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의 역사와 문화를 한데모아 기록으로 남기는 것이 꿈”

인터뷰향토사학자 한기홍 선생

한기홍 향토사학자
한기홍 향토사학자

 

#프롤로그

문화란 인간 행위의 가치를 비준해 주는 것이다. 그래서 문화의 영역에 포함되지 않으면 존재가치 이외의 아무런 의미도 없다. 문화의 영역에는 반문화는 존재하지만 비문화는 존재하지 않는다. 비문화는 자연 그자체이기 때문이다라고 말하는 향토사학자 한기홍 선생(56).

서양과 동양에서 사용되고 있는 문화의 개념은 자연과 대립되는 개념이 지배적이다. 인간이 만들어 낸 모든 역사의 산물 이것이 바로 문화다. 이처럼 인간의 오랜 역사 속에서 형성되어 온 문화. 더위가 8월을 장식하던 지난 수요일, 기자는 향토사학자 한기홍 선생의 사무실을 찾아 끊임없이 변해가는 문화와 역사에 대한 선생의 속내를 들을 수 있었다.

그에게 있어 문화와 역사는 과연 무엇일까!

 

#해미읍성 안, 호야나무 맞은 편 집에서 살았던 어린 시절

그는 서산시 해미면 기지리, 지금의 20전투비행단 옆 국방과학연구소가 들어서 있는 곳에서 태어났다. 그리고 초등학교 입학 전에 해미면 읍내리의 해미읍성 안으로 이사해서 그곳에서 초등학교를 다녔다. 당시 해미읍성 안에는 많은 주민들이 터를 잡고 생활을 했던 삶의 터전이었다. 초등학교가 있었는가 하면 우체국, 면사무소 등 공공시설이 함께 자리 잡고 있었던 곳이 바로 해미읍성이었다.

호야나무 길 건너쯤이 바로 저희 집이였어요. 제가 집 밖으로 나오면 호야나무에 매달려 있던 철사줄이 보였습니다. 호야나무 옆에는 경로당이 있었는데 어르신들은 삼삼오오 모여 호야나무에서 고문당한 사연들을 주고받았죠. 하지만 어린 저는 관심이 없었어요. 너무 어렸거든요. 다들 그랬던 것처럼 저는 하루의 대부분을 친구들과 초등학교 운동장과 해미읍내 주변에서 놀며 보냈고 또 진남문 앞에 있었던 만화가게에 자주 들르곤 했습니다. 각시탈 등 그때 보았던 만화제목이 지금도 생각납니다. 그리고 그 옆에 인제약방과 인제약방 뒤쪽 우시장 옆에 중국음식점 영성각이 있었습니다.”

 

#서산문화원 사무국장으로 근무하면서 본격적으로 향토사에 대해 눈을 뜨기 시작

서산 원도심 기록보관소(남양여관)
서산 원도심 기록보관소(남양여관)

그렇게 한 해 두해 성장하면서 학창시절에 어렴풋이 역사에 대해 호기심을 가지게 되었고 그러다 서산문화원 사무국장으로 근무하면서 본격적으로 향토사에 대해 눈을 뜨기 시작했다.

이러 저러한 집안 사정이 있었던 차에 문화원과 인연을 맺게 되었죠. 문화원의 사무국장 자리는 일단 현실에서 한 발짝 비켜서 있는 듯한 자리였습니다. 적성에 딱 맞았어요. 정말 열심히 일했죠. 그 결과 전국문화원 평가에서 서산문화원이 전국 1위를 하기도 했으니까요. 문화원에 근무하니 자연스럽게 향토사를 접하게 되었습니다. 이슬비에 옷 젖듯 저도 모르게 향토사와 인연이 되었습니다. 지금은 모두 돌아가셨지만 문화원에 근무하면서 문권혁, 신상찬, 이은우씨 같은 쟁쟁한 향토사가들을 접할 기회가 있었으니까 어떻게 보면 운이 좋은 경우라 할 수 있겠지요. ”

 

# 일에도 방법이 있다는 한기홍 선생 일이 아무리 많아도 조금씩 풀리고 해결의 가능성이 보일 땐 날밤이 두렵지 않았어요.”

충청유교 선구적인물인 정신보와 그의 아들 정인경 선생에 대한 국회세미나
충청유교 선구적인물인 정신보와 그의 아들 정인경 선생에 대한 국회세미나

문화원에서의 12년 생활은 정말 산더미같이 많은 일들을 연속하여 하던 시기였다는 한기홍 선생.

그런데 가만 보면 일에도 방법이 있어요. 일을 한만큼 줄거나 해결의 가능성이 보일 땐 날밤이 두렵지 않더라고요. 아무리 많아도 일한만큼 그 양이 줄거든요. 이때는 몸은 피곤해도 일 할만 해요. 그런데 보이지 않는 벽을 만났을 때는 어렵더군요. 이 때는 몸으로 일하는 것이 아니고 가치관과 철학 뭐 이런 것들이 동원돼야 되잖아요. 문화원 일은 가끔 이런 것도 염두에 두고 일해야 하는 경우가 있어요. 앞에서도 말했다시피 문화는 인간 행위의 가치를 비준해 주는 것이잖아요. 그래서 문화의 영역에 포함되지 않으면 존재가치 이외의 아무런 의미도 없잖아요. 그래서 문화의 영역에는 반문화는 존재하지만 비문화는 존재하지 않아요. 비문화는 자연 그자체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형이상학적이고 철학적인 사고도 문화원 일을 하는데 필요하더라고요.”

 

# 대한민국 저변에 깔린 문화 예의를 보다

오래전 일이지만 한번은 김현구 전임 서산문화원장을 모시고 손님 접대 차 간월도로 갔다. 이런 저런 현안에 대해서 대화를 나누며 식사를 그득히 했다. 바닷가 음식들이 또 얼마나 진수성찬이었겠나. 한참을 그렇게 식사를 하고 나오는데 고 이갑춘 태안문화원장님이 태안을 들려서 서산으로 가시라하여 핸들을 태안으로 돌렸다.

태안에 도착하자 태안문화원장이 또 삼계탕을 시켜주셨다. 이미 배는 빵빵하게 불렀는데....

배가 부른 저는 젓가락을 들고 깨작깨작 하고 있는데 김현구 원장님은 씩씩하게 물고 뜯으며 아주 맛있게 드시는 겁니다. 너무 놀라웠죠. 그분도 저처럼 실컷 잡쉈는데... 바로 예의차원에서 잡숫는 것이었죠.

배부른데 또 먹는 것은 고문과 같은 것이잖아요. 그래도 상대를 배려해서 드시는 원장님의 모습은 지금 생각해도 예의를 중시하는 대한민국 저변에 깔린 문화인 것 같습니다. 그 때 김현구 원장님이 저보고 말씀하시길 사내는 나처럼 통이 커야 된다고 말씀하셨는데 그 말씀에 대한 제 답변이 지금도 기억납니다. ‘원장님 그건 통이 큰 게 아니고 속이 빈거유그랬더니 조금 지나서 김현구 원장님이 그렇구먼하시면서 껄껄 웃으시더라구요

 

 

# 어찌보면 '욕'도 '예의"며 '문화'

문화는 가치의 정립이라고 말하는 그는, 성인 남자의 키가 평균 150cm 이하인 아프리카 피그미 족의 사례를 들어 말문을 열었다.

그들의 아프리카 칼라하리 사막에 주로 거주하며 주생활은 수렵과 채집입니다. 오늘날 지구상에 몇 남지 않은 원시부족이지요. 이들이 기거하는 움막집은 나무줄기를 얽어매서 뼈대를 만들고 나뭇잎으로 지붕을 만들면 끝이죠. 뚝딱하면 집 한 채 짓죠.

그런데 그들이 오늘 운 좋게도 식사용으로 들소를 잡았습니다. 혼자 먹기에는 넘치고 넘친 고기는 결국 이웃들과 함께 나눠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썩어서 버리는 수밖에 없거든요. 이런 곳에 냉장고가 있을 수 없잖아요. 남은 고기를 이웃에게 나눠 주는데 받아먹는 이웃은 입에 담을 수 없는 욕을 하며 받아먹습니다.

여기에는 이유가 있어요.

사막에서 살아남기란 여간 힘든 일이 아닙니다. 그러다보니 적절하게 오래 살아남을 수 있도록 환경에 맞게 키가 작아진 피그미족. 들소인들 살기가 좋을까요. 당연히 힘들겠지요. 그 귀한 들소를 식사대용으로 잡았으니 오죽했겠습니까. 칼라하리 사막이라는 에코시스템에 맞춰보면 들소 한 마리가 빠져버리면 원시부족이 자체가 사라질 수도 있다는 말이 성립됩니다.

척박한 환경에서 어렵게 유지되고 있는 사회체계를 지속적으로 끌어가기 위해서는 이웃들이 욕을 할 수 밖에 없지요. 고기는 주니까 먹지만 없어진 소로 인해서 생태계가 흔들려 앞으로 살아갈 날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우려의 욕이라고나 할까요.

어찌 보면 입에 담을 수 없는 욕도 사회를 끌어가기 위해 하는 예의입니다. 또한 문화인 것이죠.”

 

# 장발장이 은촛대를 훔쳐 성당 보다는 문화원으로 도망오기를 바란다.

한기홍 선생은 사람들에게 바라는 것이 있다. 바로 문화가치를 인정해주고 존중해 달라는 것이다. 문화 안에는 예의와 도덕적 가치, 나아가 철학의 세계도 모두 함축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는 빅토르 위고가 프랑스를 배경으로 쓴 장편소설 레미제라블을 얘기했다. 일주일 만에 1쇄가 완판 되는 기염을 토한 레미제라블프랑스어로 불쌍하고 비참한 사람들이란 뜻의 이 책은 우리에게는 장발장으로 더 유명하다.

빵을 훔쳐 19년 동안 도형수 생활을 했던 장발장. 출소 후 전과자라는 낙인 때문에 외면 받다가 주교관에서 은식기를 훔쳐 달아났던 그에게 오히려 은촛대마저 내어준 미리엘 주교. 그로인해 개심하고 새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하게 된다는 줄거리입니다.

장발장이 은촛대를 훔쳐 성당으로 간 것은 그곳이 치외법권지역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은촛대를 훔쳐 문화원으로 도망 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그는 다양한 가치가 사람의 정신세계에 확실하게 자리 잡아 사람을 이끌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문화는 바로 가치추구다

청소년 문화유적답사
청소년 문화유적답사

인류라는 만물의 영장은 이제 모든 생명의 최상위 계층에 있습니다. 만약 우리 인류가 호랑이나 사자처럼 발톱이 강하고 근력이 있었다면 굳이 사회라는 집단을 만들어 살아갈까요? 인간은 나약한 존재기 때문에 사회라는 것을 만들고 진화 발전해왔습니다. 그래서 사회도 하나의 문화현상입니다. 많은 분들이 사회와 문화를 비교하면 사회가 더 큰 개념으로 인식하고 있는데 사회도 문화의 하부개념입니다. 정치도 하나의 문화현상이고, 경제도 하나의 문화현장이며, 사회역시도 인류가 지구에서 생존하기 위해서 이룩한 하나의 문화현상입니다. 그러니 교육, 과학기술, 환경 등등은 말할 것도 없겠죠

한기홍 선생은 자연의 반대편에 있는 모든 것은 문화라며, 굳이 이것을 저울위에 올려 본다면 자연이 훨씬 무거울 것이라고 했다.

그래서 문화는 우주의 차원에서 본다면 손톱에 낀 때만도 못하답니다. 우리가 만든 600만 년의 인류역사도 언젠가는 사라질 것입니다. 사람이 죽는 것과 같은 이치지요.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존재하는 한은 삶의 의미에 가치를 부여하여 부지런히 움직일 필요가 있습니다. 최 기자님이 저를 찾아온 것처럼요. 인간 행동에서 어떤 것도 가치를 수반하지 않는 것은 없으니까요. , 명예, 권력, 건강, 헌신, 봉사 등의 가치체계가 바로 인간의 행동를 이끌어 내는 것들이죠.

문화는 바로 가치추구입니다.”

 

#에필로그

절대 빈곤의 시대는 지나갔습니다. 이제는 인생의 방향을 조금 변화시킬 필요가 있어요. 그런 삶이야말로 풍요롭고 희망적입니다. 이런 것들을 만들어주는 것이 바로 문화입니다라고 힘주어 말하는 한기홍 선생.

기자가 꿈이 있다면 무엇이냐?”고 묻자 그는 향토사가로 남고 싶다고 했다. “지역의 소소한 일들이 모여 향토사가 되고 향토사가 모여 국사가 되는 것입니다. 국사가 모이면 당연히 세계사가 되는 것이지요.”

지역의 이야기들을 역어 기록으로 남기는 것이 제일 큰 보람이라고 말하는 그에게 기자는 그렇다면 반드시 잘 챙겨 드시고 늘 건강하셔야 됩니다라고 말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우리 서산의 역사가 한 치도 헛되이 버려지는 일이 없기를 간절히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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