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밀고 오는 봄

김기숙 / 수석동, 수필가
 

몸통부터 디밀고 오는 봄은 사람의 입맛부터 변화시킨다. 묵은 김치를 멀리하고 땅속에서 나오는 푸성귀 햇것을 찾는다. 봄은 추위가 오거나 말거나 물러설 기미도 없고, 부어 터질 듯 한 홍매화 봉오리 엿본다.
기후변화가 오뉴월 감주맛 변하듯 하니 이젠 사계절이 뚜렷하지가 않다. 추위는 봄과 바통터치를 해야 하는데 링안에서 들쭉날쭉이다. 입맛은 뾰족이 나오는 냉이 민들레, 쑥, 씀바귀, 달래 등 음흉 맞게 땅속 친구들마저 엿본다. 가을에 단풍 털어내고 눈 꼭 감고 깊은 잠에 빠져 있는 마른가지 흔들어 깨워놓는 봄은 심술쟁이기도 하다.
깊은 겨울 참말로 따뜻한 방에서 오뉴월 개 팔자만큼이나 편하게 살았다. 봄이 오니 도움 안 되는 잡초가 마음에 걸린다. 여름내 풀과의 전쟁이 시작되면 겨울에 눈이 와야 끝이 난다. 잡초 중에 독사풀이란 이름값을 하는 독한 풀이 있는데 시월쯤에 싹이 나서 겨울에도 얼어 죽지 않고 크는 풀이 바로 독사풀이다. 어느 잡초는 겨울에 죽은척하고 갈색으로 변장하여 납작 땅에 눌어붙어 사람의 눈을 속이는 이름 모르는 풀인데 뿌리는 깊게 박히지도 않고 잔디 퍼지듯 얕게 퍼져나간다. 추위에도 얼어 죽지 않는 요놈의 잡초 이파리를 검사를 해 보고 싶다.
잡초가 살아야 땅이 비에 흘러내려 가지 않지만 뻔히 알면서도 매일 밭을 매야 하는 농부들에겐 스트레스다. 참소리쟁이, 들소리쟁이, 미국자리공 이런 풀들은 묵으면 묵을수록 뿌리가 크고 씨로 퍼지기도 하는 번식력이 강한 고약한 잡초인 것을.
봄은 추위와 씨름하며 디밀고라도 오지만 우리네 먹거리의 땅 터줏대감 논과 밭은 누가 가달을 것인가. 시골에 남아있는 늙은 촌로들 올해도 농사지을 생각에 근력이 부치니 큰 걱정이다. 젊은이들이 없으니 주말이면 객지에 나가서 사는 아이들에게 의지하는 수밖에 없다. 아이들 울음소리 들을 수 없는 삭막한 시골이 되었으니 어쩌란 말인가. 농촌은 자꾸 바뀐다. 지도가 바뀌고 논과 밭주인이 바뀌고 외지사람한테 팔린 땅은 집을 지어 살면서 이웃과 두문불출하면서 산다. 한 해가 바뀔 때 마다 빈집도 늘어난다.
텃밭 보리도 봄비가 한 번씩 올 때 마다 쑥쑥 자란다. 마당가에 모란꽃이 피는가 싶더니 제대로 몇 번 보지도 안했는데 어느 사이 다 졌다. 내가 바쁜 건지 세월이 빠른 건지 알 수가 없다. 어려서 보리는 보기도 싫고 보리밥도 싫었다. 이젠 보리도 귀한 대접을 받는다. 보리는 나와 떼려야 뗄 수 없는 평생의 동반자다. 엿기름을 길러서 사용하는 곳이 많기 때문이다.
어른들이 하신대로 대대로 내려오는 전통음식을 취미삼아 만들면서 농촌을 지키며 살아가는 것도 나는 큰 의미라고 여긴다. 엿기름을 길러 쌀로 조청을 고아 고추장을 담가 장독대 놓고 오며가며 들여다본다. 시쳇말로 인스턴트를 가미하지 않은 수제품이다. 고향친구가 서울에서 사는데 인스턴트가 들어가지 않은 네 고추장은 변하지도 않고 달지가 않아 찌개용으로 최고라고 하면서 매년 가져다 먹는다.
디밀고 오는 봄은 나뭇가지만 재촉하는 것이 아니다. 촌로들을 밖으로 내몬다. 월동에 얼어붙어 크지 않은 풀이라도 매야 하는데 방에서 밍그적거리고 게으름을 피운다. 농사철이 돌아오니까 경노당도 문을 닫았단다. 소식이 뜸하던 아주머니 한 분이 전화가 왔다.
“무슨 일이유~?”
“제일 쉬운 일인디 일좀 갈꺼여?”하고 넌지시 물어본다.
“무슨 일인디 쉬워유~?”
“그 동안 묘목 값이 없어서 팔지를 못했는디 씨 뿌린지 사년 만에 묘목이 시집을 간다고 하니 깨 와야 혀” 하면서, “묘목이 싸니까 다들 떠 엎었는디 주인은 혹시나 하고 남겨놓은 것이 운 좋게 팔린거랴!”
평생 일로 늙어서 일은 잘하지만 길 걷기가 모두가 어려운 어른들만 계신 농촌이 아닌가. 누이 좋고 매부 좋고 가용돈이라도 벌어서 손자들한테 인심이나 써봐야지.
작업복으로 갈아입고 밭에 가보니 일꾼 열 명이 성한 사람이 하나도 없다. 유모차를 끌고 오고 지팡이 짚고 오신 분, 굽은 허리 붙잡고 오신 분,  무릎 관절이 안 좋아 절룩거리고 오신 분들이다. 묘목을 트랙터가 캐면 앉아서 손으로 뽑아 한 다발씩 묶는 작업이다.
일은 능률도 안 나고 손가락에 물집도 생겼다. 산전수전 몇 수십 년을 잡초만큼이나 모질게 살아온 촌로들. 언제 한 번이라도 나의 손에 관심을 두고 살아 보았을까? 바랭이에 손톱이 찢어져 피가 나도 흙에 문질러 지혈을 시키고 다시 호미를 잡는다. 너무도 부려먹은 손은 울퉁불퉁 산 넘어 산으로 고치기도 어려워 평생 안고 가야할 숙제다. 손은 먹거리를 만들고 일을 하며 못하는 게 없지만 예쁘지 않다는 이유로 외면 한다. 어디 가면 손 내놓기가 남부끄러워 뒤로 감춘다.
일이 끝나고 주인은 일 반장을 살짝 불러간다. 뭐라고 소곤거리더니 품값 육만 원을 갖다 준다.
“웬 품값이 이렇게 많아유~?” 품값이 오른다고 좋은 것만은 아니다. 농촌에 쌀값 생각하면 받기는 했어도 마음이 짠하다.
지난해 생강 캘 적에는 오만 원 했는데 만원이 또 오른 것이다. 해마다 올라가는 품값에 촌로들 반짝 주가도 올라간다. 또 마늘을 캐는데 일꾼이 없어 용역을 얻어 왔다는데 외국사람들이 많이 왔다. 마늘 캘 줄을 몰라 마늘통을 많이 찍어 놓는다. 마늘을 찍어놓으면 상품가치가 떨어지는데 말이 통하지가 않아서 손짓 발짓 해보지만 통하지가 않는다. 답답한 마음에 “아~아~~ 옛날이여”를 불러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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