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A사 구혜정 영어교사

지금 아이들은 기말고사 준비로 소위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 수면시간이 부족해서 자동으로 내려오는 눈꺼풀을 안 내려오게 하고 싶다고 말하기도 하고, 며칠만 안자고 버티는 도구가 있었으면 좋겠다고도 한다.

“선생님 4차 산업혁명시대니 이런 것들이 곧 나오겠죠?”라고 의미심장한 말도 덧붙이며 말이다. 이 말을 하는 아이들을 보면서 나는 늘 안타까움의 연속이다. 우리 아이들이 이렇게 치열하게 공부를 하고 있다니...

나 또한 과거의 기억을 더듬어 보면 이 아이들과 별반 다르지 않다. 중학교 때부터 시험을 며칠 앞두고 잠도 제대로 못자고 벼락치기 공부를 했다. 그 시절엔 하고 싶은 직업을 선택하기 위해서라도 열심히 해야 하는 줄 알았다. 그것이 바로 꿈이었고 앞으로 인생에 펼쳐질 설렘이었다. 내 꿈은 참 많았다. 그 중 하나가 바로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이었는데 감사하게도 난 이미 한 가지 꿈은 이룬 것이나 마찬가지다.

이제 시대가 변해도 너무 변한 것 같다. 내가 자라왔던 청소년기와 지금 우리 아이들의 간격이 이렇게나 차이가 나 있으니....

어쩌다 수업 중에 툭툭 던지는 질문 중 하나는 “공부 하는 이유가 뭐야?”라고 물어보는 것이다. 그러면 열 명중 두세 명을 제외하고는 “그냥요”라고 대답한다.

나도 모르게 긴 한숨과 동시에 씁쓸함이 물밀 듯 밀려온다. 공부를 그냥 하는 것이라니.... 나는 굴하지 않고 “너희가 나중에 커서 하고 싶은 일은?” 되물어보면 대답은 여전히 똑같다. “없는데요!”

공부에 대한 목적도 꿈도 없는 것이라면 이것은 분명 아이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부모의 요구 아니면 스스로 당연한 의무처럼 공부를 하는 것은 아닐까. 이쯤 되면 여러 가지 생각들로 머리가 복잡해지면서 한 친구가 떠오른다.

지금은 간호학과 졸업을 앞둔 여대생이다. 이 친구 역시 지금의 우리 아이들처럼 목적 없이, 그냥 부모님이 하라니까 성적만 열심히 올리면 된다는 생각에 공부했던 아이다. 하지만 목적 없이 가는 길이 어디 수월하던가?

나는 이 아이에게 어떤 의무처럼 동기부여를 해주고 싶었다. 그래서 숙제 한 가지를 내 주었는데 그것은 바로 “니 주위에서 가장 멋지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누구인지 일주일동안 곰곰이 생각해보고 선생님한테 가르쳐줘”였다.

몇 회의 수업이 거듭되던 어느날, 이 친구가 드디어 상담을 신청해 왔다. ‘옳다구나!’ 내심 궁금하기도 하서 아이와의 약속시간이 은근 기다려졌다.

드디어 상담시간, 아이는 작은 소리로 이런 말을 했다. “할머니께서 천식으로 병원생활 하시다 하늘나라로 가셨어요. 할머니가 돌아가시는 걸 보면서 ‘목적은 없지만 그냥 공부를 열심히 해야겠다’라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왜냐면 할머니께서 하신 말씀이 있거든요 ‘이 할미는 복 받아서 이렇게 좋은 간호사 선상님 덕분에 편하게 쉬었다 간다. 너도 나중에 크면 좋은 사람이 되어라’ 어쩌면 이 말씀이 마지막 유언인 것 같아요. 그래서 선생님께서 내 주신 숙제 오늘 끝냈어요. 저도 환자를 돌보고 치료해주는 좋은 간호사가 되기로 했어요. 이제 고민하지 않고 그냥 앞만 보고 갈래요.”

그후, 목표가 확고해지니 이 친구의 성적은 급물살을 타고 비상하기 시작했다. 결국 열심히 노력한 덕분에 원하던 대학에 보기 좋게 합격도 하게되고.

지금도 나는 이 친구와 간간히 서로의 안부를 묻곤 한다. 그때마다 내게 하는 소리가 있다. “선생님 여전히 꿈을 팔고 계세요?”

그렇다. 나는 사교육자지만 꿈을 파는 장사치기도 하다. 특이하게도 나는 아이의 상황과 목적을 충분히 눈 여겨 본 다음 그 아이의 작은 꿈을 내가 먼저 품는다. 그 다음 차례는 다시 아이에게 되돌려 주는 꿈 장사가 내 특이한 장사법이다. 난 에누리가 없다. 대신 아이에게 줄 수 있는 상여금은 언제나 함께 걸어가 주는 것이다. 내 손을 잡고 열심히 자신의 꿈을 향해 진취적으로 나아가 주면 되는 거다.

많은 아이들이 감사하게도 시작은 비록 자갈길이었지만 도착지는 넓은 8차선 고속도로에 들어서 있다는 거다. 이것은 서로 의지하면서 응원해주었기에 가능했던 일이었다.

지금도 내 교실에는 공부를 하면서도 꿈을 찾지 못한 친구들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나는 이 아이들을 믿기에 절대 채근하지 않는다. 꿈이란 녀석은 결코 재촉한다고 다가오지 않는 법이니까.

오늘도 내 하루는 꿈을 사려고 아이들의 마음을 들여다본다.

“오늘 가장 신나고 즐거웠던 일이 뭐야? 누가 가장 멋지게 보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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