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임에 따라 ‘약’이 될 수도 ‘독’이 될 수도 있다.

▲ 해미 세선약국 장하영 박사

약학도 시절 나를 졸업할 때까지 괴롭혔던 질문이 있었다. 독약은 무엇인가? 사실 이러한 질문은 약학도들의 공통된 난제이기도 하다. 입학 면접에서도 독약과 약의 차이를 질문 받았다. 나는 사람에게 이로우면 약이고 해로우면 독약이라며 명확한 선을 그었다. 너무나도 당돌하였던지 면접관들의 질문은 ‘해로움’의 정의부터 시작하여 꼬리에 꼬리를 물고 늘어졌다. 이런 식으로 면접 내내 소크라테스식 질문은 계속 되었다 그리고 나는 이에 질세라 탐사적으로 반응했다. 내가 아는 게 없다는 사실을 주지시켜주고 싶어서였을까. 내 혜안의 깊이를 알고 싶어서였을까. 다시 과거로 돌아간다면 나는 그들의 고견을 청하고 싶다.

20년 이상의 시간이 흘렀다. 나도 약사로서 상당한 경력을 쌓았으니 이제 답을 내려 보자. 사실 ‘독약(毒藥)’이라는 단어 자체에 답이 있다. 본시 ‘독(毒)’과 ‘약(藥)’은 형태소이다. 각기 의미를 지니고 있으니 자립한다는 말이다. 두 형태소가 합하여져 ‘독약’이 되었다. 따라서 독약을 해로운(Toxic) 약으로만 한정지을 수는 없으며 해로움과 이로움이 상존하는 양날의 검이라 해야 할 것이다.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약이 될 수도 있고 독이 될 수도 있다. 다소 식상하기는 하나 이만큼 명확한 정의가 또 있을까.

임상적인 면에서 ‘독’은 시대에 따라 가늠선도 변하여 왔다. 과거에는 약리 성분 개념 자체가 생소하였고 분리기술도 없었다. 약과 독은 시각과 후각의 도움으로 판별하였을 뿐이다. 예를 들어 청산가리는 아몬드 냄새가 나지만 소금은 무취이다. 이런 식이라면 약과 독은 서로 배타적일 수밖에 없다. 서로 극명하게 갈리었다. 그러나 분석 기술이 진보하고 약물 기전이 소상히 밝혀진 현대에는 생화학적 측면에서 약과 독은 같은 위상(位相)에 지나지 않는다. 단지 용도와 복용량의 문제일 뿐이다. 약물학자들은 동물 시험을 통하여 대부분의 약에 치사량, 즉, LD50 수치를 정하였다. 이는 ‘반수 치사량’이라고도 하는데 쉽게 말해 실험동물(대부분 쥐) 절반을 죽일 수 있는 약물의 농도를 말한다. 수치가 높을수록 비교적 안전한 약이라 할 수 있으며 낮을수록 복용관리에 신경 써야 하는 약이다. 우리가 흔히 접할 수 있고 LD50 수치가 낮은 물질로는 보툴리눔을 들 수 있다. 흔히 보톡스로 알려져 미용의 목적으로 많이 사용되지만 안전한 수준으로 희석하여 사용하므로 임상적으로는 크게 걱정할 필요는 없다. 우리가 흔히 먹는 비타민도 LD50 수치가 정하여져 있으니 비타민도 언제든지 독으로 돌변할 수 있다. 그러나 안심해도 좋다. 비타민제가 독약으로 돌변하기 전 우리는 배불러 쓰러질 것이니.

이제 일상생활에서 독을 피하고 약을 잘 쓰는 방법 몇 가지만 소개하고자 한다.

첫째, 즉시적인 효과가 나타나지 않는다고 양을 늘려서는 안 된다. 특히 서방형 제재는 약의 효과가 즉각적으로 나타나지 않기 때문이다. 경우에 따라 복용 후 2시간 이상을 기다려야 할 때도 있다. 하지만 장점도 있다. 지속 시간이 길기 때문에 약의 복용 횟수에 편의점이 있다. 일단 약 설명서대로 복용량을 맞추는 습관을 기르자. 만일 약의 효과가 느껴지지 않는다면 병의원, 약국에서 상담을 청하는 것도 좋겠다.

둘째, 2가지 이상의 약물을 복용할 경우 약물 간 상호작용을 조심하자. 제산제와 다른 약물을 동시에 복용하였을 경우 흡수에 방해를 받게 된다. 심바스타틴과 케토코나졸을 동시에 복용하면 횡문근융해증이라는 부작용으로 인하여 근손상이 나타나는 경우도 있다. 최근에는 복용 중인 약물을 입력하면 다양하게 체크해 주는 사이트가 있으니 직접 입력하면 쉽게 확인할 수 있다. 번거롭다면 단골약국에 가서 확인해 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셋째, 먹지 않고 남았던 약은 반드시 버려야 한다. 서랍 속에서 남겨두었던 약이 아까워 임의로 복용하는 환자들을 자주 보았다. 특히 처방전으로 구입하였던 약들은 그 시점의 증상과 진단에 따라 종합적으로 처방, 조제되었다. 따라서 남겨두었던 약들이 현 시점의 증상에 적절할지는 미지수다. 그리고 유효기간의 문제를 고려한다면 약효도 보장할 수 없다. 아깝지만 버리길 권장한다. 과거 안타까운 사연이 있다. 어떤 노인께서 집안 청소 중 약 한 알이 탐스럽게 굴러다니길래 무심코 복용하였다가 응급실로 실려갔었다.

반복하여 말하지만 약은 쓰임에 따라 ‘약’이 될 수도 ‘독’이 될 수도 있다. 복용량을 지키고 오래된 약을 과감히 버리기만 해도 무심코 ‘독’을 먹게 되는 일은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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