리나라에는 조선 영조 때 이조판서를 지낸 조엄이란 분이 1763년 통신사로 일본에 갔을 때 대마도에서 재배법과 저장법을 배워 오면서부터 재배되기 시작했다.

고구마는 감저(甘藷) 또는 조저(趙藷-조엄의 성을 인용한 듯)라고도 하며 일본말 고귀위마(古貴爲麻)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원산지는 중앙아메리카(멕시코 지역)이며 메꽃과에 속하는 초본 식물로 꽃 모양도 메꽃과 비슷하다. 흔히 고구마 꽃이 피면 상서롭다고 하는데 실은 드물지 않게 자주 피우는 편이다. 필자도 매년 고구마 꽃 사진을 페이스북에 올리곤 한다.

고구마는 녹말이 많이 든 덩이뿌리로 감자(potato)와 비슷하지만 맛이 달다고 단 감자(sweet potato)’라고도 한다. 고구마를 캐 보면 사방에 굵은 원뿌리들이 깊고 멀리 뻗었고, 고구마 덩이에도 잔뿌리들이 나 있으니 고구마는 뿌리가 변한 것이다. 반면 감자(Solanum tuberosum)는 둥그런 감자에 하얗고 굵다란 줄기가 달려 있을 뿐 결코 덩이에는 잔뿌리가 없고 매끈하다. 감자는 줄기가 변한 것이기 때문이다. 하여 감자는 덩이줄기이고 고구마는 덩이뿌리라고 한다. 줄기와 뿌리의 차이라고 할까. 우리나라 여야 정치인들처럼 비슷한 것 같으면서도 전혀 다른 족속이라는 생각이 문득 스쳐 지나가니 헛웃음이 난다.

암튼 가을 햇살은 따뜻하고 살랑대는 바람은 금세 땀을 식힌다.

호미를 큰 원을 그리며 보슬보슬 흙을 긁으면 고구마가 살짝 미소를 띤다. 세상에 고구마 캐는 재미처럼 즐거운 일도 없다. 수고에 비해 한 아름 가득 수확이 넘친다.

올해는 마누라 허벅지보다 굵은 고구마로 수확의 기쁨을 만끽해야겠다. 고구마말랭이도 만들고, 고구마밥도 지어야겠다. 게으른 농부에게는 욕심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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