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하영 약사

2018년 기준으로 국산 토종 신약이 30종에 이른다. 1호 신약이 90년대 후반에 나왔으니 이후 매년 하나씩은 개발된 셈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에 제약회사만 200종에 달한다고 하니 제약회사의 수에 비하여 신약이 너무 적다. 이것이 우리나라 제약계의 현실이다.

분명 양적인 면에서는 성장을 이루었다. 그러나 정체성을 드러낼 신약을 보유한 회사는 일부 회사에 지나지 않는다.

물론 제약회사의 사정과 항변도 있을 것이다. 필자는 제약 현장에 관하여는 어렴풋이 아는 정도이나 신약 후보 물질들이 수없이 나와도 대부분 임상시험(3상)을 통과하지 못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따라서 신약 하나가 개발되기 위해서는 자본력과 노력도 중요하지만 운도 따라주어야 한다. 보통 10여년 이상의 장시간이 필요하다고 한다.

신약 개발은 주로 기존에 치료하지 못하였던 병을 치료하는 효과·효능 중심으로 전개되었다. 다른 한편에선 저함량으로 동일한 효과를 누리는 방향으로도 개발된 사례들이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H2길항제(위장약)인 시메티딘, 라니티딘, 파모티딘이다. 시메티딘은 개발되었을 당시만 하더라도 아주 획기적인 신약이었다. 이후 라니티딘, 파모티딘이 개발되면서 상대적으로 적은 함량으로 충분한 효과를 누리게 되었다.

구체적으로 시메티딘은 1회 복용 함량이 200~400mg, 라니티딘은 75~150mg, 파모티딘은 10~20mg이다. 그러니까 H2길항제의 신약들은 복용 함량을 낮추는 방향으로 개발되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한 가지 의문점이 남는다. 적은 함량을 복용하는 것이 어떠한 장점을 가지고 있을까? 가장 큰 장점은 부작용을 최소화한다는 것이다. 약의 함량을 높여 복용하는 행위는 약의 부작용 가능성도 그만큼 높아짐을 의미한다. 역으로 얘기하자면 라니티딘, 파모티딘은 시메티딘에 비하여 부작용이 적다고 할 수 있다. 임상 현장에서도 시메티딘은 부작용이 많아 잘 쓰이지 않는다.

그렇다면 시메티딘에 비하여 라니티딘, 파모티딘의 효과가 더 좋다고 단정할 수 있을까? 복용 함량과 부작용의 차이가 있을지언정 약의 작동 원리는 동일하다. 만일 임상적 효과 차이를 느낀다면 개인 차이에 의한다고 보아야 한다. 이러한 이유로 약국에서도 다양한 약물들을 구비하고 있고 병의원에서도 환자의 약력을 종합적으로 판단하여 처방하는 것이다.

사실 모든 약들이 다 그렇다. 새로운 계열의 약물이 나왔다고 하자. 부작용도 덜할 것이다. 그렇다면 기존에 먹던 약을 버리고 신약으로 갈아타는 것이 좋을까? 그렇지 않다. 기존의 먹고 있는 약에서 충분한 임상효과를 누리고 있고 부작용이 없다면 구태여 바꿀 필요는 없다.

‘가성비’란 말을 들어보았을 것이다. 쉽게 말해 가격 대비 효과를 말한다. 이는 경제학에서 추구하는 가장 합리적인 소비점을 의미하기도 한다.

일반적으로 신약은 기존의 약물에 비해 가격이 고가로 책정되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경제적 부담이 크다. 그러므로 신약을 선택할 때는 이에 대한 합리적인 이유가 있어야 한다.

물론 신약을 무조건 배척해서도 안 된다. 기존의 약에서 충분한 효과를 누리지 못할 경우라든가 부작용이 많을 경우 신약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기존 약물의 내성 문제라든가 생명의 연장과 간접적으로 관련되었을 경우 반드시 생각해 보아야 한다.

아스피린은 개발된 지 100년이 지난 아주 오래된 약이다. 현대의 제약 수준에서 보면 아스피린은 단순하고 단점이 많은 약물에 불과하다. 그러나 아직도 임상에서 다양하게 쓰이고 있으며 나름대로의 영역을 구축하고 있다. 충분한 효과를 누리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구관이 명관이다. 신약이나 새로운 복합제가 나왔다고 해서 무작정 약을 바꾸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다.

기존에 복용하던 약에서 충분한 효과와 만족감을 느끼고 있다면 그냥 먹는 편이 낫다는 게 결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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