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쟁기 민간인 학살의 진실을 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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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기 민간인 학살의 진실을 말하다
  • 서산시대
  • 승인 2019.08.08 1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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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명호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희생자 서산유족회장

1950년 경인년 한국전쟁 발발 10년 후 1960년 5월 제4대 국회에서 양민학살사건 진상조사 특별위원회가 발족하여 조사한 결과 전국에서 114만 명이 군경에 의해 집단학살 되었고, 이는 남한 인구의 5%에 해당하는 숫자였다.

조사 보고서 내용에는 군경 및 기타에 의하여 어린이와 유부녀 학살과 강간, 그리고 재산을 착취하는 등 목불인견의 만행을 자행하였다고 명시 되어있다.

이에 내무, 법무, 국방의 삼부 장관을 위원회에 출석케 하였고, 양민학살사건 사후대책을 위하여 행정부에 이관하여 장시일에 걸쳐 정확하고 상세한 실정을 조사, 건의안을 작성하여 본회의에 보고토록 결말지었다.

2개항에 걸친 건의안에는 『제1항, 정부는 양민학살사건 조사단에서 조사내용과 같이 본 위원회에서 조사한 지역뿐 아니라 당 사건 조사를 위한 군·경·검 합동조사본부를 설치하여 양민의 생명과 재산상 피해를 끼친 악질적 관계자 및 피해자와 피해상황을 조속하고도 단 시일 내에 조사할 것. 제2항, 양민의 생명재산상 피해를 끼친 악질적 관계자의 엄중한 처단과 피해자에 대한 보상제도를 설정하기 위하여 기존 법률에 의한 일사부재리 원칙이나 시효의 저촉 규정과 관계없이 특별법 가칭 ‘양민학살사건 처리특별조치법’ 제정을 촉구한다.』라고 명확하고 상세히 명시되어있다.

그러나 이러한 자료는 세상의 이목에서 사라진지 40년 만인 2001년도에 국회 의사과의 창고에 전24권이 방치되어 있던 것이 발견되면서 세상에 알려졌다. 그러나 어찌된 일인지 현재 국회도서관에는 22권이 사라진 채로 2권만이 남아있다.

이에 (사)한국전쟁 전국유족회는 자료 분실 문제에 대해 국회에 항의했고 그에 대한 대책을 강구하고 있는 상태이다. 자료분실이 의도적 훼손이 아닌가라는 의구심도 떨칠 수 없다.

이 조사보고서가 작성된 이듬해인 1961년 박정희 군부의 5.16쿠데타로 희생자에 대한 모든 업무는 중단되었으며, 1960년 10월 20일 창립한 전국유족회의 임원진은 군부에 의해 구속되어 사형 또는 무기징역형을 선고 받아 옥살이를 하는 등 이중의 고초를 격어야만 했다.

이후 유족들은 발이 꽁꽁 묶여 있던 중에 2005년 노무현 정부에서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 기본법”을 여야 합의로 제정하여 유족 신청를 받았으나, 위원회의 홍보 부족과 유족들이 두려움으로 기피 또는 신고를 미루어 일부 신고한 희생자에 대한 명예회복과 배·보상을 받는 것으로 제1기 진실화해위원회는 문을 닫고 말았다. 이는 전체 희생자의 1%에도 못 미치는 숫자다.

여기에 이명박 정부는 기본법에 2년이라는 기간을 연장할 수 있었음에도 2010년 12월 31일 문을 닫아버려 유족의 아픔을 가중시키는 행위를 자행하였다.

이어 제19대 국회에서 이낙연(현 국무총리)의원 등이 ‘과거사정리 기본법’ 일부개정안을 발의하였으나 정부의 재정상 막대한 지장을 초래한다는 이유로 국회에서 자동 페기 되는 수난을 격어야 했다.

현재 제20대 국회에는 6건의 개정안이 발의되어 있으나 일부 야당의 반대와 비협조로 국회 행정안전위원회에 계류되어 있는 상태이다.

이제는 분명히 말하고 싶다. 국회행정안전위원회 위원님들이시어!

1960년 제4대 국회에서 5.31 ~6.10까지 조사한 양민학살사건 진상조사 보고서 내용을 보신 후 ‘과거사정리 기본법 일부개정안’에 참여하시기를 간곡히 요청 드리는 바이다.

당시에는 사건이 발생한지 10년이 채 경과되지 않은 관계로 현재와 달리 다수의 목격자들이 진솔한 증언과 유족들의 사실에 가까운 신고가 이루어지지 않았겠는가?

사건이 발생한지 70년이 다된 과거사를 입법부인 국회에 미루는 정부와 당론 운운하며 나 몰라라 하는 국회는 일천만 유족이 분노의 눈으로 바라보고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아니 될 것이다.

당시의 희생자는 상당수가 국민보도연맹 가입자, 형무소 재소자, 인민군 점령기 협조내지 동조했다는 혐의만으로 아무 법적절차 없이 집단학살 당한 자들이다.

우리가 태어나고 자란 고향 서산지방에도 30여 곳에서 2,200여명의 희생자가 발생했다. 먹고살기 힘든 시기에 배움도 없었기에 어떠한 사상과 이념을 알기 어려웠던 시기. 보도연맹에 가입하면 곡식을 준다면 현혹하며 상부의 할당 숫자 늘이기에 급급했던 이들. 정권유지와 북쪽에 협조할 가능성이 있을 수 있다는 짐작으로 선량한 국민을 창고에 감금하여 모진 고문과 폭행을 일삼으며, 철사 줄에 묶어 이리 끌고 저리 끌고 다니며 집단학살한 자들. 그들이 누구이기에 제4대 국회 양민학살사건 진상조사 특별위원회에서 조사한 결과보고서가 사라지고, 사건이 발생한지 70년이 다 되도록 한국전쟁기 민간인 학살의 진실을 외면하고 있는가.

독립운동가 단재 신채호 선생은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라고 하셨다. 그러나 우리는 ‘한국전쟁기 민간인 집단학살’에 대한 그 어떤 기록도 역사 교과서에 제대로 수록되어 있지 않다는 사실에 경악한다.

잘못된 역사를 감추는 것이 아니라 무엇이 잘못된 일이었는지 잊지 않도록 기억하고 후손들에게 교육해야 한다.

대한민국을 짊어지고 이끌 자라나는 청소년들에게 한국 근현대사의 잘못된 역사는 반복되지 말아야 한다. 이웃 일본과 같이 결코 역사의 진실을 왜곡하거나 감추는 민족이 되어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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